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전 세계 영토의 0.03%에 불과하지만, 지구 생물 다양성의 5%를 품은 ‘지구의 허파’, 코스타리카(Costa Rica)로 떠나보겠습니다. '코스타리카'라는 국명은 1502년 이곳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원주민들의 화려한 금장식을 보고 ‘풍요로운 해안(Rich Coast)’ ‘코스타 리카(Costa Rica)’라 명명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특히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디키스 시대의 석구가 있는 콜럼버스 이전 족장 거주지(Precolumbian Chiefdom Settlements with Stone Spheres of the Diquís)'는 완벽한 구형을 자랑하는 미스터리한 화강암 석구들을 품고 있어, 고대 원주민 사회의 뛰어난 기술력과 독특한 우주관을 보여줍니다. 또한 코스타리카는 1948년 내전 종료 후 헌법을 통해 군대를 영구히 폐지한 세계 최초의 국가로 ‘중미의 스위스’라 불립니다. 국토의 4분의 1 이상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푸라 비다(Pura Vida, 순수한 삶)'의 나라, 코스타리카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군대를 버리고 생명을 품은 철학, 푸라 비다(Pura Vida, the philosophy of embracing life by discarding the army) : 이 나라의 국경선을 통과해 현지인들의 일상으로 걸음을 내디딜 때 가장 흔하게 접하는 표현은 단연 '푸라 비다(Pura Vida)'입니다. 순수한 인생을 뜻하는 이 간결한 문구는 실생활 속에서 반가운 인사나 깊은 고마움, 혹은 모든 상황이 무척 훌륭하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다목적 만능어휘로 쓰입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열대 지역의 여유로움으로만 해석한다면 이 국가가 지닌 심오한 철학적 기반을 간과하게 됩니다. 이 짧은 긍정의 언어 속에는 물리적 타격과 폭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 자리에 평화와 생명 존중이라는 고결한 가치를 심으려 했던 뼈저린 반성이 깊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 비무장 평화주의의 역사적 결단(The historical decision of unarmed pacifism) : 가장 결정적인 역사의 전환점은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비극이자 도약의 발판이었던 1948년의 국내 무력 충돌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라파엘 앙헬 칼데론 과르디아(Rafael Ángel Calderón Guardia) 전임 통치자 및 테오도로 피카도 미찰스키(Teodoro Picado Michalski)로 이어진 당시 집권 세력의 선거 부정행위 의혹은 심각한 사회 분열을 일으켰고, 결국 44일 남짓한 기간 동안 2,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참혹한 내전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러나 시민 저항군을 지휘해 타락한 정권을 몰아낸 호세 마리아 이폴리토 피게레스 페레르(José María Hipólito Figueres Ferrer)의 행보는 승리한 권력자들이 흔히 밟는 군부 독재의 전철을 철저히 벗어났습니다. 제2공화국 창설 위원회(Founding Board of the Second Republic)를 책임졌던 그는 벨라비스타 병영(Cuartel Bellavista) 공간을 국가 역사박물관으로 전환하며 대내외에 상비군 조직의 완전한 해산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 비폭력적인 맹세는 1949년 공포된 새 헌법 조항에 영구적으로 새겨졌으며, 2017년에 이르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코스타리카의 군대 폐지(Abolition of the Army in Costa Rica)' 관련 문건들에 명확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귀중한 기록들은 외세의 안보 위협을 총칼 대신 국제법적 연대와 비무장 평화주의(Unarmed Pacifism) 노선으로 극복해 낸 작은 나라의 찬란한 외교적 승리를 증명합니다.
▶ 밀림에 잠든 완벽한 구형, 디끼스의 신비(The perfect spheres asleep in the jungle, the mystery of Diquís) : 넓게 펼쳐진 짙은 녹음과 다채로운 생물들이 어우러진 이 평화로운 땅에도 현대 인류의 으뜸가는 과학 기술력으로조차 단번에 해독하지 못한 고대 인류의 수수께끼가 존재합니다. 코스타리카만의 독특한 문화적 결을 증명하는 두 번째 열쇠는 바로 '디끼스(Diquís)'입니다. 토착 원주민의 언어로 '큰 물줄기'를 가리키는 이 단어는 남부 지역의 거대한 떼라바 강(Térraba River) 하류 삼각주를 지칭하는 동시에, 기원후 500년 무렵부터 1500년경 무렵까지 비옥한 퇴적층 위에서 화려하게 꽃피웠던 미지의 원주민 사회를 뜻합니다. 바로 이곳의 눅눅한 우림 한가운데에 2014년 이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타이틀을 거머쥔 '디끼스의 석구(石球)를 동반한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족장 거주지(Precolumbian Chiefdom Settlements with Stone Spheres of the Diquís)' 유적이 침묵 속에 숨죽이고 있습니다.
▷ 자본주의가 깨운 고대 거석문명(The ancient megalithic civilization awakened by capitalism) : 핀카 6(Finca 6), 바탐발(Batambal), 엘 실렌시오(El Silencio), 그리할바-2(Grijalba-2) 등 4곳의 핵심 발굴지로 구성된 이 기념비적 유산이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된 과정은 거대 자본주의 기업의 상업적 팽창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1930년대 무렵 미국 국적의 다국적 과일 유통 기업인 유나이티드 프루츠 컴퍼니(United Fruit Company) 소속 노동자들이 대규모 바나나 단지를 개간하기 위해 중장비로 땅바닥을 헤집던 중, 깊은 흙먼지 아래 파묻혀 있던 매끄러운 바위 구체(Esferas de piedra)들을 우연히 지상으로 끌어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저명한 인류학자 도리스 제머레이 스톤(Doris Zemurray Stone) 및 하버드 대학교에 몸담고 있던 사무엘 커클랜드 로스롭(Samuel Kirkland Lothrop) 같은 선구적 연구자들의 치열한 탐사가 더해지며 이 거석 조형물이 품은 학술적 진가가 비로소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 권력의 시각화와 기하학적 정밀함(The visualization of power and geometric precision) : 현재까지 온전히 확인된 300개가량의 디끼스 돌덩이들은 지름 1미터 미만의 소형 조각부터 최대 지름 2.57미터에 무게가 15톤을 거뜬히 넘기는 육중한 화성암 덩어리까지 그 몸집이 무척 다양합니다. 연구자들을 진정으로 당혹스럽게 만든 대목은 돌을 깎아낸 집단이 날카로운 철제 도구는 물론 물류 운반을 돕는 수레바퀴조차 발명한 적 없는 사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로지 타격용 돌망치(Hammerstone)로 원석 모서리를 깨부수는 타격 박리(Percussion flaking) 기법을 취하고, 물과 모래를 지속적으로 비벼 겉면을 끈질기게 갈아내는 마찰 연마 작업만으로 오늘날의 기하학에 부합할 만큼 완벽한 둥근 결과물을 도출했습니다. 게다가 주원료인 반려암(Gabbro) 덩어리를 캘 수 있는 돌산은 유적지로부터 무려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탈라만카 산맥 기슭의 험지여서, 급류와 진흙밭을 극복하고 그 묵직한 바위들을 삼각주까지 가져온 물리적 방식은 여전히 짙은 안갯속에 갇혀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의 세밀한 지층 연대 측정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활동은 기원전 1500년 무렵의 소박한 평등주의 농경 집단이었던 시난크라기(Synancra Period)를 기점으로 출발하여,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800년 무렵인 아구아스 부에나스기(Aguas Buenas Period)에 접어들어 점진적으로 상업 교역망과 영토를 넓혀나갔습니다. 이후 기원후 800년부터 1500년 언저리까지 존속된 치리퀴기(Chiriquí Period)에 진입하면서 막강한 소수 지도층에게 경제력과 정치력이 집중되는 고도화된 군장 사회(Chiefdom Society)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압도적 정밀도를 뽐내는 돌 구체의 생산 역량이 정점을 찍은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이 조형물들은 단순한 장식용 공예품의 수준을 뛰어넘어, 특권층의 확고한 통치 위상과 지배력을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핵심적인 정치 도구로 쓰였습니다. 군장의 안식처나 광장 진입로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도열한 바위공의 부피와 개수는 곧바로 해당 지배자의 절대적 서열을 방증했습니다. 동시에 몇몇 전문가들은 이 거대한 구체들이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거나 정밀한 종교 의식을 치르기 위한 기준선 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설득력 높은 주장을 내놓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16세기 초반 에스파냐 탐험대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을 덮친 끔찍한 전염병 탓에 바위를 쪼아내던 원주민들은 단 한 줄의 문헌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무대에서 허망하게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 바퀴에 다채롭게 새긴 농민의 자부심, 까레따(Carreta, the peasants' pride colorfully carved on wheels) : 이 나라 중부의 서늘하고 높은 산등성이에서 탁 트인 바닷가로 내려오는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치다 보면, 화려한 색깔의 염료와 복잡하게 얽힌 기하학 그림으로 눈부시게 치장된 목조 수레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이 국가의 정신적 뼈대를 관통하는 세 번째 상징물이자, 땅을 일구며 살아온 기층민들의 긍지를 가장 노골적으로 뿜어내는 전통 우마차 '까레따(Carreta)'입니다. 물건을 싣고 달리는 짐수레를 뜻하는 이 단어는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코스타리카의 소 모는 전통과 우마차(Oxherding and oxcart traditions in Costa Rica)' 문화의 물리적 본체이며, 거친 환경을 견뎌낸 농민들의 강인함을 입증하는 살아 숨 쉬는 화폭과도 같습니다.
▷ 커피 교역이 탄생시킨 운송의 혁신(The innovation of transportation born from the coffee trade) : 까레따가 이들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물류 수단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결정적 계기는 19세기 중엽 불어닥친 거대한 커피(Coffee) 수출 돌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자주권을 획득한 직후 이곳은 중부 계곡 지역 특유의 화산재 토양 및 적절한 기온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발판 삼아 최상급 커피 원두를 길러내며 엄청난 경제적 부흥기를 맞이했습니다. 허나 정성껏 거둬들인 농산물을 바다 건너 유럽 대륙으로 넘기기 위해서는 태평양 연안의 유일무이한 교역 창구였던 푼타레나스(Puntarenas) 항구까지 가파르고 험난한 산길을 주파해야만 했습니다. 깎아지른 능선과 빽빽한 정글, 우기만 되면 거대한 늪으로 돌변하는 지옥 같은 진흙 구간을 돌파하려면 열흘에서 보름 남짓한 고달픈 사투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서구인들이 들여왔던 고전적 형태의 짐수레는 살대 틈새로 질퍽한 진흙이 뭉쳐버려 뻘밭에 처박히기 일쑤였으므로, 현지 농민들은 과거 아스텍 문명권에서 의식용으로 취급하던 둥근 나무 판막이와 스페인식 둥근 테두리 개념을 절묘하게 융합하는 놀라운 기술적 진보를 이룩해 냅니다. 속이 빈 바큇살 구조를 과감히 도려내고 튼튼한 통나무 널빤지를 덧대어 빈틈없고 육중한 통바퀴(Spokeless wheel) 형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끈적이는 수렁을 자비 없이 가르고 전진하는 이 무소의 뿔 같은 까레따는 악조건 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빈틈없이 책임지는 절대적인 밥줄로 맹활약했습니다.
▶ 역사의 해류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유산들(Awake heritages not swept away by the currents of history) : 지금까지 우리는 반만 킬로미터를 훌쩍 넘는 역사적 시공간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푸라 비다'에 오롯이 새겨진 생명 존중과 평화주의 노선, 우거진 밀림에 파묻혀 있던 '디끼스' 거석문명의 기하학적 수수께끼, 그리고 묵직한 '까레따' 바퀴 위에서 찬란하게 폭발한 현지 농부들의 굳건한 긍지를 다각도로 탐구해 보았습니다. 이웃 나라들이 피 흘리며 겪어낸 갈등을 반면교사 삼아 선제적으로 무기력을 내려놓고 천혜의 환경보호에 국가적 명운을 내던진 정치 지도자들의 혜안, 옛 토착민들이 황급히 남겨두고 떠난 거대한 문명의 조각들을 부수지 않고 세계인이 우러러보는 영광스러운 유산으로 끌어안은 문화적 포용성,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 속에 내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낡은 짐수레를 민족혼이 담긴 가장 아름다운 표상으로 부활시킨 장인들의 집요함. 이 모든 경이로운 발자취들은 작금의 코스타리카를 단순히 열대 바다 풍경이 근사한 관광 소국이 아닌, 온 인류가 적극적으로 추종하고 벤치마킹해야 할 성숙한 문화 의식과 생태 철학의 교과서적 롤모델로 훌륭하게 격상시켰습니다.
유네스코의 깐깐한 심사를 거쳐 인정받은 자연 및 기록물 등의 유산은 단순히 목록 상단에 활자로 박히는 순간 온전한 생명력이 완성되는 정적인 박제물이 결코 아닙니다. 조상들이 남긴 가치를 오늘날의 치열한 일상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호흡하게 하고, 조금의 변질 없이 다음 세대의 손에 쥐여주려는 현세대의 치열하고 깨어있는 투쟁이 식어버리는 순간, 아무리 찬연한 유산이라도 금세 빛바랜 돌덩이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고된 여정의 연속입니다. 거대 자본이 모든 영역을 삼켜버리는 난폭한 세계화의 파도와 획일화를 부추기는 현대화의 폭력적 속도전 한복판에서도, 코스타리카 국민들이 자신들만의 느릿하지만 강단 있는 고유의 발걸음, 이른바 '티코 타임(Tico Time)'을 확고하게 지켜내며 굳건한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진정한 비결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자산의 가치를 심장 깊이 간직하고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내는 현지인 '티코'들의 당당한 처세술 덕분입니다.
Nadie sabe lo que tiene hasta que lo pierde.
No one knows what they have until they lose it.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지닌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