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잉카 제국의 심장(The Inca Empire's heartland), 페루(Peru)로 떠나보겠습니다. 페루라는 국명은 16세기 초 파나마 지협 남쪽의 원주민 통치자 비루(Birú)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페루는 15세기 남미 대륙을 제패한 잉카 제국의 핵심이였으며,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m 1529~1541)에게 정복당한 뒤 약 300년간의 식민 지배를 거쳐 1821년 독립하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추픽추 역사 보호 지구(Historic Sanctuary of Machu Picchu, 1983)'는 해발 2,430m의 험준한 산봉우리에 건설된 잉카 문명의 경이로운 창조물이자, 대자연과 인간의 건축 기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찬란했던 태양의 제국과 스페인 식민 시대의 유산이 어우러진 남미 문화의 정수, 페루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천지를 뒤집고 제국의 심장을 박동케 한 군주, 파차쿠티(Pachakuti: The monarch who overturned heaven and earth and made the empire's heart beat) : 페루라는 경이로운 세계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한 첫 번째 핵심 어휘는 '파차쿠티(Pachakuti)'입니다. 이 명칭은 고대 안데스의 심오한 우주론을 묵직하게 담아낸 단어로, 우주와 시간, 대지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파차(Pacha)'와 본래의 위치로 회귀하거나 완전히 뒤집힌다는 의미를 지닌 '쿠티(Kutiy)'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즉, 파차쿠티는 '시공간의 급격한 전복' 내지는 '대대적인 재앙적 변화를 거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뜻하며, 기존의 낡은 체제가 철저히 붕괴하고 완전히 색다른 차원의 우주가 시작되는 결정적 전환점을 암시합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대목은 이 단어가 단순한 관념적 철학 용어에 그치지 않고, 잉카 제국의 확고한 기반을 다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의 존호로서 안데스 연대기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잉카 제국의 제9대 절대 군주였던 사파 잉카(Sapa Inca)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Pachacuti Inca Yupanqui, 1438~1471)는 아푸리막(Apurímac) 강 유역을 장악했던 창카(Chanka)족과의 치열한 혈투에서 대승을 거둔 인물입니다. 그는 그저 작은 규모의 군장 사회(Chiefdom Society)에 불과했던 쿠스코(Cusco)를 안데스 전역에 호령하는 거대 제국 타완틴수유(Tawantinsuyu, 4대 방위로 분할된 잉카 제국)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내포한 의미 그대로 안데스의 구시대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제국이라는 새로운 시간적 차원을 열어젖힌 진정한 설계자였던 셈입니다.
▷ 대자연과 조응하는 신성한 공간 미학, 마추픽추(Machu Picchu, the aesthetics of sacred space corresponding with mother nature) : 파차쿠티 황제의 탁월한 통치 철학과 극한의 자연환경을 아우르는 공간 미학의 정수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장소가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페루의 '마추픽추 역사 보호 지구(Historic Sanctuary of Machu Picchu, 1983년 등재)'입니다. 리처드 버거(Richard L. Burger) 교수가 지휘한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연구팀의 최신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분석에 의하면, 이 웅장한 도시는 대략 1420년대부터 1530년대 사이에 사용되었던 파차쿠티 황제 전용의 화려한 여름 궁전이자 왕실 영지(Royal Estate)로 확인되었습니다. 해발 2,430미터 높이의 아찔한 벼랑 끝, 심지어 두 개의 활성 단층선이 교차하는 지진대라는 위험천만한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공중도시가 수 세기의 풍파를 견디며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정교하게 가공된 화강암 블록들이 종이 한 장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이 완벽하게 맞물린 고도의 내진 설계와, 엄청난 폭우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지표면 아래에 자갈을 층층이 다져 넣은 놀라운 배수 시스템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토목 공학의 성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Pachamama)와 성스러운 산의 정령 아푸(Apu)를 향한 깊은 경외심을 품고, 자연의 도도한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며 지형에 완벽히 동화하고자 했던 잉카인들의 심원한 우주관이 건축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찬란히 발현된 결과물인 까닭입니다. 이들은 자연을 무모한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산세와 수맥의 기운을 다독이며 안데스의 영원한 시간 속에 인간의 터전을 평화롭게 녹여냈습니다.
▶ 광활한 대륙을 하나로 꿰맨 거대한 대동맥, 카팍 냔(Qhapaq Nan: The gigantic blood vessel that stitched a vast continent together) : 페루라는 국가의 지정학적 정체성을 명확히 밝혀주는 두 번째 핵심 어휘는 바로 '카팍 냔(Qhapaq Ñan)'입니다. 케추아어로 '위대하고 성스러운 잉카의 길' 혹은 '왕의 길'로 해석되는 카팍 냔은 전체 연장이 무려 30,000킬로미터(일부 연구진의 추산으로는 최대 40,00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고대 도로망입니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 거대한 인프라스트럭처는 오늘날의 페루를 중심축으로 삼아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에 달하는 남아메리카 6개국을 하나로 치밀하게 연결하는 전무후무한 다국적 공유유산(Transboundary Heritage)으로 평가받습니다.
인접국인 칠레가 안데스산맥과 태평양 사이에 갇혀 좁고 기다란 선형 지리에 머물고, 볼리비아가 바다와 단절된 내륙의 고원지대에 완전히 고립된 지형적 특성을 띠는 것과 대조적으로, 페루는 태평양 연안의 뜨거운 모래사막부터 안데스의 만년설이 덮인 고봉, 나아가 아마존의 짙고 푸른 정글까지 다채롭고 입체적인 생태계를 고스란히 품은 남미 대륙의 독보적 지리적 허브(Hub) 역할을 수행합니다. 잉카인들은 바로 이 페루의 심장부 쿠스코에 자리한 우아카이파타(Huacaypata, 現 아르마스 광장)를 절대적인 0킬로미터 기준점으로 설정한 뒤 사방으로 뻗어가는 혈관 같은 도로망을 건설함으로써, 극단적으로 분절된 대륙의 자연환경을 거대한 단일 제국으로 완벽히 통합해 냈습니다. 물론 이 도로는 잉카 제국만의 독자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와리(Wari)와 티와나쿠(Tiwanaku) 등 선대 고대 문명들이 남긴 유산을 매우 영리하게 흡수하고 연결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 정보와 권력을 순환시키는 제국의 혈관(The empire's blood vessels circulating information and power) : 카팍 냔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포장된 흙길을 넘어, 제국의 압도적인 권력과 막대한 물자, 그리고 다양한 사상이 혈액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도록 돕는 제국 최후의 생명 유지 장치나 다름없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바퀴라는 개념이나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수레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잉카 제국에서, 이 끝없는 도로는 오로지 인간의 튼튼한 두 발과 화물을 짊어진 야마(Llama)의 투박한 발굽에만 의지한 채 기적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험준하게 솟아오른 산악 지형을 효율적으로 돌파하기 위해 잉카 제국은 일정 구간마다 탐보(Tambo, 잉카의 숙박 및 식량 비축소)를 건립했습니다.
아울러 혹한의 추위와 심각한 고산병을 극복하며 릴레이 방식으로 국가의 중대 기밀을 전달하던 고도로 훈련된 파발꾼 차스키(Chasqui)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광활한 제국 영토 전역의 소식을 단 며칠 이내에 쿠스코의 황제에게 한 치의 오차 없이 보고할 수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제국을 하나로 묶기 위해 구축했던 이토록 완벽한 쾌속 도로망은 훗날 스페인 정복자들이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번개처럼 진격하여 멸망을 앞당기는 치명적 침투 경로로 역이용되는 뼈아픈 비극을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산과 강을 이으며 안데스 민중의 지식과 사상을 활발하게 교류시키고, 나아가 단일한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카팍 냔의 숭고한 정신적 가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결코 빛을 잃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 풀잎으로 벼려낸 공동체의 불멸하는 결속, 케스와차카(Qeswachaka: The immortal bond of community forged from fragile blades of grass) : 대망의 피날레를 장식할 세 번째 주요 어휘는 바로 '케스와차카(Qeswachaka)'입니다. 케추아어로 단단히 꼰 밧줄을 뜻하는 '케스와(Qeswa)'와 교량을 의미하는 '차카(Chaka)'가 결합하여 탄생한 이 명칭은, 잉카 제국 시대부터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아푸리막(Apurímac) 강을 가로지르며 아슬아슬한 자태로 명맥을 이어온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최후의 잉카식 짚풀 현수교를 가리킵니다. 차갑고 단단한 돌이나 무거운 철근 구조물이 아닌, 안데스의 척박한 고산 지대에서 질기게 자라나는 볏과 식물 이추(Ichu)만을 겹겹이 엮어 제작한 이 다리의 총길이는 자그마치 28미터에 육박합니다. 수십 미터 발아래에서 무섭게 요동치는 강물 위에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형태로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식물성 섬유라는 재질이 지닌 치명적인 한계 탓에 비바람이나 강렬한 태양 광선에 쉽게 부식되어 버리므로, 이 교량의 물리적 수명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고작 1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연약하기 짝이 없는 다리가 무려 500년이라는 억겁의 세월 동안, 심지어 스페인의 잔혹했던 정복기마저 꿋꿋하게 버텨내며 단 한 차례도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고유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경이로운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결코 밧줄 자체가 지닌 물리적인 내구성에 있지 않습니다. 낡고 해진 다리를 주저 없이 끊어내고 새롭게 지어 올리는 원주민들의 굳건한 '공동체 의식' 속에 그 진정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 침묵하는 대지가 들려주는 삶의 위대한 메아리(The greatest echo of life told by the silent earth) : 지금까지 우리는 파차쿠티, 카팍 냔, 케스와차카라는 세 가지 빛나는 케추아어 핵심 어휘를 매개로, 페루라는 국가가 기나긴 역사 속에 켜켜이 품어온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을 향한 경이로운 문명적 서사를 함께 밀도 있게 탐구해 보았습니다. 안데스에 깃들어 살던 고단한 민중들은 거대한 산맥이 앞길을 가로막을 때면 대지의 영적인 기운을 빌려 우주의 축소판과도 같은 성스러운 제국 도시를 구름 위에 우뚝 세워 올렸고, 험준하고 무자비한 협곡이 서로의 발길을 끊어놓을 때면 직접 맨발로 피를 토하며 길을 개척하고 연약한 풀잎을 단단히 엮어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영원히 이어냈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묵묵히 창조해 낸 문명의 눈부신 파편들은, 외부의 침략자들이 그토록 탐욕스럽게 갈구했던 화려한 황금이나 그들이 무자비하게 휘둘렀던 차가운 철기 무기 속에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년 낡은 짚풀 다리를 다시 짓는 끝없는 반복과 끈끈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 거대한 대자연의 섭리 앞에 기꺼이 순응하고자 했던 지극히 겸손한 지혜 속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요란하고 잔혹한 정복의 역사는 낡은 문서와 책장에 화려한 활자로 기록되어 언젠가 잊힐지언정, 묵묵히 대지와 호흡하며 온몸으로 체득하고 축적된 안데스 민중의 지혜는 50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 사람들의 거친 숨결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 찬란하게 박동하고 있습니다.
Huk sunqulla, huk yuyaylla, huk makilla.
One heart, one mind, one hand.
하나의 심장, 하나의 생각, 하나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