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Warm Heart of Africa), 말라위(Malawi)로 떠나보겠습니다. ‘말라위’라는 국명은 16세기 이 지역에 번성했던 마라비 제국(Maravi Empire)에서 유래했습니다. ‘마라비’는 체와어로 ‘불꽃’ 또는 ‘빛나는 태양’을 뜻하는데, 호수에 비친 눈부신 햇살이 마치 불꽃처럼 대지를 밝히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말라위는 국토의 약 5분의 1이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말라위호 국립공원(Lake Malawi National Park, 1984)으로, 수백 종의 알록달록한 시클리드(Cichlid) 물고기가 서식하는 ‘민물의 갈라파고스’입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이 ‘별들의 호수(Lake of Stars)’라 격찬한 말라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지코모(Zikomo, 감사합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빚어낸 생명의 찬가, 지코모(A hymn of life born from the harmony of nature and humans, Zikomo) : 말라위 민중의 평범한 일상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지코모(Zikomo, 감사합니다 혹은 실례합니다)’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단어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는 일상적인 인사말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타인의 존재 자체를 향한 무한한 존중과 대자연 및 이웃이 베푸는 자비에 대한 겸허한 감사의 철학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귀한 선물을 받거나 큰 도움을 얻었을 때만이 아니라, 비좁은 길목에서 누군가 몸을 비켜주는 소소한 배려를 마주할 때도 말라위 사람들은 맑은 미소로 지코모를 건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지코모라는 인사에 돌아오는 화답 역시 지코모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은혜를 베푸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수직적 위계를 지워내고, 우주 만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아프리카 특유의 순환적 생명관(Cyclical View of Life)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 시공간을 초월해 이어진 공동체의 연대(The solidarity of a community connected across time and space) : 말라위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와와(Wawa, 존중을 담은 인사말)’입니다. 19세기 무렵 남쪽에서 이주해 온 은고니족(Ngoni)의 언어 관습에서 기원하여 현재 말라위 전역에서 통용되는 이 단어는 특정한 사전적 의미로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길에서 마주친 낯선 이에게 인사를 건넬 때, 마을 집회에서 연장자에게 경의를 표할 때, 심지어 집안 어른의 부름에 아이가 대답할 때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와와’를 외칩니다. 이 단어가 품은 진정한 가치는 내 앞의 타인이 실재함을 인지하고, 그를 깊이 존경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원으로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따뜻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에 있습니다. 즉, 이기주의의 벽을 허물고 과거의 선조부터 현재 곁에 있는 이웃, 그리고 미래의 후손까지 하나로 묶어내는 강력한 연대의 철학이 이 짧은 음절 안에 빈틈없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 문자의 장벽을 넘어선 아프리카의 목소리(Africa's voice transcending the barrier of written language) : 총고니 암각화가 거대한 화강암과 흰 진흙을 매개로 아프리카인의 저항 정신을 시각적으로 기록했다면, 아프리카인들이 서구의 문자를 능동적으로 차용하고 변형하여 정치적 주체성을 맹렬히 기록한 또 다른 위대한 유산이 있습니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앙골라와 포르투갈의 공유 유산, 뎀보스 기록물(Arquivos dos Dembos/Ndembu Archives)입니다. 말라위와 마찬가지로 식민 지배의 아픔을 간직한 이웃 국가 앙골라 북부에서 발굴된 이 기록물은 아프리카의 정체성 보존(Identity Preservation)에 대해 서구 학계가 지녔던 백인 우월주의적 편견을 완전히 허물어뜨린 귀중한 사료입니다. 오랜 기간 서구 학계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전통 사회가 문자를 소유하지 못해 오직 구전 문화(Oral Culture)에만 의존했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앙골라 주요 민족인 음분두족(Mbundu)과 통치 계급 은뎀부족(Ndembu)의 지도자들은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격동기 동안, 지배자의 언어인 포르투갈어 알파벳 구조에 현지어 킴분두어(Kimbundu)의 어휘와 억양을 절묘하게 결합한 혼종 문자를 적극 사용하여 식민 치하의 상황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외교 서신, 부족장의 유언장, 무역 영수증 등 무려 1,160여 점에 달하는 이 방대한 아카이브는 식민 통치 기간 내내 숨겨져 있다가 포르투갈 인류학자 안토니우 알메이다(António de Almeida, 1900~1984)에 의해 1934년 앙골라 오지에서 극적으로 수집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은뎀부족 통치자들은 제국주의 무력을 앞세운 포르투갈 총독부 및 이웃 아프리카 왕국들과 끊임없이 고도의 서면 외교를 펼쳤습니다. 동족이 노예로 팔려가는 비극과 영토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들은 뛰어난 외교술과 문자 기록을 무기로 삼아 부족의 생존권을 방어하고 정치적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습니다. 17세기 전설적인 저항의 상징이었던 은동고와 마탐바 왕국의 은징가 여왕(Nzinga of Ndongo and Matamba, 1583~1663)의 투쟁 정신을 계승하여, 서구의 문자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부족 간의 연대를 굳건히 하는 강력한 생존 도구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말라위의 체와족이 산속 바위에 암호 같은 그림을 새기며 냐우와 치남왈리의 정신을 수호했듯, 자존심 높은 앙골라의 은뎀부족 역시 종이 위에 변형된 문자를 꾹꾹 눌러 쓰며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세계관을 지켜냈습니다. 그림과 문자라는 표현 방식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두 세계유산 모두 최악의 고난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아프리카 공동체의 영원무궁한 ‘와와’ 정신을 전 세계에 묵직하게 웅변합니다.
▶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을 위로하는 몸짓(A gesture that heals wounds and comforts souls) : 말라위 민중의 심오한 내면을 이해하기 위한 세 번째 키워드는 ‘은디쿠브웨라(Ndikubwera, 나는 오고 있다 혹은 돌아올 것이다)’입니다. 일상 대화에서 이 단어는 ‘오고 있는 중이다’라는 현재진행형으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했다가 작별할 때 ‘비록 지금 떠나지만 머지않아 다시 너에게 돌아오겠다’는 애정 어린 기약을 담아 널리 사용됩니다. 이는 인간관계를 칼로 베듯 끝맺는 단절의 논리가 아니라, 떠남과 돌아옴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순환적 시간관을 엿보게 하는 철학적 표현입니다. 말라위 사람들에게 있어 개인이 겪는 깊은 상처나 정신적 트라우마 역시 영원한 파멸이나 소외가 아니라, 공동체의 따뜻한 관심과 전통 제의를 통해 다독여져 머지않아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Ndikubwera)’ 일시적 시련으로 인식됩니다. 나약해진 영혼의 회복과 일상으로의 귀환을 가장 강렬한 예술적 퍼포먼스로 구현한 것이 바로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빔부자 치유의 춤(Vimbuza Healing Dance)입니다. 말라위 북부 산악 지대에 거주하는 툼부카족(Tumbuka) 사이에서 전승되는 빔부자는, 아프리카 반투어군 사용 지역 전역에서 나타나는 ‘고통을 다스리는 북’이라는 의미의 응고마(Ng'oma) 전통에 역사적 뿌리를 둡니다. 흥미롭게도 빔부자라는 명칭은 인간을 괴롭히는 영적 질병 자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 병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치유하는 성스러운 무속 의식 전체를 통칭합니다.
이 의식의 주된 환자는 가부장적 억압이나 불행으로 심각한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앓는 마을의 연약한 여성들입니다. 병증이 깊어지면 환자는 템피리(Temphiri)라 불리는 치유의 집에 머물며 전통 치유사의 세심한 돌봄을 받습니다. 본격적인 의식이 시작되면, 환자를 중심으로 수많은 마을 여성과 아이들이 거대한 겹원을 만들고 치유의 영혼을 부르는 합창을 시작합니다. 이때 소수의 남성들은 영혼을 일깨우는 빔부자 특유의 복잡하고 빠른 리듬으로 거대한 북을 두드립니다. 심장을 타격하는 맹렬한 북소리와 군중의 구슬픈 합창이 최고조에 이르면, 환자는 서서히 무아지경(Trance)에 빠져들어 몸을 일으키고 억눌렸던 빔부자 영혼의 형상을 격렬한 춤사위로 발산합니다. 서양 의학이 정신 질환자를 격리하고 약물로 억제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빔부자는 환자에게 내면의 분노와 슬픔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안전한 무대를 제공하여 상처를 씻어내는 고도의 심리 치료이자 예술 치료입니다. 19세기 타 부족의 침략과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기독교 선교사들의 탄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빔부자는 공동체의 음악과 춤이라는 원초적 연대를 통해 개인의 상처를 끌어안고 그들을 일상으로 ‘은디쿠브웨라(돌아오게)’ 하는 빛나는 치유 예술입니다.
▶ 말라위가 빚어낸 인류애의 서사(A Narrative of Humanity Woven by Malawi) : 말라위호 국립공원의 투명한 호수에서 약동하는 생명의 경이로움부터, 서늘한 고원 바위틈에 암호처럼 깃든 끈질긴 저항의 기록,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서 격렬한 춤사위로 뿜어져 나오는 치유의 제의까지. 이 장대한 아프리카의 서사는 결국 인류애라는 거대한 물줄기로 유유히 수렴됩니다. 지코모(Zikomo)로 대변되는 대자연과 타인을 향한 무한한 겸손, 와와(Wawa)라는 짧은 인사에 담겨 수백 년의 억압을 뚫고 굳어진 시공간을 초월한 연대, 은디쿠브웨라(Ndikubwera)를 통해 증명된 영혼의 회복과 일상으로의 귀환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들은 결코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국경을 초월하여 거친 대자연이라는 요람 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고 고통을 나누며 진보해 왔으며, 그 찬란한 협력의 역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묵직한 이름표를 달고 오늘날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역사적 비극과 현대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말라위 민중이 특유의 맑은 미소를 잃지 않고 단단히 결속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바로 그들의 언어 깊숙이 내재한 절대적 연대의 철학 덕분입니다.
Chala chimodzi sichiswa nsabwe.
One finger cannot crush a louse.
한 손가락으로는 이를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