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고수는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가
자신의 의견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논쟁적인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 감정적인 대응으로 나가다가 토론은 토론대로 잘 안 되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논쟁적인 상황과 첨예한 이해대립의 당사자와 대화해본 손석희는 어떻게 감정 대립을 최소화해가면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까지 감안하고 토론에 나선다. 손석희는 곁다리 논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한 장치들을 만들어 상대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그가 내세운 장치들과 싸우면서 논리적인 반박에 집중하거나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러한 장치 중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주장만 공허하게 반복하는 상대에게 집요하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을 요구해서 상대 스스로 주장을 검증하게 하는 것이다. 손석희는 ‘당신의 주장은 틀렸습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주장이 스스로 힘을 잃게 한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브리지트 바르도와의 개고기 논쟁에서도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은 야만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그녀에게,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의 수를 알고 있는지, 한국인뿐만 아니라 유럽인들도 한국에 와서 개고기를 먹게 된 사람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물으며 사실 자체에 관한 방향으로 논쟁을 이끈다.
또한 손석희는 논쟁에서 험악하게 공격해오는 상대를 바로 받아치기보다 상대의 주장에 반대되는 생각을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은 싸우게 하되 자신은 싸우지 않는 방식을 적절히 구사한다. 바르도에게 “당신의 말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불쾌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당신의 말을 듣고 설득되는 쪽보다 불쾌하게 여기는 반응이 더 많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되묻는 식이다. 상대방과 논쟁을 하면서도 상대방과 직접적으로 대치하지 않고 “불쾌해하는 다른 사람들”을 내세움으로써 불필요한 대결을 피하고 건설적인 논쟁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 Part 2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와 ‘손석희는 이렇게 말한다’를 대조하며 독자들이 좀더 쉽게 손석희가 말하는 법을 이해하고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왜 소는 먹어도 되고 개는 먹으면 안 됩니까?”
손석희는 이렇게 말한다
“인도에서는 소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소를 먹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에 대해 인정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손석희는 브리지트 바르도와의 대화에서 ‘인도의 소’라는 공통으로 잘 알고 있는 예시를 제시한다. 단순히 소고기와 개고기의 논쟁이 아니라 ‘인도의 소’라는 자신과 상대방, 이 대화를 듣는 제삼자까지 모두 알고 있는 예시를 들어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이다. 상대는 잘 모르겠다거나 그런 사실은 틀렸다, 라고 말할 수 없고 손석희의 논리에 합당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듯 서로 알고 있는 예시는 구속력을 가지며, 손석희는 상대를 냉철하게 휘어잡을 수 있다.
손석희는 홍준표 현재 도지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상대방이 한 말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시기에 안철수 현재 의원의 출마설이 흘러나오자 홍준표는 후보 난립이며, 철수가 나왔으니 영희도 나오겠다, 라며 비꼰 적이 있다.
홍준표: 혹시 우리 손석희 교수는 출마할 생각 없으세요? 정말 생각이 있으면 한나라당 에서 모시겠습니다.
손석희: 저는 영희가 아니라서요.
홍준표는 상대 진영에서 비정치인이 나오는 것을 비꼬았지만, 자신의 당에서도 역시 비정치인인 손석희를 밀어줄 수 있다는 발언을 한다. 이에 손석희는 홍준표가 앞서 말했던 ‘영희’를 상기시키며 유불리에 따라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홍준표를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다시 돌아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왜곡 없이, 분명하게 전달하는 법
손석희가 말하는 법을 배우려면 그 바탕에 어떤 생각의 틀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은 결국 사고 과정의 결과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도와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말하기 본질에 관한 문제로 수렴된다. 이 본질을 직시하고 대화나 논쟁에 나선다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상황을 자기편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토론에 임하는 손석희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전제가 있어야 무조건 상대를 내말에 수긍하도록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열린 자세로 더 나은 결론을 맞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확한 수치를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하게 다룬다. 짐작이 아닌 수치를 내세움으로서 자신의 발언에 신뢰성을 확보하고,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도록 하여 토론이나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 상대뿐만이 아니라 대화를 듣는 제삼자들까지도 고려하며 대화를 이끌어감으로써 청자 모두가 왜곡 없는 정확한 진실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을 중요한 생각의 틀로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영희 PD와의 인터뷰에서 제삼자까지 고려하는 말하기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김영희: 지금도 사실은 저는 제가 다시 <나는 가수다>에 복귀해서 이걸 잡으면 재도전 을 주는 게 맞다, 라는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손석희: 그러세요?
김영희: 예. 그런데 그게 방법적으로 사실은 시청자 분들에게 ‘탈락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이게 재도전 주는 옵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재도전을 한번 물어보고 7위에 게, 그분이 한번 다시 재도전하겠다 그러면 이렇게 다시 기회를 주는 쪽으로 가 겠다’라고 미리 양해를 구해놓고 알려둔 상태에서 재도전 여부를 물었으면 저는 아직도 괜찮았을 거라고 봅니다.
손석희: 그런데 그 당시에 그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김영희: 전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 원칙을 굉장히 위배한 것이죠.
[…]
손석희: 아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자칫 기사가 나갈 때‘김영희 프로듀서 다시 복귀해도 재도전은 허락한다’ 이렇게 나오면 또 어떤 오해를 받으실 수도 있는데, 그 전제 가 있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려야죠.
김영희: 그럼요.
손석희: 그러니까 ‘사전에 그런 것이 양해된 상태에서, 라면’이라는 전제를 붙이신 거죠.
김영희: 그렇죠.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 논란은 담당 PD가 책임을 지고 하차할 정도로 당시 큰 이슈였다. 김영희가 <시선집중>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할 때, 손석희는 김영희의 발언이 또다시 논란의 불씨를 지피지 않을까, 까지 염려하며 위의 대화에서 밑줄 친 부분처럼 김영희가 미리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보충해준다. 이렇듯 손석희는 상대방을 논쟁에서 몰아붙이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그 대화를 듣는 제삼자까지 고려하여 편안함과 신뢰감을 동시에 주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러한 대화 기술을 터득한다면 일상생활에서 좀더 자신감 있고 편안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무기를 갖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대부분의 논쟁이나 토론, 회의의 목적은 더 나은 대안을 도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오늘을 철저히 검증해서 내일을 보는 시각을 더 벼리는 실천이 필요하다. 손석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정치인들을 게스트로 자주 만났다. 이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만 외치면서 오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손석희는 이들을 상대하면서 ‘오늘’ 당신들이 현안을 잘 해결하고 있는지, 민생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는지를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의 말이 그저 유창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묵직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