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테랑가의 사자들(Lions of Teranga), 세네갈(Senegal)로 떠나보겠습니다. ‘세네갈’은 세네갈강(Senegal River) 혹은 ‘우리의 배’란 뜻의 월로프어(Wolof language) ‘수누 갈(Sunu Gaal)’에서 유래했습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세네갈은 아프리카 서부에서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지켜온 테랑가(Teranga, 환대)의 국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레섬(Goree Island, 1978)은 과거 대서양 노예무역을 증언하는 인도주의의 성지이며, 서아프리카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복합유산 니오콜로 코바 국립공원(Niokolo-Koba National Park, 1981)은 사바나 생태계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자연의 보고죠! 아프리카 대륙의 최서단, 세네갈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낯선 이를 가족으로 품는 환대의 마법, 테랑가(Teranga: The magic of hospitality that embraces strangers as family) : 세네갈에 발을 들인 이방인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는 단어는 단연 '테랑가(Teranga)'입니다. 서구 중심의 개인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를 단순히 '친절'이나 '손님맞이' 정도로 해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월로프 문화권에서 테랑가는 길 잃은 나그네조차 혈육처럼 온전히 끌어안는 절대적인 연대 의식입니다. 어원적으로 테랑가는 신체의 일부 혹은 전체에서 나누어진 몫을 뜻하며, 이는 타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상징합니다. 이들은 누군가를 대접할 때 반대급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내어줄 것이 턱없이 부족한 궁핍한 상황에서조차 기꺼이 자신의 공간과 음식을 나누며 방문객에게 상석을 권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테랑가의 참된 본질입니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이 물리적 형태로 가장 완벽하게 발현된 사례가 202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네갈의 국민 음식 '체부젠(Ceebu Jën)'입니다. 북부의 옛 식민 중심지였던 생루이(Saint-Louis) 어촌에서 태동한 이 요리는 쌀, 신선한 생선, 풍성한 채소를 한데 모아 오랜 시간 정성껏 졸여 완성됩니다. 식사 때가 되면 가족은 물론 곁을 지나는 이웃과 낯선 여행객까지 거대한 그릇 주위로 초대받습니다. 모두가 바닥의 매트에 둘러앉아, 발이 닿지 않게 하고 무릎을 세우지 않는 등 엄격한 예법을 지킵니다. 오직 오른손만을 써서 자기 앞의 구역에 놓인 음식만 조심스레 나누어 먹는 이 행위는, 공동체 내의 평등을 각인시키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몸소 실천하는 일상 속 종교 의례와 다름없습니다.
이 거대한 포용력의 뿌리는 서아프리카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말리(Mali)의 '쿠루칸 푸가에서 선포된 만덴 헌장(Manden Charter, proclaimed in Kurukan Fuga)'이 대표적입니다. 1235년경 키리나 전투에서 승전한 말리 제국의 창립자 순디아타 케이타(Sundiata Keita, c. 1217~c. 1255)는 분열된 부족들을 통합하며 이 구전 헌장을 반포했습니다. 헌장 제5조는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을, 제16조는 여성의 국정 참여를, 제20조는 노예에 대한 가혹행위 금지를 천명하는 등 현대 인권 선언에 필적하는 혁신적 가치를 담았습니다. 타자를 존중하고 타 부족과의 사회적 조화를 열망했던 서아프리카 고유의 세계관은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그리오(Griot, 구전 역사가)들을 통해 전승되었고, 오늘날 세네갈 사회를 지탱하는 테랑가의 단단한 토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영혼을 지탱하는 불굴의 명예와 용기, 욤(Jom: The indomitable honor and courage that sustain the soul) : 세네갈인의 내면을 형성하는 두 번째 뼈대는 '욤(Jom)'입니다. 월로프어로 욤은 명예와 존엄, 그리고 굴복을 모르는 내면의 용기를 뜻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욤이야말로 세네갈 사회의 모든 도덕적 미덕을 잉태하는 근원적 토대라고 해석합니다. 전통적으로 월로프 사회의 귀족 지배층이었던 '게르(Geer)'는 물질적 결핍에 흔들리지 않고,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기품과 자존심을 잃지 않아야 할 엄중한 의무를 지녔습니다. 요컨대 욤은 외부의 물리적 폭압이나 달콤한 회유 앞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수호해 내는 강인한 정신의 성채입니다. 이러한 지적 '욤'이 역사적으로 응집된 결정체가 바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윌리엄 퐁티 사범학교 논문집(William Ponty School Collection of Papers)'입니다. 프랑스 식민 당국은 1903년 생루이에 이 학교를 세운 뒤, 고레섬을 거쳐 1938년 세비코탄(Sébikotane)으로 이전시키며 아프리카의 수재들을 체제에 순응하는 하급 관료로 길러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아프리카 학생들은 식민 사관에 포섭되는 대신 방학마다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전통, 역사, 종교, 언어를 치밀하게 수집하고 연구했습니다.
훗날 세네갈 총리를 역임한 마마두 디아(Mamadou Dia)나 아프리카 연합(AU) 초대 사무총장이 된 부바카르 디알로 텔리(Boubacar Diallo Telli) 등이 집필한 700여 편의 민족지는, 프랑스의 동화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인 스스로 학문적 존엄을 지켜낸 기념비적 저항의 산물입니다. 또한 1895년부터 1959년까지의 식민 통치 기록을 담아 1997년 등재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기록물(Fonds of the Afrique occidentale française)' 역시, 역설적이게도 억압 속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어떻게 욤을 잃지 않고 역사를 증언해 냈는지를 방증합니다. 지식인들의 펜끝에서 맴돌던 불굴의 의지는 민중의 육체적 항거로도 폭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남부 카사망스(Casamance) 지역에서는 알린 시토에 디아타(Aline Sitoe Diatta, c. 1920~1944)라는 걸출한 여성 지도자가 탄생했습니다. 조라(Jola)족 출신인 그녀는 전통 신 에미타이(Emitai)의 계시를 빌려, 비시(Vichy) 정권이 강제한 쌀 수탈과 환금 작물 재배 정책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카실라(Kasila) 의식을 통해 부족을 결속시킨 그녀의 투쟁은 당국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고, 결국 1943년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말리 팀북투(Timbuktu)로 유배된 후 스물넷의 나이에 괴혈병으로 옥사했습니다. 그러나 민족을 위해 죽음조차 불사했던 그녀의 결기는, 오늘날 세네갈인들의 가슴 속에 욤의 표상으로 부활하여 아프리카의 잔 다르크(Joan of Arc)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 케르사: 자연과 인간을 잇는 절제와 겸양의 지혜(Kersa: The wisdom of restraint and modesty connecting nature and humans) : 세네갈의 복합적 철학을 관통하는 마지막 열쇠는 '케르사(Kersa)'입니다. 월로프어로 케르사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 타인 앞에서의 겸손, 행동의 철저한 절제, 그리고 기품 있는 예의범절을 통칭합니다. 테랑가가 타인을 향해 뿜어내는 수평적 환대의 에너지이고 욤이 내면을 단련하는 수직적 명예라면, 케르사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엄격한 규범입니다. 세네갈인들은 실내에서 언성을 높이지 않으며, 어른 앞에서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선을 아래로 두는 등 단정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이는 인간관계의 피상적 예의를 넘어, 광활한 대자연과 우주의 섭리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생태학적 겸양으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케르사의 철학이 생태적 실천으로 꽃피운 경이로운 공간이 바로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살룸 삼각주(Saloum Delta)'입니다. 대서양과 맞닿은 약 5,000제곱킬로미터의 이 거대한 하구에는 맹그로브(Mangrove) 숲이 이루는 미로 같은 수로와 함께, 200여 개가 넘는 거대한 조개무지가 섬처럼 점점이 흩어져 있습니다.
홀로세 전기부터 무려 1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일대의 원주민(現 세레르-니오민카 족)들은 갯벌에서 꼬막과 맹그로브 굴을 채취하며 삶을 꾸려왔습니다. 경이로운 점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생태계가 붕괴할 만큼 자원을 남획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디오론 부막(Dioron Boumak) 같은 대형 조개무지의 고고학적 분석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단기간에 조개를 집중 채취한 뒤 그 구역을 오랜 시간 비워두어 자연이 개체수를 온전히 회복하도록 배려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이 쌓아 올린 수백 미터 길이, 15미터 높이의 웅장한 조개껍데기 언덕은 11세기경부터 사자(死者)를 안치하는 성스러운 고분군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탐욕에 족쇄를 채우고 연약한 맹그로브 생태계의 복원력을 철저히 존중한 이들의 삶의 방식은, 눈앞의 이윤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현대 산업사회에 '생태학적 절제'라는 준엄한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 인내와 연대가 빚어내는 아프리카의 내일(Africa's tomorrow forged by patience and solidarity) : 지금까지 테랑가, 욤, 케르사라는 세네갈 고유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아프리카와 대한민국에 아로새겨진 위대한 인류의 문화유산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보았습니다. 테랑가가 과거의 피 묻은 상처마저 씻어내고 낯선 이방인을 혈육으로 끌어안는 수평적인 사랑의 연대라면, 욤은 제국주의의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고 버텨내는 수직적이고 결연한 자존심입니다. 그리고 이 역동적인 두 에너지를 조화롭게 묶어내는 케르사는, 인간이 대자연과 영적인 우주 앞에서 결코 오만해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탐욕을 경계하는 차분한 절제력입니다.
이 세 기둥이 굳건히 받치고 있는 세네갈 공동체는 단순한 경제적 빈곤이나 일시적 혼란에 무너지지 않는 찬란한 회복 탄력성을 자랑합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노예무역의 비극과 식민 지배의 수탈을 겪고도, 메마른 대지 위에서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며 낯선 이의 손을 온기로 감싸 쥐는 그들의 맑은 미소 뒤에는 기나긴 세월 눈물로 다듬어온 인내와 성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Ndank-ndank mooy jàpp golo ci ñaay.
It’s slowly catching the monkey from the elephant.
숲에서 원숭이를 잡으려면 천천히 꾸준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