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남미 대륙에서 두 번째로 작은 ‘라 셀레스테(La Celeste)’, 우루과이(Uruguay)로 떠나보겠습니다. ‘우루과이’라는 국명은 원주민 과라니족(Guaraní)의 언어로 ‘채색된 새들이 사는 강(River of the Painted Birds)’ 혹은 ‘달팽이의 강’을 의미하는 우루과이강(Uruguay River)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루과이는 17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패권 다툼 속에서 탄생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두 제국의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된 세계유산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Colonia del Sacramento)’를 비롯해, 근대 육가공 산업사의 기념비적 유산인 ‘프라이 벤토스(Fray Bentos) 산업 경관’을 품은 인류 문명의 거대한 박물관이죠! 우루과이는 1828년 몬테비데오 조약(Treaty of Montevideo)을 통해 주권 국가로 공인받았으며, 국교를 두지 않는 철저한 세속주의(Secularism) 및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성탄절을 ‘가족의 날(Family Day)’로, 성주간을 ‘관광 주간(Tourism Week)’으로 부르는 독특한 문화적 포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테차(Mate) 한잔과 함께 '남미의 스위스', 우루과이로 함께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아참, 남미에서 가장 작은 국가는 어디냐구요? 수리남(Suriname)!
▶ 불굴의 투지와 생존의 미학, 가라 차루아(Garra Charrúa: The indomitable spirit and aesthetics of survival) : 우루과이 사람들의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단어는 ‘가라 차루아(Garra Charrúa)’입니다. 직역하면 ‘차루아족의 발톱’이라는 뜻을 지닌 이 표현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겨내는 우루과이 특유의 불굴의 투지와 생존력을 의미합니다. 과거 스페인의 가혹한 식민 지배와 강제적인 가톨릭 개종 요구에 맞서 맹렬하게 저항하다 멸절에 가까운 희생을 치러야 했던 토착 원주민 차루아(Charrúa)족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할 때 울려 퍼지는 긍지의 구호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록 원주민들의 실제 역사적 비극이 국가 정체성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다소 낭만화된 측면이 존재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한 스포츠 슬로건을 넘어 우루과이의 뼈아픈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중의 처절한 저항 정신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 야만의 시대를 견뎌낸 지성의 기록(The records of intellect that endured the era of barbarism) :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우루과이는 참혹한 시민·군사 독재 체제 아래에서 극심한 인권 유린과 억압을 경험했습니다. 1973년 쿠데타 이후, 알베르토 데미첼리(Alberto Demicheli, 1896~1980), 아파리시오 멘데스(Aparicio Méndez, 1904~1988), 그레고리오 알바레스(Gregorio Álvarez, 1925~2016)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은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이는 전두환(1931~2021) 정권 시절 신군부의 총칼 아래 피 흘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했던 1980년대 한국의 아픈 현대사와 유사한 궤적을 그립니다. 이 암울했던 시기, 우루과이 지식인들과 민중들이 보여준 저항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가라 차루아’의 발현이었습니다. 그 생생한 증거가 바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엘 포퓰라르 신문 사진 아카이브(Photographic Archive of the newspaper El Popular)’입니다. 1957년부터 창간되어 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 1973년까지 우루과이 공산당 기관지로 활약했던 이 신문사의 사진 필름 5만여 장은, 금속 캔에 담겨 비밀리에 숨겨진 덕분에 훼손을 면했고 3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기적적으로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진실의 기록을 지켜낸 이 아카이브는 과거의 젠더 불평등이나 세대 간의 문화적 단절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인 사료로 평가받으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국가적 끈기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 데스파시토 이 포르 라스 피에드라스: 돌밭 걷기의 지혜(Despacito y por las piedras: The wisdom of walking on a rocky path) : 두 번째 키워드는 우루과이 사람들의 신중하고도 끈기 있는 기질을 고스란히 담아낸 ‘데스파시토 이 포르 라스 피에드라스(Despacito y por las piedras)’입니다. 직역하면 ‘돌밭 위를 천천히’라는 뜻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할 때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단단한 돌덩이를 밟듯 한 걸음씩 신중하게 나아가라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신속함을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역동적인 문화와는 대비되는 이 묵직한 속도감은, 잦은 외침과 국경 분쟁 속에서도 차근차근 자신들만의 국가 시스템을 축적해 온 우루과이의 굴곡진 역사에서 기인합니다. 거센 압박 속에서 성급한 결단은 곧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돌다리를 두드리며 미래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신중함과 시간의 켜가 가장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곳이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 역사 구역(Historic Quarter of the City of Colonia del Sacramento)’입니다. 1680년, 포르투갈 국왕 페드루 2세(Peter II of Portugal, 1648~1706) 치하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총독 마누엘 로보(Manuel Lobo, 1635~1683)에 의해 브라질 확장의 전초 기지 겸 밀수 항구로 건설되었습니다. 두 거대 제국의 접경지에 위치한 탓에, 이 도시는 호세 데 가로(José de Garro, 1623~1702)가 이끄는 스페인군에 함락되고 1777년 산일데폰소 조약(Treaty of San Ildefonso)으로 스페인령이 확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주인이 바뀌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이는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거대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임시 수도로 피난을 가 항전해야 했던 한국의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처절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 점진적 개혁이 빚어낸 남미 최고의 민주주의(The pinnacle of South American democracy forged by gradual reform) : 그러나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는 거듭된 전란의 상처를 단순한 폐허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250년 역사를 품고 있는 ‘탄식의 거리(Calle de los Suspiros)’를 걷다 보면, 지형의 굴곡을 그대로 살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포르투갈 양식의 조약돌 골목과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구획된 스페인식 도로망이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섞인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정복자들의 파괴적인 흔적조차 서두르지 않고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리듯 융합해 낸 결과입니다. 나아가 정치적 측면에서도 우루과이는 호세 바트예 이 오르도녜스(José Batlle y Ordóñez, 1856~1929) 대통령의 주도하에 남미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 기틀을 다졌습니다. 1905년 저소득층 소득세 폐지, 1914년 실업 수당 도입, 1915년 1일 8시간 노동제 법제화 등 대륙 내에서 가장 선구적인 정책들을 도입하며, 유혈 혁명이 아닌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제도의 개혁을 이룩했습니다. 돌밭 위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걸어온 우루과이의 지난한 노력은 오늘날 남미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국가라는 굳건한 성취를 잉태했습니다.
▶ 에스 로 케 아이: 수용과 융합의 멜랑콜리(Es lo que hay: The melancholy of acceptance and fusion) : 마지막 키워드는 ‘에스 로 케 아이(Es lo que hay)’입니다. 번역하면 ‘현실이 그렇다’, ‘주어지는 것이 그것뿐이다’라는 뜻으로, 자칫 체념이나 불평등에 순응하는 패배주의적 표현으로 들릴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루과이 문화의 기저에서 이 말은 결코 비관적인 포기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비록 지금 처한 상황이나 자원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 현실을 직시하고 내게 주어진 것들로 최선을 다해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겠다.’는 낭만주의적 수용과 강인한 창조적 태도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과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척박한 현실을 껴안고 예술적 승화를 이룩해 낸 배경에는 이 철학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용과 애수의 정서가 가장 아름답게 폭발한 예술이 바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탱고(Tango)’와 ‘칸돔베(Candombe)’입니다. 탱고는 본래 리오데라플라타 강 유역 빈민가에 모여 살던 일용직 노동자들과 이민자들의 고단한 애환을 달래주던 춤과 노래였습니다. 이 장르를 논할 때, 우루과이의 정신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불세출의 스타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1890~1935)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카를로스 가르델의 오리지널 레코드-오라시오 로리엔테 컬렉션’은 그가 비행기 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1935년까지의 소중한 원음 800여 곡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의 저명한 연구가 오라시오 로리엔테(Horacio Loriente, 1916~2005)가 평생을 바쳐 수집한 이 음반들 속에는 독보적인 바리톤 음색으로 진정한 탱고만의 프레이징을 확립한 가르델의 목소리가 담겨 있으며, 이는 비좁은 공동주택에 부대끼며 살던 하층민들의 지독한 고독과 향수를 온전히 위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흑인 노예들의 후손들이 만들어낸 전통 북 연주 ‘칸돔베’는, 소외된 계층이 아프리카적 기원을 강렬한 리듬으로 토해내며 편향된 신화를 스스로 교정해 낸 예술적 성취입니다. 이는 신분 계급의 억압 속에서도 피지배층의 고단한 삶과 한(恨)을 공동체의 해학과 신명으로 승화시킨 한국의 무형유산 ‘판소리(Pansori)’가 지닌 카타르시스와 놀라울 만큼 통합니다.
▶ 삶의 여백을 채우는 지혜의 메아리(The echo of wisdom that fills the margins of life) : 지금까지 우루과이의 영혼을 대변하는 세 가지 주요 키워드인 ‘가라 차루아’, ‘데스파시토 이 포르 라스 피에드라스’, 그리고 ‘에스 로 케 아이’를 통해 이 작지만 강인한 나라의 깊은 내면을 다각도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거친 역사의 비바람과 폭압 앞에서는 결코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맞서 싸웠고, 잦은 외침 속에서 국가의 기틀을 다질 때는 돌밭을 걷듯 신중하게 복지와 민주주의의 벽돌을 쌓아 올렸습니다. 또한 소외 계층으로서의 결핍과 외로움 앞에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껴안으며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워내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이토록 치열하고도 매력적으로 척박한 삶의 여백을 채워가는 우루과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마무리하며, 그들의 긍정적이면서도 주체적인 태도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통 격언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우루과이 민중이 오랜 세월 체득해 온 진정한 미학과 생존의 철학이 온전히 녹아 있습니다.
Al mal tiempo, buena cara.
To bad weather, a good face.
궂은 날씨에는 밝은 얼굴로 맞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