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에리트레아(Eritrea)로 떠나보겠습니다. ‘에리트레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홍해(Red Sea)를 가리켜 불렀던 ‘에리트라이아 해(Erythra Thalassa, 붉은 바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에리트레아는 고대 악숨(Aksum) 제국의 찬란했던 유산을 품고 오스만 제국 및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와 에티오피아 독립 전쟁(Eritrean Independence war, 1961~1991)까지, 파란만장하고도 극적인 역경을 이겨낸 독립 국가입니다. 수도 아스마라(Asmara: A Modernist African City, 2017)를 통해 아프리카 본토에서 가장 매혹적인 모더니즘 건축의 파노라마로 주목받으며,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이었던 코아히토 문화 경관(Qoahito Cultural Landscape, 2011, 잠정목록)은 홍해의 찬란했던 해양 교류 역사를 증언하는 에리트레아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아프리카의 전통 현악기 크라르(Krar)의 선율과 함께 아스마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네 여인이 세운 평화의 기적, 아르바에테 아스마라(Arbaete Asmara: The miracle of peace built by four women) : 에리트레아의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현재 수도인 아스마라(Asmara)의 어원이 된 티그리냐어의 역사적 문장, '아르바에테 아스마라(Arbaete Asmara)'입니다. 이 구절을 글자 그대로 풀어보자면 "네 명의 여인(여성형 복수)이 그들을 하나로 통합시켰다"라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고 신화적인 뜻을 머금고 있습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티그리냐족의 뼈대 있는 역사에 의하면, 해발 2,350미터 고도에 위치한 춥고 메마른 케베사(Kebessa) 고원 일대에는 본래 게자 구르톰(Gheza Gurtom), 게자 셀렐레(Gheza Shelele), 게자 세렌세르(Gheza Serenser), 그리고 게자 아스마에(Gheza Asmae)라는 명칭을 가진 네 개의 씨족이 제각기 독자적인 마을을 형성한 채 서로를 적대시하며 맹렬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끝이 보이지 않는 내부의 갈등과 소모적인 영토 싸움 탓에, 이 부족들은 험한 산맥을 타고 넘어오는 저지대 유목민들과 도적 무리의 거듭된 약탈 행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부족 전체가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짙은 공포가 드리운 가운데, 각 집단을 대표하는 지혜롭고 결단력 있는 여인들이 마침내 역사의 전면으로 나섰습니다. 이들은 지속적인 분열은 곧 완벽한 공멸로 이어질 뿐이며, 오로지 평화로운 결속만이 척박한 고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남성들을 열렬히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기둥이었던 여인들의 그토록 간절하고 거룩한 외침에 깊이 감동한 남성들은, 끝내 손에 쥔 무기를 내려놓고 거대한 하나의 공동체로 화합할 것을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힘을 합쳐 외부 적들의 침공을 막아내고 찬란한 번영의 토대를 다진 이후, 이 정착지는 여성들이 앞장서서 이룩한 평화와 통합의 위대한 징표로서 '아르바에테 아스마라'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부여받았고, 훗날 '아르바에테' 부분이 탈락하면서 지금의 '아스마라'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습니다.
▶ 한 잔의 끓어오르는 영혼, 붉은 바다의 환대, 분나(Bunna: A boiling soul in a cup, hospitality of the Red Sea) : 두 번째로 우리가 긴 호흡을 가지고 들여다볼 대상은, 에리트레아 민중들의 메마른 영혼을 다독이고 고단한 매일의 일상을 버텨낼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궁극의 생명수, 바로 티그리냐어로 커피를 지칭하는 '분나(Bunna)' 혹은 '분(Boon)'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예외 없이 열광하는 기호음료인 커피의 원산지이자 찬란한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아프리카의 뿔 일대에서, 에리트레아는 이웃 나라 에티오피아와 함께 '하베샤(Habesha)'라고 불리는 거대한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두 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태초의 모습에 가까우면서도 고유하고 엄숙한 전통 커피 세리머니의 가치를 온전히 공유하고 있습니다. 속도전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잔의 커피란 그저 쏟아지는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급하게 마셔대는 카페인 공급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에리트레아 사회 내부에서 이 의식은 단순한 음료 섭취의 차원을 아득하게 넘어서서 거의 신성한 종교적 제례에 버금가는 막강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집을 찾아온 손님을 정성을 다해 대접하고, 이웃사촌들과 일상의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마을 공동체 구성원 간의 연대감을 끈끈하게 조여 매는 에리트레아 문화의 중추적인 사회적 신경망이 다름 아닌 이 분나 의식인 것입니다. 에리트레아인들은 이 오래되고 위대한 무형의 자산을 현대의 일상 속에서도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아름답고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소중하게 보존하며 누리고 있습니다.
▷ 세 번의 잔에 담긴 축복과 연대의 철학, 아웰, 칼라이, 바라카(Awel, Kale'i, Baraka: The Philosophy of Blessing and Solidarity in Three Cups) : 이렇듯 아름다운 분나 의식이 지닌 진정한 절정은, 동일한 커피 가루에 물을 붓고 또 부어 무려 세 차례나 거듭하여 끓여내는 그 진득한 인내의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끓여내어 맛과 향이 가장 농밀한 첫 번째 잔은 티그리냐어로 '아웰(Awel)'이라 일컬으며, 그 뒤에 다시 물을 보충하여 한결 부드럽게 끓여낸 두 번째 잔은 '칼라이(Kale'i)',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세 번째 잔은 '축복받다'라는 경건한 의미를 담아 '바라카(Baraka)'라고 명명합니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혀끝에 닿는 커피 본연의 물리적인 농도는 차츰 연해지기 마련이지만, 좁디좁은 거실에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근황을 묻고 아픈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그 심리적 연대의 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짙고 끈끈해져만 갑니다. 이토록 느긋하고 정성을 쏟아야만 하는 행위의 과정은 모든 것이 맹렬한 속도전으로 내몰리는 냉혹한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타인의 평안을 위하여 기꺼이 나의 아까운 시간과 육체적 노동력을 조건 없이 바친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고결하고 이타적인 배려의 원형을 고스란히 재현해 냅니다. 모인 이들은 갓 튀겨낸 팝콘이나 정통 방식으로 구워낸 빵 힝바샤(Himbasha)를 조금씩 뜯어 나누어 먹으며, 마침내 마지막 세 번째 잔인 바라카로 목을 축임으로써 서로의 무탈함과 굳건한 건강, 그리고 신이 내려주는 자애로운 축복이 가득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하게 염원합니다.
▶ 순교자의 피로 쓴 책임과 연대의 철학, 히드리(Hidri: The philosophy of responsibility and solidarity written in martyrs' blood) : 세 번째이자 우리의 지적 탐험의 대미를 장식할 키워드은, 오늘날 에리트레아 사람들의 뜨거운 혈관 속에 끊임없이 흐르며 그들을 지탱하는 가장 압도적이고 장엄한 정치적, 사회적 신념인 '히드리(Hidri)'라는 개념입니다. 티그리냐어에 속하는 이 짧은 단어를 단 하나의 획일적인 의미를 지닌 다른 나라 언어로 매끄럽게 번역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만, 그들이 겪어온 처절한 역사의 결을 빌려 굳이 묘사해 보자면 '공동체의 더 큰 대의(大義)를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감내하는 개인의 조건 없는 헌신', '다음 세대에게 어김없이 전달되어야만 하는 막중한 도덕적, 역사적 책무',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스러져간 순교자들이 남겨둔 숭고한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겠다는 굳은 결의'를 모조리 포괄하는 지극히 다차원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결정체입니다. 서두에서 에리트레아 민중이 관통해야 했던 피비린내 나는 30년 독립 전쟁(1961~1991)의 비통한 역사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인구 규모나 최신 군사력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던 거대 제국 에티오피아, 그리고 그들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던 냉전 체제 하의 글로벌 초강대국들의 야욕에 맞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싸워나가야 했던 그 절망과 공포의 나날 속에서, 에리트레아 민중의 항전 의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히 받쳐준 힘의 원천은 번지르르한 첨단 무기나 외부의 물질적 원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히드리 정신을 밑거름 삼아 피어난 강철 같은 동지애(Bitsaynet),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는 자기희생(Tewfiynet), 그리고 그 어떠한 가혹한 억압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는 초인적인 관용과 인내심(Tsewarnet) 덕분이었습니다.
▷ 아스마라, 분나, 그리고 히드리: 세 개의 나침반으로 읽는 에리트레아의 존엄과 연대(영문: Asmara, Bunna, and Hidri: Reading Eritrea's Dignity and Solidarity Through Three Compasses) : 지금까지 우리는 아프리카의 뿔이라는 거친 지정학적 틈새에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경이로운 국가, 에리트레아의 깊고 다층적인 내면을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키워드를 나침반 삼아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탐험해 보았습니다. 오랜 부족 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네 명의 지혜로운 여인이 이끌어낸 숭고한 평화의 기적이자, 식민 통치의 참혹한 잔재를 아프리카 민중의 땀방울과 주체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탄생시킨 에리트레아 최초의 세계유산 '아르바에테 아스마라'. 척박하고 여유 없는 고단한 삶의 굴레 속에서도 기꺼이 생두를 볶아 향기로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입구가 하나뿐인 제베나를 정교하게 기울여 세 차례나 끓여낸 커피를 이웃에게 나누며 대가 없는 축복을 기원하는 영혼의 거룩한 환대 의식 '분나'. 그리고 30년이라는 헤아리기조차 힘든 기나긴 식민 지배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민족의 집단 기억과 고대 문자가 새겨진 기록물들을 목숨을 던져 지켜냄으로써, 마침내 국가의 단단한 뼈대를 세우고 자주독립이라는 기적을 쟁취하게 만든 투철한 희생정신과 세대를 초월한 끈끈한 연대의 철학 '히드리'. 우리가 살펴본 이 세 가지의 키워드들은 단순히 에리트레아가 지닌 이국적이고 파편화된 문화적 파편들을 보기 좋게 나열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서구 제국주의가 남긴 잔혹한 폭력의 상흔, 모든 것을 앗아가는 참혹한 전쟁의 고통, 그리고 지독한 지정학적 고립이라는 그야말로 한계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 구성된 공동체의 존엄성과 그들만의 정체성이 어떻게 산산이 조각나지 않고 오히려 역경을 자양분 삼아 더욱 찬란하고 견고하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전 세계를 향해 완벽하게 증명해 내는 거대한 인류의 서사시라 할 수 있습니다.
Seb zeyblu aadi, may zeyblu wadi.
A village without people is like a river without water.
사람이 없는 마을은, 물이 없는 강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