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탐하는 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금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책쾌 살인 사건!
“백성을 하늘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한데 어찌 천하의 주인이 따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왕도 없고 노비도 없고,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조선의 개벽을 꿈꾸는 혁명가 허균이 새로운 세상을 담은 위험한 소설,
천지를 뒤흔들 걸작을 쓰다!
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인 『걸작의 탄생』은 조선시대 최고의 두 문장가 교산 허균과 연암 박지원이 『홍길동전』과 「허생전」이라는 두 걸작을 탄생시킨 과정을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1618년 역모죄로 체포돼 사지가 찢기는 처참한 최후를 맞은 교산 허균. 그의 책은 왕이 일곱 번 바뀌도록 금서로 묶여 있다. 남몰래 교산의 책을 접하며 그를 흠모해오던 연암 박지원에게 어느 날 책쾌 조열이 찾아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교산의 책을 구해 오겠다고 한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연암은 약속한 날짜를 한참 넘겨서도 소식이 없는 조열을 찾아 나섰다가 그가 살해되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그가 죽음에 이른 곡절을 알아내고자 먼 길을 떠난다. 문제의 책은 교산이 홍길동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하며 겪은 일을 기록한 『교산기행』. 이 소설에서는 홍길동의 자취를 밟아가는 교산의 험난한 여정과 조열이 죽은 연유를 밝히려는 연암의 긴박한 여행길이 168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진진하게 교차된다.
홍길동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조열을 죽인 자는 누구이고, 교산의 서책은 어디에 있을까?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허균을 소재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걸작의 탄생』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나는 17세기 허균이 꿈꾸던 이상 국가를 그려보고 싶었다.
허균과 연암, 그리고 『홍길동전』과 「허생전」……. 나는 오랫동안 17세기와 18세기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두 대학자의 여정을 따라갔다. 물론 내게는 무리한 여정이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힌다. 두 대학자의 꿈을 엮어내기에는 필력이 따라주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걸 빤히 알면서도 글을 놓지 못했다. 이들의 꿈과 이상은 21세기에도 간절했기 때문이다.
●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 심사평
『걸작의 탄생』은 홍길동의 행적을 추적하는 허균의 서사와 그 추적의 전말을 담은 서책 『교산기행』의 행방을 탐색하는 연암 박지원의 서사를 교차시킨다. 두 서사 기둥을 정교하게 얽어낸 솜씨도 빼어나거니와, 긴 세월을 격한 두 인물을 시대와 불화하는 지식인의 올곧은 태도라는 단일한 주제로 형상화한 것은 크게 주목할 만한 성취다. 또 책쾌의 살인 사건을 포함한 역사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 것도 이 장편소설이 지닌 중요한 미덕이다.
-심사위원: 윤후명, 조갑상, 우한용, 강동수, 황국명
●책 속에서
허균은 괴팍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인물이었다. 조선의 뼈대 있는 명문가 출신인데도 하는 짓거리가 사대부 같지 않았다. 깊은 산속의 절간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중들과 잘 어울렸고 서출과도 허물없이 트고 지냈다. 그런 까닭에 지방 관리에 적을 둘 때마다 사대부와 유생으로부터 수차례 탄핵을 받았다. 조선의 학자나 벼슬아치치고 허균처럼 탄핵을 많이 받은 이가 또 있을까.
『홍길동전』은 허균의 사상이 집약된 소설이었다. 그의 앞선 소설들, 「남궁선생전」과 「장생전」, 「손곡산인전」에서도 『홍길동전』과 유사한 점이 곳곳에 드러났다. 각종 도술 비법이 등장하고 이상국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을 지향했다. 허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재능은 있지만 신분이 미천하여 불우한 생애를 보낸 이들이었다.
열하로 가는 도중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널 때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은 그였지만, 궁박하고 찌든 형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돈을 빌릴 만한 곳도 없었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계절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가난과 무료함 때문이었다. 가난을 잊고 무료한 일상에서 탈피하려는 연암의 몸부림은 치열하고 처절했다. 어딘가에 집중하고 몰두하지 않으면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홍길동은 아랫사람을 잘 다룰 줄 알았느니라. 집도 절도 없는 도적 무리들에게 남은 게 세상으로부터 받는 괄시와 멸시, 그리고 원한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느냐. 홍길동은 이런 궁박한 도적 무리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 하여 탐관오리나 못된 지주로부터 빼앗은 곡식을 궁박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니 도적 무리들이 어찌 그의 행실에 감복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연암은 비시시 웃었다. 벼슬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책을 가까이하고 학문에 매진하는 이유는 벼슬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벼슬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나라의 안위와 백성의 태평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홍길동의 영험한 재주나 기개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난잡한 도적 무리들을 통솔하고 각성시켜 그 대오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이들 무리는 깊은 계곡과 산속을 날랜 산짐승처럼 휘젓고 다니면서 관군의 창과 칼을 우롱하고 희롱한다. 행여 관군에게 포박당해도 무릎 꿇는 이가 없고 머리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이도 없다. 되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장렬하게 죽음을 택하니 어찌 이들을 섬멸할 수 있단 말인가.
“세 치 혀가 백 명의 청중을 움직인다면 귀한 서책은 후대에 전해져 십만, 백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처럼 귀한 양식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이냐? 하나 때가 오기도 전에 빛을 잃어 사라진다면 천하의 걸물을 다룬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나는 『홍길동전』이 기묘한 상상에만 의존해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교산기행』의 필사지에도 나타나듯이 교산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쓴 소설이라면, 정말 홍길동 무리가 저 먼 남쪽 섬에 나라를 세웠을지도 모르지 않소.”
문득 『홍길동전』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흥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책을 손에 쥐자마자 막힘없이 술술 읽어 내려갔다. 홍길동의 분신이라도 된 듯 책 속에 푹 빠져들어 도적 무리들과 함께 첩첩산중을 누비고 다녔다. 허균의 자유분방한 글쓰기 형식은 젊은 연암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연암은 오래전부터 금서로 지정된 허균의 서책을 남몰래 탐독하면서 그의 글에 매료되었다.
“어떤 소설을 쓰면 좋겠나?”
“글쎄요. 나리께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지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세상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