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인도양의 마지막 낙원(The Last Paradise on Earth), 세이셸(Seychelles)로 떠나보겠습니다. ‘세이셸’은 18세기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Louis XV , 1710~1774)의 재무장관 장 모로 드 세이셸(Jean Moreau de Séchelles, 1690~1760)에서 유래했습니다. 19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세이셸은 115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발레 드 메 자연보호구역(Vallée de Mai Nature Reserve, 1983)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씨앗 ‘코코 드 메르(Coco de Mer)’의 자생지이며, 알다브라 환초(Aldabra Atoll, 1982)는 수십만 마리의 알다브라 거대 육지거북(Aldabra giant tortoise)이 서식하는 야생의 보고입니다. 영국 장군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1833~1885)이 선악과(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를 발견한 에덴동산(Garden of Eden), 세이셸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다문화가 빚어낸 화합의 모자이크, 코스테(Koste: A mosaic of harmony forged by multiculturalism) : 세이셸을 설명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코스테(Koste)'입니다. 코스테는 세이셸 크레올어로 '모이다', '함께하다', '결속하다'라는 강렬한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1993년 신규 헌법이 제정된 후 1996년에 공식 채택된 세이셸 공화국의 국가(National Anthem, 國歌) 제목이 '코스테 세셀와(Koste Seselwa/Unite Seychellois, 모든 세이셸 사람들이여 함께 모이자)'라는 점만 보아도, 이 단어가 국가 정체성 확립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세이셸 출신 음악가 데이비드 프랑수아 마르크 앙드레(David François Marc André, 1958~)와 조지 찰스 로버트 파예(George Charles Robert Payet)가 합심하여 단 하루 만에 완성한 국가는, 출신 배경과 피부색이 철저히 다른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평화롭게 공존하는지를 웅변적으로 증명합니다.
세이셸의 인구 구성을 면밀히 살펴보면 크레올(Creole)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진정한 융합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초기 개척을 주도했던 프랑스 정착민들과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 및 마다가스카르 출신 노예들, 그리고 대영제국 지배기에 유입된 인도인, 중국인, 아랍인 노동자와 상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종의 핏줄이 이 작은 섬에 섞여 들었습니다. 인류의 세계사를 돌이켜볼 때, 이토록 이질적인 집단과 계급이 좁은 공간에 억지로 모일 경우 필연적으로 끔찍한 인종 갈등이나 유혈 계급 투쟁이 발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세이셸 사람들은 피비린내 나는 배척 대신 '코스테'의 정신을 발휘하여 스스로를 단단한 공동체로 결속해 냈습니다.
현재 세이셸 국민의 97퍼센트 이상이 혼혈인 세이셸 크레올인(Seychellois Creoles)이며, 이들은 인종 차별 없이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아우르는 경이로운 종교적 관용을 베풀며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아프리카 대륙 권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와 높은 인권 의식을 수호하는 비결은, 바로 이 '코스테'라는 굳건한 사회적 합의와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크레올의 심장(Leker Kreol)'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시간이 멈춘 고대 화강암의 신비, 그라니트(Granit: The mystery of ancient granite where time stands still) : 대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지형이 떠오르십니까? 대개 해저 화산이 폭발해 솟아오른 거친 현무암 지대이거나, 오랜 세월 산호가 퇴적되어 형성된 평탄한 환초일 것입니다. 실제로 몰디브(Maldives)나 모리셔스(Mauritius)를 위시한 인도양의 아름다운 군도들은 지질학적으로 화산섬이나 산호섬에 속합니다. 그러나 세이셸을 정의하는 두 번째 키워드인 '그라니트(Granit)', 즉 화강암(Granite, 花崗岩)은 세이셸을 여타 열대 도서 국가와 완벽히 차별화하는 독보적인 지질학적 표식입니다.
세이셸 전체 인구의 99퍼센트 이상이 거주하며 정치, 경제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이너 아일랜드(Inner Islands)는 마에(Mahé), 프랄린(Praslin), 라디그(La Digue) 등 4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섬들은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입니다. 최근의 해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신생 지형이 결코 아닙니다. 무려 7억 5천만 년 전 생성된 화강암반이 바탕이 되며, 과거 초거대 대륙이었던 곤드와나(Gondwana)가 분열할 당시 인도양 한가운데로 외롭게 떨어져 나온 거대한 대륙의 파편입니다.
지질학자들은 이토록 기이한 형성 과정을 거친 세이셸을 '미세 대륙(Micro-continent, 微細大陸)'이라 칭합니다. 심해 한가운데 고립된 대륙성 화강암 섬으로는 지구상에서 세이셸이 유일무이합니다. 억압의 시간 동안 비바람과 파도에 둥글게 마모된 거대한 화강암 바위들은 기기묘묘한 자태로 에메랄드빛 해변을 장식하며, 세계 어디에서도 마주할 수 없는 압도적인 절경을 빚어냅니다.
화강암반이라는 견고하고 안정적인 지질학적 고립은 세이셸을 생명체가 독자적으로 진화해 온 경이로운 '진화의 실험실'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 생태학적 정수가 바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프랄린 섬 중앙의 발레 드 메 자연보호구역(Vallée de Mai Nature Reserve)입니다. 이곳은 인류가 출현하기 수억 년 전의 원시 야자수 숲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경이로운 성소입니다.
특히 식물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씨앗으로 알려진 코코 드 메르(Coco de mer, 최대 25킬로그램에 달하는 바다의 코코넛)가 야생에서 자생하는 유일한 서식지이자, 세이셸에만 존재하는 국가 상징조 검은 앵무새(Black parrot)의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지각 변동의 풍파를 견뎌낸 단단한 화강암 지반 덕분에, 태초의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고 현대의 우리에게 숭고한 경외감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망각의 늪에서 인류의 기억을 건져 올린 블리크 컬렉션(The Bleek Collection rescuing humanity's memory from the swamp of oblivion) : 세이셸의 그라니트가 단단한 암반의 힘을 빌려 태초의 '자연과 지질'을 지켜낸 거대한 타임캡슐이라면, 인류는 기록이라는 섬세하고 위대한 도구를 통해 원초적인 '지혜와 문화'를 보존하려 분투해 왔습니다. 최근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국가들은 연대망을 구축하여 멸실 위기에 처한 풍부한 기록유산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世界記錄遺産)으로 등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원시 인류의 언어와 정신세계를 철저한 학문적 사명감으로 건져 올린 아프리카의 대표적 유네스코 기록유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리크 컬렉션(The Bleek Collection)을 조명하는 것은 뜻깊은 작업입니다.
▶ 억압을 넘어선 자유의 울림, 무챠(Moutya: The echo of freedom beyond oppression) : 세이셸 사람들의 깊은 내면과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크레올어 키워드는 '무챠(Moutya)'입니다. 무챠는 18세기 초 프랑스 정착민들의 농장 경영을 위해 아프리카 대륙과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 강제 이주된 노예들이 창조해 낸 영혼의 춤이자 맹렬한 타악기 음악입니다. 작열하는 열대의 태양 아래서 무자비한 채찍질을 견디며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노예들은, 깊은 밤이 찾아오면 농장주의 감시를 피해 인적 드문 숲속이나 외딴 해변에 모여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이들에게 허락된 악기라곤 나무 둥치의 속을 파내어 얇은 염소 가죽을 덧댄 조악한 전통 북(Moutya drum)과 버려진 코코넛 껍질, 그리고 녹슨 냄비나 금속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무챠는 고된 하루를 마친 뒤의 단순한 오락거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북재비가 모닥불 열기에 염소 가죽을 팽팽하게 덥혀 심장 박동처럼 거칠고 원초적인 리듬을 빚어내면, 군중 속 남성들이 사회적 불의와 삶의 고단함을 선창합니다. 이어 주위를 둘러싼 여성 무용수들이 날카로운 고음의 코러스로 화답하며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립니다. 무용수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서로의 신체를 전혀 맞닿지 않은 채 엉덩이를 흔들고 맨발로 모래를 끌며, 관능적이면서도 묘하게 절제된 몸짓으로 춤을 이어갑니다. 노랫말 속에는 백인 지배층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복잡한 은어와 수수께끼(Zedmo)를 정교하게 섞어 부조리한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했습니다. 고향을 상실한 이들에게 무챠는 지옥 같은 삶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심리적 안식처이자, 비인간적인 억압에 맞서는 가장 평화롭고도 강력한 문화적 저항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층은 민중의 예술을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식민 지배기인 1935년, 식민 당국과 종교계는 무챠의 체제 전복적인 성향과 원초적인 표현을 억압하고자 '북 연주 규제법(Drum Regulations)'을 제정, 밤에 북을 치며 춤추는 행위를 법으로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무챠는 오랜 세월 하층민의 천박한 문화로 낙인찍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세이셸 사람들의 혈관에 흐르는 크레올의 저항 의식은 결코 잠들지 않았습니다. 2018년 마침내 북 규제법이 공식 철폐되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고, 세이셸 정부와 노르빌 에르네스타(Norville Ernesta)를 비롯한 위대한 전통 음악가들의 끈질긴 헌신 덕분에 무챠는 찬란한 빛을 되찾았습니다.
2021년 12월, 유네스코는 무챠가 내포한 인류애적 가치와 문화적 고유성을 드높이 사 세이셸 역사상 최초로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人類無形文化遺産)으로 등재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무챠는 억압의 사슬을 끊고 끝내 자유를 쟁취한 세이셸 사람들의 뜨거운 심장 박동으로서 전 세계의 가슴을 흔들고 있습니다.
▶ 크레올의 영혼이 속삭이는 지혜(Wisdom whispered by the Creole soul) : 지금까지 우리는 인도양 한가운데 흩뿌려진 115개의 보석 같은 섬, 세이셸 공화국을 세 가지 고유한 크레올어 키워드를 통해 심도 있게 탐구했습니다. 코스테(Koste)를 통해 수많은 이방인과 노예가 서로를 끌어안고 마침내 견고한 공동체를 이룩한 화합의 정신을 엿보았고, 그라니트(Granit)를 통해 억겁의 지질학적 격변 속에서도 묵묵히 태초의 생태계를 보존해 낸 화강암의 경이로운 뚝심을 목격했습니다. 나아가 무챠(Moutya)를 통해 처절한 억압과 굴레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찬란한 예술로 승화시켜 낸 크레올인의 끈질긴 생명력을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부터 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세이셸과 인류가 보존해 온 위대한 유산은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닙니다. 이는 작은 섬나라가 지구의 수억 년 지질학적 진화를 오롯이 품어냄과 동시에, 어두운 제국주의적 착취를 딛고 성숙한 관용의 국가로 거듭난 눈물겨운 발자취를 증명하는 생생한 역사서입니다.
Linyon i fer lafors.
Unity is strength.
우리의 연대가 곧 가장 강력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