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천 개의 언덕을 가진 나라(Land of a Thousand Hills)’, 르완다(Rwanda)로 떠나보겠습니다. ‘르완다’는 국명은 키냐르완다어(Kinyarwanda)로 ‘확장하다’ 또는 ‘광대함’을 의미하는 단어 ‘크안다(Ku-aand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이는 과거 르완다 왕국이 험준한 산악 지대를 넘어 주변으로 영토를 넓혀가던 역사적 자부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국명입니다. 아프리카 대륙 중앙부 내륙에 위치한 르완다는 1994년 발생한 비극적인 내전의 아픔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르완다 집단학살 추모관(Memorial sites of the Genocide: Nyamata, Murambi, Gisozi and Bisesero, 2023)은 인류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평화의 가치를 세계에 역설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 우림인 늄궤 국립공원(Nyungwe National Park, 2023)은 다채로운 영장류와 수백 종의 고유종 조류가 서식하는 경이로운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마운틴고릴라(Mountain gorilla)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르완다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함께 땀 흘리며 세우는 재건의 철학, 우무간다(Umuganda: The philosophy of reconstruction built by sweating together) :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Kigali)를 방문한 이들은 아프리카 대도시에 대해 품고 있던 기존의 막연한 선입견이 단숨에 깨어지는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거리에 비닐봉지나 휴지 조각 하나 없는 완벽한 청결함과 질서 정연하게 가꾸어진 가로수 및 기반 시설 때문입니다. 이토록 경이로운 도시 환경을 조성한 근저에는 르완다인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우무간다(Umuganda)’라는 전통적 공동체 노동 관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르완다어로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을 뜻하는 우무간다는, 근원적으로 "사람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아프리카 반투어군(Bantu Languages)의 숭고한 철학 ‘우문투 응구문투 응가반투(Umuntu ngumuntu ngabantu)’에 정신적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무간다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국가 차원의 의무적 지역사회 연대 활동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세 시간 동안에는 전국의 교통이 통제되고 상점이 문을 닫으며, 18세부터 65세 사이의 신체 건강한 르완다 국민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거리 청소, 식목 행사, 도로 보수, 취약계층 주택 및 화장실 건설 등 공공 활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 식민 지배의 쇠사슬을 끊고 통합을 향해(Breaking the chains of colonial rule toward integration) : 그러나 우무간다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이 긍정적이고 자발적인 연대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국주의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탐욕스럽게 분할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사이, 르완다 역시 폭력적인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탄자니아의 ‘국립문서보관소 독일 기록물(German Records of the National Archives)’을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제국이 동아프리카 일대를 어떻게 인위적으로 분할하고 통치했는지 그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방대한 문서는 유럽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인의 고유한 문화와 지리적 경계를 철저히 무시한 채 이권에 따라 국경을 획정하고, 통치의 편의를 위해 인위적 계급 제도를 이식했음을 명백히 증언합니다. 이러한 식민주의(Colonialism, 植民主義)의 악의적 유산은 르완다가 벨기에의 통치를 받으며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식민 당국은 우생학적 잣대를 들이대며 본래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던 투치족과 후투족을 외형적 특성과 신분증으로 엄격히 분리하고 차별하는 분할 통치 정책을 강행했습니다. 더 나아가 상호 부조의 미덕이었던 우무간다를 ‘우부레트와(Uburetwa)’라는 억압적 강제 노역으로 변질시켰습니다.
▶ 짧은 풀밭 위에서 이루어낸 진실과 화해, 가차차(Gacaca: Truth and reconciliation achieved on the short grass) : 1994년 여름, 100일간의 학살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르완다는 거대한 묘지나 다름없는 참혹한 상태였습니다. 100만 명에 육박하는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직후, 르완다 신정부가 직면한 가장 절박하고도 난해한 과제는 무수한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국가 사법 시스템은 철저히 붕괴되었고, 판사와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 대다수가 학살당하거나 해외로 피신하여 사법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열악한 수용 시설에는 11만 5천 명이 넘는 가해 용의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수감되어 있었으나, 생존한 극소수의 법조인이 서구식 형사 재판 절차에 따라 이들을 모두 심판하려면 수백 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놓인 르완다 정부는 서방 세계가 주도하는 지연된 사법 체계 대신, 오랜 지혜의 산물인 ‘가차차(Gacaca)’에서 기적적인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르완다어로 ‘짧은 풀’ 또는 ‘사람들이 모여 앉기 좋은 부드러운 잔디밭’을 뜻하는 가차차는, 식민 시대 이전 왕조 시절부터 전통 마을 공동체(Umuryango)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했을 때 지혜로운 원로들(Abagabo)이 잔디밭에 빙 둘러앉아 시시비비를 가리고 화해를 도모하던 재판 관행이었습니다. 서구법의 이식으로 점차 소멸해 가던 이 전통을 2001년 르완다 정부는 세계가 괄목할 만한 현대적 이행기 사법(Transitional Justice, 移行期司法) 제도로 부활시켰고, 전국 1만 2천여 개 지역 사회에 ‘가차차 법정’을 설립했습니다.
▷ 복수의 사슬을 끊어낸 마을 광장의 재판관들(The village square judges who broke the chain of revenge) : 가차차 법정의 풍경은 일반적인 법정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엄숙한 법복을 두른 판사 대신, 주민들의 신임을 얻어 투표로 선출된 평범한 이웃 9명이 재판관(Inyangamugayo)으로 임명되어 잔디밭이나 나무 그늘에서 재판을 주재했습니다. 가차차의 핵심 철학은 범죄자에 대한 기계적이고 응보적인 처벌이 아니라, 철저한 진실 규명과 분열된 공동체의 치유에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수많은 마을 사람 앞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희생자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면, 재판관들은 그 진정성을 참작하여 형량을 대폭 감면하거나 징역형을 마을 인프라 재건을 위한 사회봉사 명령으로 대체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화해의 사법 절차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코데사 및 다당제 협상 과정 기록물(Archives of the CODESA 1991-1992 and Archives of the Multi-Party Negotiating Process 1993)’이 지향한 가치와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남아공 역시 악명 높은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종식하고 극단적 유혈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를 출범시키며 민주적 협상을 통한 과거사 청산의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르완다의 가차차 법정 역시 2012년 공식적으로 운영을 종료할 때까지 무려 190만 건 이상의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며 사법 공백을 훌륭히 메웠습니다.
▶ 전사의 방패가 화합의 춤사위로, 인토레(Intore: The warrior's shield transformed into a dance of harmony) : 천 개의 언덕을 품은 르완다를 상징하는 대표적 전통춤 ‘인토레(Intore)’는 그 기백 넘치는 강렬한 역동성으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선택받은 자들’ 혹은 ‘영웅들의 춤(Dance of Heroes)’이라는 영광스러운 의미를 지닌 인토레는, 1830년대 이웃한 부룬디(Burundi) 왕국의 내전을 피해 망명한 왕족 무양게(Muyange) 일행을 통해 유입되어 르완다 궁정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식민 시대 이전, 군장 사회(Chiefdom Society, 君長社會)의 성격이 짙었던 르완다 왕국에서 인토레는 투치족 정예 전사들의 군사적 위용과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연행되었던 웅장하고 호전적인 무도(武道)였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 르완다 왕국을 통치하며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군주 키겔리 4세 루와부기리(Kigeli IV Rwabugiri, 1840~1895)의 시대에 이르러 인토레는 무력과 위상의 절정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구 열강의 팽창과 아랍 노예상의 침투를 방어하는 한편, 선진적 총기로 군대를 무장시키고 중앙집권화된 군사 체계를 구축하여 영토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국왕의 엄격한 선발을 거친 최정예 엘리트 전사들은 표범 가죽을 두르고 사자 갈기를 형상화한 머리 장식을 휘날리며, 창과 방패를 들고 실제 전투를 방불케 하는 정교한 군무를 선보였습니다. 무거운 잉고마(Ingoma) 북소리와 아마콘데라(Amakondera) 나팔 소리에 맞추어 대지를 울리는 발구름을 선보이고, 가상의 적과 맞서며 도약하는 이들의 춤사위는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르완다 제국의 불패 신화와 전사들의 자부심 그 자체였습니다.
▷ 지혜와 무용을 전수하는 요람, 이토레로(Itorero, the cradle of passing down wisdom and dance) : 위대한 전사이자 무용수가 되기 위해 예비 인토레 댄서들은 ‘이토레로(Itorero)’라는 전통적 시민 및 전사 교육 기관에 입소하여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단순히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물리적 기교만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국심, 리더십, 수사학, 이웃에 대한 헌신 등 르완다 고유의 윤리적이고 공동체적인 가치를 내재화했습니다. 그러나 왕권의 상징이자 엘리트 문화의 정수였던 인토레와 이토레로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뼈아픈 쇠퇴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1962년 르완다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이후, 제1공화국을 출범시킨 그레구아르 카이반다(Grégoire Kayibanda, 1924~1976) 초대 대통령을 위시한 급진적 후투족 정권은 과거 투치족 지배층의 산물이라 여겨진 왕립 문화와 전통을 철저히 배격했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식민 지배자가 조장한 민족 간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부각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정책적으로 선동한 끝에, 르완다는 결국 제노사이드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르완다의 내일: 기억을 넘어 희망의 지평으로(Rwanda's tomorrow: Beyond memory to the horizon of hope) : 이처럼 르완다는 아프리카 대륙의 심장부에서 고유한 언어와 지혜가 담긴 전통을 흔들림 없는 나침반 삼아,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터널을 지나 희망의 지평을 향해 결연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강제적 이식과 독재 정권의 비열한 선동이 남긴 분열의 상처를 ‘우무간다’라는 숭고한 땀방울로 씻어내며 이웃 간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붕괴된 사법 체계의 공백 앞에서는 ‘가차차’라는 마을 법정의 짧은 잔디밭 위로 서로를 이끌어, 기계적 응보가 아닌 가해자의 진실된 고백과 피해자의 관용을 통한 진정한 화해의 길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자리마다 ‘인토레’라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춤사위를 피워 올리며, 부족의 경계를 넘어 오직 ‘자랑스러운 르완다인’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Igiti kimwe ntikiba ishyamba.
One tree does not make a forest.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