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프리카의 황금 제국(Golden Empire), 말리(Mali)로 떠나보겠습니다. ‘말리’라는 국명은 과거 서아프리카를 호령했던 말리 제국(Mali Empire, c. 1235–1610)을 계승한 것으로, 밤바라어(Bambara)로 ‘하마’란 뜻도 있습니다. 말리는 사하라 사막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전 세계 여행자와 고고학자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신비로운 유적들로 가득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젠네 고시가지(Old Towns of Djenné, 1988)의 거대한 진흙 대사원과 ‘사막의 진주’라 불리는 팀북투(Timbuktu, 1988), 그리고 가면 무용의 전통이 피어난 반디아가라 절벽(도곤족 땅)(Cliff of Bandiagara, Land of the Dogons, 1989)까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자산가로 꼽히는 만사 무사(Mansa Musa, 1280?~1337?)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 신비로운 사막의 제국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인간을 인간답게 묶는 연대의 철학, 모고야(Mogoya: Philosophy of Solidarity Binding Humans) : 말리 사회의 근간을 지탱하고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위대한 철학적 개념은 바로 '모고야(Mogoya)'입니다. 밤바라어(Bambara)로 '사람'을 뜻하는 모고(Mɔgɔ)에 추상적인 상태나 고유의 속성을 나타내는 접미사 야(ya)가 결합하여 탄생한 이 단어는, 표면적으로 '인성' 혹은 '인간다움(Personhood)'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고야가 내포한 철학적 깊이는 서구 사회가 규정하는 '독립적이고 온전한 주체로서의 개인'이라는 개념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합니다. 말리의 문화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철저하게 타인과의 유기적인 사회적 관계망 속에 기꺼이 편입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서구 철학의 근간이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개인의 이성에 머물러 있다면, 말리의 모고야는 "우리가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에, 비로소 내가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아프리카 특유의 우분투(Ubuntu) 정신과 강렬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고 막대한 부를 쟁취했다 하더라도, 이웃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사회적 의무를 철저히 외면하는 이기적인 존재는 말리 사회에서 결코 한 명의 온전한 '모고(Mɔgɔ, 사람)'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모고야는 단순히 착하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평면적인 훈계가 아닙니다. 이는 자신이 공동체라는 거대한 그물망의 한 코에 불과함을 겸허히 인지하고, 타인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자발적인 헌신이자 사회를 유지하는 보편적 공공재(Public Good)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주저 없이 다가가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음식을 나누며 인사를 건네는 말리인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은, 바로 이 모고야가 매 순간 실천되고 증명되는 가장 흔하면서도 숭고한 풍경입니다.
▶ 갈등을 치유하는 어머니의 포용력, 바데냐(Badenya: Maternal Embrace Healing Conflicts) : 말리의 독특한 가족 제도와 사회 구조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바데냐(Badenya)'입니다. 일부다처제가 전통적으로 보편화된 만데(Mandé) 문화권에서, 아이들은 같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각기 어머니가 다른 수많은 이복형제와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성장하게 됩니다. 이토록 복잡한 가족 관계망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의 매우 강력하고 상반된 심리적·사회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파데냐(Fadenya, 아버지의 핏줄을 나눈 형제 관계)'와 '바데냐(Badenya, 어머니의 핏줄을 나눈 형제 관계)'입니다.
파데냐는 언어적으로 '아버지의 자식임(Father-childness)'을 의미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한된 자원과 권력을 두고 치열하게 벌이는 이복형제들 간의 팽팽한 긴장, 경쟁심, 그리고 영웅주의적 도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파데냐의 억센 에너지는 젊은이들이 고향의 안락함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고, 혁신을 창조하며, 때로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게 만드는 강력한 원심력(Centrifugal Force)으로 작용합니다. 순디아타 케이타 역시 이복형제와의 파데냐적 갈등으로 인해 혹독한 망명 생활을 겪어야만 했고, 결국 이를 극복하며 제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가 경쟁과 일탈만을 향해 치달을 경우,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분열하고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데냐가 끊임없이 야기하는 파괴적인 갈등의 위협으로부터 말리 사회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고 든든히 지탱해 주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연대를 상징하는 '바데냐(Mother-childness)'입니다.
바데냐는 한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태어나 같은 젖을 먹고 자란 동복형제 사이의 절대적인 신뢰이자 이타적인 유대감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복형제들 간의 날 선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를 의지하고 보호하는 구심력(Centripetal Force)으로 작용합니다. 나아가 바데냐는 좁은 가족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 사회적 권위에 대한 순응, 질서와 안정, 이웃 간의 협력, 그리고 고향과 전통에 대한 깊은 헌신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적 가치로 무한히 확장됩니다.
아무리 거친 세상 밖에서 파데냐의 에너지로 치열한 전투를 치른 영웅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어머니의 넉넉한 품, 즉 바데냐가 부드럽게 지배하는 고향 공동체로 돌아와 그 혁신의 열매를 부족원들과 함께 나누어야만 비로소 온전한 성취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바데냐가 갖는 결속의 상징성은 굳건히 살아 있습니다. 일례로, 2013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 창설된 유엔다면적통합안정화임무(MINUSMA) 등에 파병되어 말리의 평화를 지키는 데 헌신했던 부르키나파소 평화유지군 대대의 이름 역시, 숭고한 형제애와 굳건한 결속을 뜻하는 '바데냐 대대(Badenya Battalion)'였습니다.
▶ 적을 동지로 바꾸는 마법의 웃음, 시난쿠냐(Sinankunya: Magical Laughter Turning Foes to Friends) :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인간 사회에서 갈등과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말리인들은 수백 년의 치열한 역사 속에서 유혈 사태나 경직된 법적 처벌 대신, 세상에서 가장 기발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갈등의 불씨를 녹여내는 마법 같은 사회적 제도를 발명해 냈습니다. 바로 '사촌 관계' 또는 '농담 관계(Joking relationship, Cousinage à plaisanterie)'로 번역되는 '시난쿠냐(Sinankunya)'입니다. 이 독특한 사회적 규약의 기원 역시 앞서 만덴 헌장을 반포했던 13세기 말리 제국의 창립자 순디아타 케이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시난쿠냐는 단순한 혈연관계를 훌쩍 뛰어넘어, 특정한 가문이나 민족, 부족 그룹 간에 맺어진 영원한 평화와 상호 불침략의 약속입니다. 가장 놀랍고 흥미로운 점은 이 숭고한 동맹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엄숙한 피의 서약이 아니라, 상호 간에 철저하게 허락된 '거침없는 농담과 유쾌한 모욕'이라는 데 있습니다. 시난쿠냐 관계에 속하는 두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완전히 낯선 사이일지라도, 서로의 성씨(Patronymic)를 확인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과장된 언어적 공격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라이벌 동맹 관계인 트라오레(Traoré) 가문과 디아라(Diarra) 가문의 사람이 길에서 조우하면, "너희 트라오레 녀석들은 평소에 콩을 너무 많이 먹어대서 만날 때마다 방귀나 뀌어대는 골칫덩어리들이다"라며 점잖은 예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농담을 스스럼없이 던집니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상대방은 분노하거나 모욕감을 느끼기는커녕 폭소를 터뜨리며 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말로 맞받아쳐야만 하는 묵시적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유희적인 상호작용은 자칫 특정 민족적, 계급적 우월감이나 날 선 분노로 번질 수 있는 사회의 팽팽한 긴장감을 단숨에 무장해제 시킵니다. 일례로 수도 바마코(Bamako)의 번잡한 시장 한복판에서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다툼이 벌어지더라도, 지나가던 제3자가 분쟁 당사자들의 성씨를 묻고 시난쿠냐 동맹을 발동시켜 유머러스하게 개입하면, 핏대를 세우던 사람들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갈등을 즉시 종료합니다. 상대방에게 절대 물리적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며, 동맹 가문이 중재에 나서거나 부탁을 할 경우 결단코 거절할 수 없다는 절대적 불문율을 지닌 이 제도는, 수많은 민족이 섞여 사는 말리가 내전으로 붕괴되지 않고 일상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최고의 비공식적 사법망이자 심리적 압력 밸브입니다.
▶ 말리의 지혜가 인류의 미래에 던지는 빛(Mali's Wisdom Illuminating Humanity's Future) : 말리의 드넓은 붉은 사바나와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위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박물관 유리관 속에 갇힌 과거의 박제된 유물이 아닙니다. 개인의 진정한 본질을 타인과의 끈끈한 관계망 속에서 찾으며 연대하는 '모고야(Mogoya)', 파괴적인 경쟁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든든하게 감싸 안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바데냐(Badenya)', 그리고 유쾌한 조롱을 통해 증오를 영원한 우정으로 탈바꿈시키는 평화의 헌장 '시난쿠냐(Sinankunya)'. 이 세 가지 말리어 키워드는 이질적인 집단들이 사소한 다름으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극단으로 분열하는 21세기의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철학적 성찰과 치유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말리의 광활한 영토 위에 새겨진 유형의 경이로운 세계유산들과, 그들의 언어 속에 숨 쉬는 무형의 철학적 유산들을 넘나들며 그들이 정성껏 가꾸어온 지혜의 거대한 숲을 거닐었습니다.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무자비한 세계화와 극단적 이기주의의 거친 물결 속에서, 우리는 종종 내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공동체의 소중함과 이웃의 체온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역사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말리의 붉은 대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그 어떤 웅변보다 단호하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아로새겨진 위대한 성취는 결코 한 명의 영웅이 마법처럼 이루어내는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Bolo kelen tɛ bɛrɛ ta.
A single hand cannot pick up a stone.
한 손으로는 돌을 들어 올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