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밥" 말리(Robert Nesta "Bob" Marley, OM, 1945~1981)의 고향, 자메이카(Jamaica)로 떠나보겠습니다. 자메이카는 타이노족(Taíno)의 '나무와 물의 땅(Land of Wood and Water)'이란 '하마이카(Xaymaca)'에서 유래한 국명입니다. 1494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상륙한 후 서구에 알려진 자메이카는 스페인과 대영제국의 식민 지배를 거쳐, 1962년 독립하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 '블루 산맥과 존 크로 산맥(Blue and John Crow Mountains, 2015)'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자, 가혹한 식민 지배를 피해 도망친 마룬족(Maroons)의 거점이였습니다. 세계 3대 커피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Jamaican Blue Mountain) 한잔과 함께 레게의 본고장(Home of Reggae) 자메이카로 떠나보시겠습니까?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작지만 강인한 불굴의 저항 정신, 탈라와(Small but Mighty: The Invincible Spirit of Resistance, Tallawah) : 자메이카 민중의 정체성(正體性)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첫 번째 핵심 키워드는 바로 파투아어로 '매우 강인한', '절대 두려움이 없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이라는 뜻을 지닌 '탈라와(Tallawah)'입니다. 자메이카인들은 종종 일상 속에서 자신들의 국가와 민족을 가리켜 "우리는 비록 작지만, 무척이나 강대하다(Wi Likkle but wi tallawah)"라고 긍지 높게 표현하곤 합니다. 이 짧은 한 문장 안에는 서구 열강의 폭압적인 제국주의 팽창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와 자치권(自治權)을 쟁취해 낸 자메이카 민중들의 숭고한 자긍심이 뜨겁게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 '탈라와'의 불굴의 저항 정신이 물리적, 공간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역사적 성소가 바로 자메이카 최초의 유네스코 복합유산(複合遺産)인 '블루 앤 존 크로 산맥(Blue and John Crow Mountains, 2015년 등재)'입니다. 자메이카 동남부에 위치한 이 험준하고 울창한 산맥은 17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가혹한 노예제를 피해 목숨을 걸고 도망친 아프리카계 흑인들과, 그 이전에 핍박받던 원주민 타이노(Taino)족이 깊은 산속에서 연합하여 형성한 '마룬(Maroons)' 공동체의 역사적인 피난처이자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군사적 요새였습니다. 수백 년 전 총칼에 맞섰던 이 마룬의 '탈라와' 정신은 오늘날 무형의 자산으로도 굳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어 타운의 마룬 유산(Maroon heritage of Moore Town)'이 그 빛나는 증거입니다. 1740년 대영제국과의 기나긴 전쟁 끝에 평화 조약을 맺고 공식적인 자치권을 획득하며 산맥에 형성된 무어 타운(Moore Town)에서는,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서아프리카 아산테족의 언어에 뿌리를 둔 크로만티(Kromanti)어가 종교적 의식과 조상 숭배의 매개체로 신성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 아프리카를 향한 우주적 연대와 생명 철학, 리비티(Cosmic Solidarity and Philosophy of Life towards Africa, Livity) : 자메이카 민중의 정체성과 내면세계를 가장 깊이 있게 규정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리비티(Livity)'입니다. 리비티는 20세기 초중반 자메이카 빈민층에서 자생적으로 발원한 종교적, 사회적 운동인 라스타파리(Rastafari)에서 유래한 핵심 개념입니다. 이는 우주의 모든 만물과 인간이 자(Jah, 신)라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에너지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영적 연대감이자, 인위적인 서구의 식민주의적 억압과 물질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올바르고 균형 잡힌 생명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영국의 오랜 식민 통치와 자본주의적 착취 구조 속에서 철저히 소외당했던 흑인 노동자와 농민들은 식습관, 언어, 복장,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방식 전반을 아프리카의 고대 뿌리로 되돌리는 리비티 철학의 실천을 통해 내면의 식민주의를 타파하고 스스로를 해방시켰습니다.
이러한 자메이카 민중의 리비티 철학과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 汎-主義) 사상을 지역적 차원을 넘어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폭발시킨 사상적 토대를 치밀하게 마련한 위대한 인물이 바로 자메이카의 첫 번째 국가 영웅(National Hero)으로 추앙받는 마커스 모자이아 가비 주니어(Marcus Mosiah Garvey Jr., 1887~1940)입니다. 1887년 세인트 앤스 베이(Saint Ann's Bay)에서 태어난 그는 혹독한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랐으나, 독학으로 세계의 역사를 깨우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흑인지위향상협회(UNIA)를 창설했습니다. 그는 백인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흑인들이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뤄야 한다고 역설하며 흑인 기업 연합을 육성했고, 아프리카 디아스포라(Diaspora)가 고향으로 귀환하여 물리적, 정신적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블랙 스타 라인(Black Star Line)이라는 해운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치열한 자메이카 특유의 영성과 생명 철학이 소리의 형태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되어 전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바로 2018년에 등재된 '자메이카의 레게음악(Reggae music of Jamaica)'입니다.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Kingston)의 빈민가 하층민들의 지독한 가난과 저항, 슬픔, 그리고 아프리카로의 영적 귀환을 향한 타는 듯한 열망을 오롯이 담아낸 레게는 단순한 오락 목적의 상업적 대중음악이 결코 아닙니다. 특유의 엇박자(Off-beat) 리듬과 심장 박동을 닮은 묵직한 베이스 라인 위로 흘러나오는 철학적인 가사들은, 바로 리비티 사상이 음악이라는 형태를 빌려 세상에 나타난 고귀한 소리화(Sonification)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게는 불평등과 인종차별, 신식민주의의 착취 속에서 신음하던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와 사랑,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연대라는 강력한 우주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혼의 공용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가혹한 역경을 초월한 눈물겨운 긍정의 미학, 아이리(The Tearful Aesthetics of Positivity Transcending Adversity, Irie) : 자메이카 민중의 정서적 근원과 그들의 처절한 생존 본능을 완성하는 마지막 핵심 키워드는 파투아어로 '모든 것이 좋다', '내면이 평화롭다', '긍정적이고 기분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라는 뜻을 지닌 '아이리(Irie)'입니다. 아이리라는 이 짧고 경쾌한 단어 속에는 결코 단순히 현재의 기분이 편안하고 좋다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얄팍한 낙천주의나 현실 도피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세기에 걸친 백인 지주들의 지독한 노동 착취와 극심한 빈곤, 뼈를 깎는 폭력적인 역사적 트라우마 속에서도 결코 삶의 끈을 놓거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자신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웃음과 마음의 여유를 찾아내는 자메이카인들 특유의 위대한 '생존을 위한 긍정의 미학'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가장 비극적이고 잔혹한 고난의 순간조차 리듬과 춤, 해학으로 넘어서고자 했던 이들의 뼈아픈 역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으로 등재된 낡고 색 바랜 문서의 지면 위에 너무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처절한 고난을 증언하는 첫 번째 기록이 바로 2009년 자메이카를 비롯한 여러 카리브해 국가들, 그리고 식민 종주국이었던 영국이 역사의 오점을 반성하며 공동 등재한 '영국령 카리브해 노예 기록물(Registry of Slaves of the British Caribbean 1817-1834)'입니다. 19세기 초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이 영연방 내에서 공식적으로 법적 금지 조치를 당한 이후에도, 카리브해의 영국의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노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불법적인 새로운 노예 밀반입을 엄격히 통제한다는 행정적인 명목으로 이 방대한 노예 등록부 제도를 강제 시행했습니다. 현재 자메이카 기록보관소(Jamaica Archives & Records Department)에 소중히 소장된 이 낡은 문서들 속에는 단순히 짐승이나 물건 같은 재산 목록처럼 취급되었던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계 노예들의 이름, 성별, 나이, 그리고 어디서 끌려왔는지에 대한 출신지 등 뼈아픈 인적 사항이 지독하게 건조한 필치로 꼼꼼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깊은 슬픔과 희망의 기록유산은 2011년에 자메이카가 파나마, 영국, 미국 등 관련국들과 함께 공동 등재한 '실버 맨: 파나마 운하의 서인도 제도 노동자들(Silver Men: West Indian Labourers at the Panama Canal, 1880-1914)'입니다. 노예 해방령이 떨어져 신분상의 자유를 얻은 이후에도 자메이카의 흑인 기층민중들은 여전히 백인 대지주들의 극심한 토지 독점과 부당한 소작료 책정, 그리고 숨이 턱 막히는 경제적 빈곤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이 폭발한 것이 바로 1865년, 토지 분배의 극심한 불평등과 노골적으로 차별적인 사법 제도에 분노하여 일어난 모란트 베이 반란(Morant Bay Rebellion)이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흑인 민중들의 참상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침례교 집사 폴 보글(Paul Bogle, 1822~1865)은 부당한 재판에 항거하기 위해 수백 명의 농민을 이끌고 모란트 베이 법원으로 평화적인 항의 행진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총독 에드워드 존 에어(Edward John Eyre)가 이끄는 식민 정부군은 무자비한 발포로 이들을 학살했고, 계엄령을 선포하여 무려 400명이 넘는 무고한 흑인들을 재판 없이 학살하거나 처형했습니다.
▶ 북소리가 울리기 전에 도끼를 갈아라(Sharpen Your Axe Before the Drum Beats) : 자메이카의 경이로운 유네스코 유산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세 가지 언어, 탈라와(Tallawah), 리비티(Livity), 아이리(Irie). 이 세 가지 정신은 결코 과거의 낡은 역사책 속에 박제된 화석화된 언어가 아닙니다. 가장 험준한 산악 지대의 밀림 속에서 대영제국 정규군의 빗발치는 총칼에 맞섰던 윈드워드 마룬들의 작지만 강인한 탈라와 정신, 비밀스러운 드럼 소리와 오프비트 리듬에 영혼을 실어 조상의 얼을 단단히 깨우고 우주적 평화를 노래했던 부흥주의와 레게의 리비티 철학, 그리고 숨 막히는 노예선의 참상과 타국의 차가운 진흙구덩이 속에서도 내일을 꿈꾸며 기어이 해학과 웃음을 찾아냈던 실버 맨들의 눈물겨운 아이리 정서까지……. 자메이카의 모든 문화적, 자연적, 기록적 유산들은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류의 가장 숭고한 생명력과 눈부신 회복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메이카가 세계 지도 위에서는 비록 점 하나에 불과한 작은 섬(Likkle)에 불과할지 모르나, 인류사적 인권과 저항의 관점에서는 그 어느 강대국보다도 거대하고 강인한 철학적 족적을 남긴 진정한 거인(Giant)입니다.
No wait till drum beat before you grine you axe.
Do not wait until the drum beats before you grind your axe.
북소리가 울리기 전에 도끼를 갈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