▶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제1호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주인공, 에콰도르(Ecuador)로 떠나보겠습니다. 에콰도르란 국명은 라틴어 ‘애쿠아토르(Aequator)’에서 유래한 스페인어로, 말 그대로 지구를 남과 북으로 가르는 ‘적도(Equator)’란 뜻으로, 1830년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로부터 독립한 주권국가입니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 정기 총회에서 인류 최초의 세계유산 1호 갈라파고스 제도(Galápagos Islands)와 2호인 키토 구시가지(City of Quito)를 동시에 목록에 올린 기념비적인 나라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태동한 생명의 요람이자, 안데스산맥의 고도 위에 스페인 식민 시대의 건축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인류 문명의 보물창고입니다.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 Pachamama)’를 명시한 안데스의 보석(Jewel of the Andes), 에콰도르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한 번뿐인 삶을 불태우는 적도의 열정, 츄야 비다(Chulla vida: The equatorial passion burning through a single life) : 국가 전체에서 제일 흔하게, 그리고 무척이나 감성적인 맥락으로 쓰이는 어휘 중 하나가 바로 '츄야 비다(Chulla vida)'입니다. 토착 언어인 키추아어(Quichua)에서 '오직 하나'를 지칭하는 '츄야(Chulla)'에 스페인어의 '생명' 혹은 '삶'을 뜻하는 '비다(vida)'가 섞인 이 이색적인 혼합어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단 한 번뿐인 삶'을 상징합니다. 산소가 희박한 안데스의 고산병, 아마존 열대우림의 험악한 밀림, 그리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산 활동과 지진이라는 가혹한 환경 조건에서 버텨내야 했던 현지인들에게, 생명의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 순간 절실하게 다가오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표현은 수명이 짧으니 얄팍한 쾌락이나 좇자는 식의 가벼운 허무주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매 분 매 초를 가장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숭고하면서도 낭만적인 태도를 내포하는 거대한 은유입니다.
▷ 적도의 박동을 담아낸 대자연과 애절한 선율(Mother nature and sorrowful melodies capturing the pulse of the equator) : 또 다른 자연유산인 상가이 국립공원(Sangay National Park) 역시 적도의 생존 본능이 얼마나 맹렬히 타오르는지 시각적으로 입증하는 명소입니다. 1983년에 등재된 해당 구역은 고도 5,000m를 상회하는 만년설 빙하 지대부터 아마존으로 향하는 고온 다습한 열대우림까지, 수직으로 길게 뻗은 생태계의 스펙트럼을 단일 영역 내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까지도 쉼 없이 용암 및 화산재를 분출하는 상가이 화산의 맹렬한 활동성은 파괴와 재창조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대자연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황량한 비탈을 디디고 생존하는 안데스 콘도르(Andean condor)와 산맥테이퍼(Mountain tapir)의 모습은 유한한 생명을 가장 강인하게 지켜내려는 적도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을 대변합니다. 이와 같은 불꽃같은 민중들의 정서는 그들의 음악적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파시요(Pasillo)'를 통하여 가장 절절하고 유려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2021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파시요는 19세기 남아메리카 대륙의 독립 전쟁이라는 유혈 낭자한 혼란 속에서 잉태된 독창적인 음악 장르입니다. 유럽 정복자들이 유입시킨 우아한 왈츠(Waltz) 리듬에 잉카 제국 도래 이전부터 안데스 계곡을 맴돌던 원주민의 비장하고 애절한 전통 음률 '야라비(Yaraví)'가 뜨겁게 섞여 완성되었습니다.
▶ 문명의 충돌이 빚어낸 넉넉한 융합의 미학, 라 야파(La yapa: The generous aesthetics of fusion forged by clashing civilizations) : 생기 넘치는 전통 시장이나 길거리 노점상에 들르면, 물건을 파는 이와 사는 이 사이에 정겹게 오고 가는 '라 야파(La yapa)'라는 단어를 무척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시장통에서 채소나 과일을 살 때 상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덤으로 조금 더 얹어주는 약간의 수확물이나 작은 보너스를 지칭하는 이 표현은, 차가운 자본주의적 이해타산을 뛰어넘은 현지 주민들의 후한 인심 및 공동체적 유대 의식을 대변하는 훈훈한 어휘입니다. 하지만 이 소박한 낱말을 국가의 장구한 역사와 문화라는 한층 거대한 캔버스 위로 옮겨오면, 기존의 바탕에 이질적인 새로운 요소들을 기꺼이 보태고 수용하여 한층 더 풍요롭고 독창적인 결과물로 승화시키는 문화 융합의 미학으로 그 상징성이 대폭 확장됩니다.
▷ 안데스 바로크와 공증 문서에 새겨진 민중의 타임캡슐(Andean Baroque and the people's time capsule engraved in notarial documents) : 197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수도 키토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Quito)는 이 같은 융합적 아름다움이 공간적으로 완벽히 구현된 인류의 훌륭한 걸작품입니다. 해발 2,850m 고도의 험준한 안데스 산간 분지에 위치한 키토는 원래 고대 잉카(Inca) 제국 북방 거점을 수호하는 핵심 요충지였으나, 1534년 스페인 정복대원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후 그 참혹한 폐허 위에 완전히 새로운 식민 지배의 중심 도시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웃 국가 페루의 수도 리마(Lima)가 스페인 정복자 주도하에 해안가 평원에 철저히 서구식으로 설계된 계획도시로 신축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키토의 경우 원주민 고유의 거주 구역 및 탁월한 석조 가공 기술이 스페인식 건축 양식과 치열하게 혼재되고 덧입혀졌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라 꼼빠니아 데 헤수스 성당이나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 같은 종교 건축물 내부에서는, 유럽풍의 장엄한 바로크 양식 뼈대 위에 원주민 토속 신앙의 태양 숭배 상징물이나 안데스 특유의 거친 식물 문양이 정교하고도 화려하게 가미된, 세상 어디에도 없던 독창적인 '안데스 바로크(Andean Baroque)' 양식이 만개하게 되었습니다. 잔혹한 파괴와 가혹한 식민 통치의 아픈 역사 속에서도 원주민 특유의 끈질긴 예술적 혼백이 스페인 건축물에 덤처럼 과감하게 추가되어, 침략의 뼈아픈 상흔을 인류 보편의 걸작으로 승화해 낸 셈입니다.
▷ 짚 모자의 정성과 서사시가 이룬 혼합의 절정(The peak of mixture achieved by the devotion of straw hats and epic poems) : 문명의 격렬한 충돌 속에서 민초들의 땀방울이 만들어낸 숭고한 정신은 2012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에콰도르 토키야 짚 모자 전통 짜기' 과정에서도 눈부시게 빛을 발합니다. 19세기 후반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즐겨 착용하면서 전 세계에 '파나마 모자'라는 명칭으로 억울하게 잘못 알려졌으나, 이토록 우아하면서도 실용적인 모자의 진짜 고향은 다름 아닌 에콰도르 해안가에 자리한 삘레(Pile)와 같은 작고 외진 촌락들입니다. 척박한 기후 조건에서 자생하는 토키야 야자수의 질긴 섬유 조직을 추출하여 제작하는 이 모자는, 그 섬세함의 정도와 등급에 따라 단 하나를 완성하는 데 짧게는 수일에서 최상급품의 경우 무려 8개월이라는 아득하고 고통스러운 시일이 소요됩니다. 모자를 직조하는 행위는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물리적 노동을 훌쩍 넘어서서, 특정 습도 및 기후 조건 아래 마을 공동체 특유의 끈끈한 정체성과 전통적 농업 기술, 그리고 사회적 직조망을 단일한 예술 작품으로 엮어내는 신성한 종교적 의식과 흡사합니다.
▶ 끊어질 수 없는 운명과 기억의 연결망, 데 레이(De ley: The inescapable network of destiny and historical memory) : 에콰도르의 시내 길거리나 로컬 식당에서 누군가의 제안 혹은 의견에 강하게 동의를 표할 때, 현지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데 레이(De ley)!"라고 경쾌하게 외치곤 합니다. 이 짤막한 단어를 글자 그대로 직역해 보면 '법에 의하여(By law)'라는 다소 딱딱한 의미를 지니지만, 실제 살아 숨 쉬는 구어체 표현에서는 '당연하지', '틀림없이', '운명적으로'라는 강력한 확신과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섭리를 의미하는 마법의 주문처럼 통용됩니다. 이는 개인의 얄팍한 의지나 일시적 감정 상태를 훌쩍 넘어서서, 수천 년간 이어진 역사적 풍파와 압도적인 지리적 환경 속에서 굳건히 결속되어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에콰도르 민중들의 거대한 운명적 네트워크를 은유하는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 숲의 영혼을 수호하는 소수민족과 이방인의 포용(Embracing minorities and strangers protecting the soul of the forest) : 이처럼 끊어질 수 없는 기억과 정체성의 보전 노력은 국가가 정한 공식적인 영토 경계를 넘어서,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아마존의 깊숙한 밀림 속에서도 처절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콰도르와 페루의 국경선이 가로지르는 아마존 정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사파라족의 구전 유산과 문화적 표현'은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전 세계에 그 숭고한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사파라족은 스페인의 정복 이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마존 일대에서 가장 번성했던 거대 부족 중 하나였으나, 서구 문명 유입이 몰고 온 치명적 전염병 창궐과 19세기 후반 고무 채취로 인한 잔혹한 노동 착취 사태로 말미암아 인구가 멸절 직전의 상태까지 급감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현재는 극소수의 연로한 원로들만이 숲속에 남아 그들의 고유 언어를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실정입니다. 사파라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아마존의 방대한 생물 다양성을 담아낸 살아있는 백과사전이자 정령 신앙,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빈틈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화적 우주관을 온전히 간직한 숲의 영혼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 춤춘 기억이 가르쳐주는 진정한 여정의 의미(The true meaning of the journey taught by the memory of the dance) : 거친 화산재와 폭우가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도 단 한 번뿐인 인생의 뜨거운 열망을 목청껏 노래하는 '츄야 비다', 상이한 문명들의 폭력적인 충돌 한가운데서도 기꺼이 서로를 품어 안으며 넉넉한 융합의 미학을 만개시킨 '라 야파', 그리고 대륙을 종단하는 험준한 돌길과 낯선 이주민들의 핏줄, 소멸해 가는 아마존의 희미한 언어까지도 단 하나의 거대한 운명체로 굳게 엮어낸 '데 레이'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에콰도르라는 이토록 복잡다단하고 매혹적인 국가의 본질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유네스코에 등재를 마친 각종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표면적 개수를 셈하는 건조한 학술 작업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그 눈부신 유산들을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에콰도르 민중들의 펄떡이는 심장 고동을 생생히 느끼고, 수백 년에 걸친 험난한 풍파를 관통하며 벼려온 그들만의 장엄한 생존 철학을 온 가슴으로 읽어내는 가슴 벅차고도 경이로운 행위입니다. 이처럼 깊고도 눈부신 적도의 심장부로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험을 떠나고자 마음먹은 독자 여러분에게, 중남미 지역의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가장 지혜롭고도 유쾌한 격언 하나를 전하며 이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자 합니다.
Nadie te quita lo bailado.
No one can take away what you've danced.
그 누구도 당신이 춤춘 시간을 빼앗아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