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그 두 번째 도시 인천
그곳에 살고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우리 땅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즐거운 탐구의 출발!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비로소 한국은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인천은 이 새롭고 두려운 역사가 펼쳐지는 생생한 현장이자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 도서 소개
한국의 땅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도슨트’
그 두 번째 도시 인천
인문지리 시리즈 ‘대한민국 도슨트’의 두 번째는 인천이다. 대한민국 도슨트는 각 지역을 살며 경험한 저자가 직접 들려주는 지역의 이야기로 어느 여행서나 역사서보다도 쉽고 즐겁게 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두 번째 지역 『인천』의 소개는 시민운동가이자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재물포구락부의 이희환 관장이 맡았다. 근대화라는 격랑의 물결을 최전선에서 맞이했던 인천에 대한 인문학적 안내서.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과 그곳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유의미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책 속에서
P.13 근대 이후 거대한 역사의 실험과 모험이 펼쳐졌던 인천의 장소들, 그 장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인문학적 질문들. 이 책은 이를 전달하기 위해 썼다.
- 〈시작하며〉 중에서
P.24 과거 인천은 드나듦이 복잡한 해안선을 매립해 땅으로 만드는 간척사업을 활발하게 벌였다. 인천의 해안선 중 90% 이상이 인공적인 해안이라고 하니, 매립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인천은 항로를 오가는 배들이 안전하게 출입할 수 있도록 바다 밑에 퇴적되는 흙을 퍼올리는 준설공사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준설토를 해안에 쌓아놓다 보니, 인천의 땅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 땅도 늘어나고 인구도 늘어나고 있는 도시 인천은 최근 갯벌의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갯벌 보전에도 엄청난 힘을 쏟고 있다.
- 〈인천의 짧은 역사〉 중에서
P.77 우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크게 분개하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의 시발인 러일전쟁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러일전쟁 승전의 역사를 매우 큰 역사적 자부심으로 기록하고 계승해왔다. 특히 러일전쟁의 첫 전투였던 제물포해전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한다. 그에 비해 우리는 러일전쟁의 첫 전투가 바로 이곳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났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 〈06 연안부두〉 중에서
P.112 5월 22일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이다. 인천 동구는 이날을 ‘동구 구민의 날’로 제정해 20여 년 동안 화도진축제를 열어왔다. 이제는 화도진에서 체결되지 않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기념하는 잘못을 수정해야 한다. 화도진 그 자체를 동구의 역사적 자원으로 기리고 재해석하는 관점으로 축제를 전환해야 한다.
- 〈10 화도진〉 중에서
P.124 인천에서 선상 파시의 장관은 오직 북성포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때때로 물때가 맞아 북성포구에 황혼이 깃들 때 어선들이 들어오면, 인천에서 가장 인천다운 풍광과 삶의 냄새를 선사하는 곳, 그곳이 바로 아는 사람만 찾아가고 아는 사람만 사랑한다는 북성포구다.
- 〈12 북성포구〉 중에서
P.212 인천을 대표하는 대학인 인하대학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하’의 뜻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그렇다면 인하대학교와 하와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인하대학교는 6·25전쟁의 와중이던 1952년, 하와이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을 계기로 학교 설립이 추진되어 1954년에 세워졌다.
- 〈24 인하대학교〉 중에서
P.231 그리 크지 않은 공간 안에 달동네의 풍광과 삶의 모습을 알뜰하게 재현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벌써 아스라이 잊어가고 있는 지난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바쁘고 고단한 도시생활에 지쳐 문득 옛 시절이 그리워질 때, 인천 수도국산에 자리 잡은 달동네박물관을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
- 〈26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중에서
P.254 1970년대 이래 가파른 성장을 구가했던 개발독재시대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했던 맘모스체육관. 지금 그 자리에서 맘모스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그곳에는 맘모스보다 더 거대한 뉴스테이아파트단지가 즐비하게 세워졌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동양 최대’를 넘어 ‘세계 최고’라는 또 다른 허상에 사로잡혀 또 하나의 거대한 ‘맘모스’를 이 도시에 짓고 있는 건 아닐까.
- 〈29 맘모스체육관〉 중에서
P.277 인천이 한국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라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영국에서 태동한 근대 축구는 한국에서는 인천을 통해 최초로 전파됐다. 인천항 개항 직전인 1882년 8월 인천 앞바다를 측량하기 위해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의 플라잉피쉬(Flying Fish)호 수병들이 제물포에서 축구 시합을 벌이고 돌아갈 때 축구공을 선사했다는 풍문이 전해져 내려온다.
- 〈33 인천그라운동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