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는 한밤중에 귀가 잘린 채 도로에 버려졌는가
형의 죽음과 가토의 검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라
악의 심연을 섬뜩하게 그려낸 1급 미스터리의 탄생!
김이수의 장편소설 『가토의 검』은 폭력에 침식당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경고하는 소설이다. 더불어 우리 역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일본 사회의 우려스러운 행보를 경계해야 한다는 작가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놀라운 흡인력과 정교한 현장감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급 미스터리의 탄생이다.
『가토의 검』은 2013년 단편소설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 김이수의 첫 장편소설이다. 40대 후반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문단에 나온 작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갈빗집 접시닦이, 술집 홀보이, 중국집 배달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해 졸업 후 공무원의 길로 들어선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이후 일본 유학을 거쳐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오래전부터 품었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본격적으로 작가 수업을 받은 뒤 문단에 데뷔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국회를 주요 배경으로 삼아 한‧일 정치꾼들이 벌이는 위험한 게임과 범죄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편소설의 탄생을 알렸다.
●책 속에서
“그런데 아직 흉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 충격을 줄 정도면 상당히 무게가 나가는 흉기 같은데, 근처에서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범인이 가져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떨어진 귀의 단면을 조사해봤는데,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절단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상처가 절대 아니라는 거죠. 누군가 칼로 사체, 아니 형님의 귀를 절단해서 주머니에 넣어주고 머리를 둔기로 내리쳐 살해하고 도로 위에 내팽개친 거죠. 아니면 죽인 뒤에 귀를 잘랐거나.”
‘형이 창고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은?’
‘골프채는?’
‘샤갈에 찾아온 남자는?’
‘형의 귀, 누가?’
이 네 가지 의문이 남았다. 맨 처음 의문에 동그라미를 쳤다. 형이 창고에서 빼낸 물건이 무언지 알아보는 게 이 사건의 출발점이다. 형이 위험을 무릅쓰고 창고에서 무언가 가지고 나왔다면 그건 평범한 물건이 아닐 것이다. 겁이 많은 형이 말대가리 말처럼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려면 정보가 더 필요했다. 최대식도 형이 가져간 물건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곽 형사는 형의 감사에 대해 아직 조사 중이라고 했지만 오늘 알아본 바로는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정보를 빼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시도 정도는 한번 해볼 만했다.
겉으로는 다들 비아냥거리는 듯했지만 일본으로부터 정식 절차를 거쳐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것은 매우 상징성이 큰 사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직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일본 땅에 남아 있는 걸 감안한다면 일본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아영의 말대로 쉽게 성사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양 보좌관의 영감은 보기 좋게 성사시켰다. 거기에 대한 의문의 열쇠는 여기 이 문서 안에 있었다. 가토의 검과 교환을 전제로 했다면 합의가 쉽게 성사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료를 보고 나니 양 보좌관과 형 사이에 무슨 일이 오갔는지 짐작이 갔다.
“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검의 이력을 보면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봉장으로 나가는 가토 기요마사에게 하사한 검 같네요.”
정 교수가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여기 보면 함경북도에서 발견된 거라고 했는데, 기요마사는 한때 함경북도를 점령하고 거기에 머물며 호랑이를 사냥해 히데요시에게 바쳤다고 해서 ‘호랑이 가토’라고 불렸죠. 조선의 호랑이를 잡았다는 건 맹수가 없었던 일본으로서는 최고의 용맹을 뜻하는 거죠. 이 검이 함경도에서 발견된 거라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 이기적 유전자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어딜까?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었다. 자기애가 없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 위에 설 수 없다. 내 이기적 유전자가 나를 그쪽으로 이끈다면 나는 기꺼이 이끌려 갈 것이다. 나는 이미 권력의 맛을 봤다. 비록 폭력에 의한 것이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그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을 얻는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저는 아직 이해가 안 됩니다. 금란가사 반환 일지를 보면 일본의 국회의원과 문무성 공무원까지 금란가사 반환 협상에 참여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가토의 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을 사주해서 압류창고에 있는 검을 빼돌리고 또 살인까지 할 정도로 중요한 겁니까? 만일 이 일이 세상에 밝혀진다면 일본 정부도 곤란해질 게 아닙니까? 그렇게까지 할 만큼 가토의 검이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까?”
“처음 문제가 아직 안 끝났잖아. 우리 형이 죽었어. 당신 형이 죽은 게 아니라 내 형이 죽었다고. 그것도 귀가 잘린 채 말이야.”
양 보좌관이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양 보좌관을 그냥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미닫이문 사이로 홀에 앉아 있는 아영을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양 보좌관과 거래를 하면서 은연중 수직적 관계라는 암묵적 동의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런 역학관계를 정리할 때가 됐다. 앞으로는 동등한 위치에서 모든 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양 보좌관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오늘이 아니면 그런 기회를 잡기 힘들었다.
소설NEW는 뉴웨이브(new wave) 문학을 지향하는 나무옆의자의 소설 시리즈로,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간소설(middlebrow fiction)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