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억원 고료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게 난치병인 류마티스 진단을 내렸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
“선배 어머니의 손가락은 류마티스 환자의 손가락 모양이 아닌 것 같은데.”
우연한 한마디로 마음의 지옥문이 열렸다.
젊은 판사가 묻는다.
불의한 시대에 개인의 정의란 무엇인가.
서른 살의 판사인 하지환은 어느 날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그의 고향이자 그가 판사로 처음 부임했던 곳인 신해시로 내려간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2년 전 그가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을 담당했던 손지은 경사. 2년 전 그는 9년 동안 독한 류마티스 약을 먹다 결국 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병원으로 찾아가 어머니의 진료기록부를 요청하지만 어머니를 치료한 우동규는 진료기록을 내주기를 거부하다 그가 판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태도가 돌변한다. 지환은 병원에서 받은 서류를 들고 인근 도시의 의사를 찾아가 어머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고, 우동규가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게 류마티스 진단을 내려 계속 약을 먹게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류마티스 유병률은 보통 1퍼센트 미만인데 신해시에서는 인구의 10퍼센트가 류마티스 환자라는 것이었다. 판사로서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우동규와 싸우다 그가 다칠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환은 우동규를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한다.
한편 공황 장애를 겪는 지환은 후배 효린의 충고에 따라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한다. 지환은 정신분석을 통해 내적 갈등의 원인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가지만 정신분석은 그가 놓인 상황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한 의사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의료, 종교, 사법, 언론, 정치 권력을 상대로 쉽지 않은 싸움을 시작한 그가 많은 환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친 우동규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 있을까?
[추천사]
무엇보다 정신분석학을 이야기에 끌어들였다는 점이 이 소설의 인상을 강렬하게 한다. 정신분석학 같은 전문 영역을 소설에 끌어들일 때 대개 그것은 독자를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불의의 집단에 의해 회유와 기만의 용도로 쓰이며 독자의 뒤통수를 친다. 치료적 명분을 위해 의사가 환자의 트라우마를 교묘하게 지어내고 무의식마저 조작할 가능성을 소설적 상황을 통해 제시하는 점이 멋지다. 이 판사 작가에게 이제는 죄와 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책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적인 전문성을 기대해도 좋겠다. _구효서(소설가)
『보헤미안 랩소디』는 악몽에 관한 소설로 읽힌다. 개인의 꿈이 결핍과 분노를 먹이로 자라나며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개인들의 악몽이 모여 세상을 뒤덮는 부패의 그물이 되고, 개인은 다시 그 그물에 포획되어 벗어날 길 없는 악몽을 꾼다. 현실이 너무 잔혹해서 악몽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듯한, 정의라는 말이 너무 높아서 꿈조차 꿀 수 없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_김형경(소설가)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고 무수한 거짓과 싸우며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을 응원하며 읽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익’에는 아주 민감하고 ‘진실’에는 너무나 둔감한 세태, 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힘은 한없이 커지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개인은 볼품없이 왜소해진 시대상을 판사인 주인공이 겪는 곤경을 통해 더없이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 근원을 깊게 보여주고 있다. _방현석(소설가, 중앙대 교수)
법과 공적 절차가 손 쓸 수 없는 불의의 영역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 한 젊은 판사가 있었다. 그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자기를 괴롭히던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낸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주인공이 복수의 길을 향해 갔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복수는 결코 정의에 도달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혹은, 복수 그 자체의 불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함인가. _서영채(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자아의 실체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과 인간 삶의 변화에 대한 지향성이다. 또한 이 소설은 디테일의 힘에서도 대단한 매력을 발휘한다. 체험과 의식의 성장이 행복하게 맞물려서 소설의 풍성한 육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_하응백(문학평론가)
결국 문학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기에 이 소설은 그러한 문학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다고 할 것이다. _세계문학상 심사위원단(박범신, 구효서, 은희경, 이혜경, 김형경, 방현석, 서영채, 하응백, 김미현)
[책 속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악이 되기도 한다. 합법인 행동이 악이고 위법인 행동이 선일 때도 있다. 한 사람이 선과 악을 번갈아 저지르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법정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고 주장하면서 나더러 자신이 선의 영역에 있음을 선포해달라고 한다. (9쪽)
“우동규의 병원에 다니는 환자 수가 연간 삼만 명이래요. 신해시 인구가 삼십만 명 조금 넘죠? 류마티스 유병률이 일 퍼센트 미만이니까 류마티스 환자가 많아야 삼천 명인 게 정상이지요. 한 도시에 류마티스 환자가 인구의 십 퍼센트나 되는 곳은 아마 세계적으로도 신해시뿐일걸요.” (35쪽)
“신해성모병원은 신해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종합병원이야. 직원들만 천 명이 넘어. 신해시의 정치인들, 종교인들, 지역 유지들과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어. 선배는 단지 의사 한 명이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거야. 이기기도 어렵고 이긴다 해도 선배가 다칠 거야.”
“그렇다고 엄마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네 엄마가 당했다고 생각해봐. 그래도 그렇게 말할 거야?” (80쪽)
수사 과정에서 신해시에 널리 소문이 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신해시에 뿌리를 둔 방송이나 신문은 수사 결과를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신해시의 기자들은 신해성모병원이 신해시에서 가장 큰 광고주이기 때문에 보도할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오히려 중앙의 방송국이 사건의 수사 결과를 간략하게나마 보도했다. (131쪽)
사기죄는 자신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한 재산죄인바, 피의자는 류마티스 관절염 전문의로서 명성을 높이거나 병원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생각으로 이런 행위를 하였을 개연성이 더 높은데, 이러한 이익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이라고 볼 수 없어 재산죄인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
피의자가 특정 항류마티스제를 판매하는 제약회사로부터 정기적으로 현금, 여행 경비, 비서 채용 경비를 지원받아온 사실은 인정되나 그러한 지원을 받은 시점 전후에 피의자가 항류마티스제를 처방한 건수에는 큰 변화가 없으므로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 (133쪽)
나는 검찰의 힘은 사람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 가야 할 사람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데 있음을 절감했다. (135쪽)
생각해보면 그림이나 사진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원래부터 내 얼굴에 대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이물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 자신이 내가 아닌 느낌,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불현듯 침투할 때가 있었다. 간헐적으로 솟아오르는 자살 충동도 나로부터 내가 아닌 그 어떤 존재를 추방하고 싶은 충동인지도 몰랐다. (154쪽)
뿌연 유리는 무수한 갈등으로 더럽혀져 있는 하지환 씨의 무의식이에요. 유리가 깨끗하지 않으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죠. 외부 세상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해요. 유리가 깨끗하면 현실이 바뀔 때마다 변화를 제때 인식할 수 있지만 유리가 더러우면 현실이 바뀌었는데도 예전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되죠. 그러니 유리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닦아야 해요. 하지만 유리를 닦는 작업은 고통스럽죠. 자기 자신을 직시하고, 자기의 오류를 인정하고, 자기를 변화시켜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살아요. (155쪽)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거짓된 상을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거짓 자기의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성취를 거듭해도 타인의 배 속에 밥을 넣는 것처럼 허기가 채워지지 않고 허무해지기만 했던 것이다. 그날 밤 평소보다 술이 많이 들어갔다. (223쪽)
“엄마한테서 사랑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엄마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어요? 부모들이 다들 자식을 사랑하는 줄로 착각하지만 사랑이 아닐 때가 많죠. 애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존재가 부모예요. 자신의 분을 풀고, 자신의 소유욕과 지배욕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식을 이용하는 부모가 많아요.” (230쪽)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성적인 계산의 산물은 아니잖아요. 상대방이 나에게 불이익보다 유익을 더 많이 줄 것이라는 계산이 섰을 때만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잖아요.”
“진정한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본질이 달라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정신적으로 성장시키고 확장시키는 것이죠. 반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과거에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 심리적 패턴에 빠지는 것에 불과해요.” (250쪽)
“선배, 죽는 거 선배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힘든 일 아니야. 모르핀을 많이 주사하면 기분 좋은 상태에서 호흡 곤란으로 편하게 죽어. 모르핀보다 더 빠른 건 염화칼륨이야. 주입하면 즉사야. 죽는 게 두려우면 내가 나중에 책임지고 편안하게 죽게 해줄게. 그러니 죽는 거 걱정 말고 살아 있을 땐 삶에 집중해.” (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