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벽두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온 누리 돌림병은 건강도 건강이지만 아예 우리 삶이 돌아가는 양상 자체를 바꿔 놓았 습니다.
아직 변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던 당시였으니, 거리두기와 각자도생이 최선이었지요.
의과대학 교수 생활의 패턴도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 강의.
난생 처음 비대면 수업이라는 걸 하게 되어 파워포인트 강의록을 만들며 매 슬라이드마다 녹음을 입히느라 허공(정확하게는 마이크)에 대고 떠들어야 했 습니다.
말이 쉽지, 학생은 아무도 없고 그저 모니터만 바라보며 최소 2시간을 떠든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은 노릇이고,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의대 교수하는 건 강의하는 맛도 있어서 하는 겁니다.
강의실에서 초롱초롱한 학생들을 마주 보고(일부는 조는 치들도 있습니다만) 내 페이스대로 들었다 놨다 하며 진행하는 그 맛.
당시엔 몰랐었는데, 막상 이걸 못 하게 되니 대면 강의가 그리워지더군요.
그러던 차에 연말에 우리 학과원 중 교육 담당 교수가 보내온 차기 20회짜리 강의 계획서를 무심히 읽다가 엉뚱한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그냥 20회짜리 강의를 다 하면 어떤 모습일까’
대면 강의에 대한 그리움(?)이 아마 원인이었을 겁니다.
음..
그래서 이 저서의 집필이 시작됩니다.
좀 무모하지만 20번의 강의를 한다는 일종의 simulation하에 20단원을 써 보기로 하고 무작정 첫 단원부터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개시를 했지만, 집필하다 보니 20단원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서서히 자각을 합니다. ‘이거, 일이 점점 커지네’
그래서 ‘하나 더, 하나 더’ 하다 보니 어느덧 42단원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이 저서는 대면 강의에 대한 갈망(?)으로,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그대로 simulation하여 기술하였습니다.
정통 교과서는 아니니 쫄지 마세요.
각 장마다 너무 깊게는 안 들어가고, 개념을 잡아주는 수준으로 수위 조절을 하려고 애는 많이 썼습니다.
항상 책을 집필하면서 일관되게 행했던 의도이지만, 감염학 분야에 대한 진입 장벽을 최대한 낮추고, 독자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개념 정립을 시켜주려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게 또 제 이름을 건 다섯 번째 저서가 나오는군요.
어떤 저서에 대해 eponymous moniker라고 칭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내건 책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Gray 해부학, Harrison 내과학, Robbins 병리학 등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하고 감히 동급으로 논하자는 의도는 아닙니다.
학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소망이지만,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기억되는 행운을 누리는 걸 보면 참으로 부럽기만 합니다.
제 저서들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는 것 자체를 저는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코로나 19도 결국 지나가는 2022년 초여름에 접어들며,
저자 유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