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이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께 이 책이 꽤 쓸모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포천 도슨트 이지상)
한반도의 중원, 쟁투의 땅에서도 여전히 맑은 물 포천(抱川)
고려 건국 이후 천 년 동안 소통의 큰길 위에 있던 곳,
이제 ‘더 큰 포천 더 큰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있는 곳, 세월의 연륜이 있는 곳,
그리고 새 단장 한 간결한 옷차림으로 뭇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포천의 곳곳을 찾아다녔고 그중 스물다섯 곳을 골랐다.
산정호수와 백운계곡, 이동 포천 막걸리뿐만 아니라
울미마을 연꽃, 한탄강 꽃정원, 명성산 억새밭에서 꽃멍, 풀멍도 하고
화적연, 금수정, 채산사, 무란마을에서는 실학의 역사도 되새겨 보라.
포천, 이 넓은 땅에서 자랑할 만한 곳이 어디 그뿐일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천 년이 넘는 역사가 있었고
그 시간의 간극을 촘촘히 메우며 사는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다.
모두가 포천을 다니며 나를 설레게 했던 충분한 이유였다.
◎ 도서 소개
포천을 다시 만나다
이중환의 『택리지』, 김정호의 『대동지지』, 뿌리깊은나무 『한국의 발견(전11권)』은 시대별로 전국을 발로 뛰며 우리의 땅과 사람, 문화를 기록한 인문지리지이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특히 정규 교과에서 깊이 다루지 않는 1970~80년대 이후의 한국은 젊은 세대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그림이나 유물유적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우리나라 곳곳의 역사와 문화, 그곳에 사는 사람과 땅에 대해 알려주는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의 열세 번째로 ‘대한민국 도슨트’ 13번째 편 『포천』이 출간되었다.
포천은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이 이후 기원전 108년경 한사군 시절에는 낙랑군이 있던 곳이었고,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연간에는 ‘마홀’ 또는 ‘명지’로 불리다가 고려 초 ‘포주(抱州)로 개칭되고, 1413년 조선 태종 때 포천현이 된다. 한반도의 중원이자 산 높고, 물 맑은 고장으로 고려시대부터 대대로 살고 있는 토박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번에는 작가이자 싱어 송라이터인 포천 사람 이지상이 포천의 어제와 오늘을 알려주며 곳곳을 안내해 준다.
포천은 1개 시(2개 동), 1개 읍, 11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산면, 군내면, 관인면, 내촌면, 신북면, 영북면, 영중면, 이동면, 일동면, 창수면, 화현면이 있다. 포천읍은 경기 북동부의 행정 교통 중심인데 2003년 포천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선단동과 포천동으로 나누어졌다. 도시 개발과 수도권 연결성이 좋은 소흘면은 1996년 소흘읍으로 승격했다.
포천 하면 산정호수와 포천 막걸리, 이동 갈비만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필수이다. 포천이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서 놀라고 굴곡 많은 그 땅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그래서 왜란에 호란에 6‧25동란까지 묵묵히 지켜봤을 지동 산촌마을 천 년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철철이 꽃 피고 푸르른 하늘 아래 치유의 숲, 국립수목원, 6월에 마지막 유채꽃을 볼 수 있는 한탄강 꽃정원, 7월 말에 8월 초에는 명산리 울미마을 연꽃 등을 챙겨가며 자연을 즐겨도 좋다. 고려, 조선 시대에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고 전국에서 이름난 기도처였다고 하는 화적연에도 들러보고 금수정 정자에 올라 포천 사람이자 초서체의 대가 양사언을 위시한 이익, 허균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도 만나보기를 권한다. 한탄강을 산책하며 오세철 풀피리 전수소에서 공연도 보고, 김광우 조각공원에서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 빠져 봐도 좋다.
싱어 송라이터이자 작가인 이지상, 포천을 노래하다
글을 쓰며 작곡과 작사를 하고 여러 드라마, 연극, 독립영화 음악을 만드는 저자의 글은 처음부터 다르다. 포천의 곳곳을 안내하며 넘쳐흐르듯 연상되는 시를 읊고, 오랜 기억 속의 추억이 얽힌 곳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주고, 어느 때 찾아가면 그곳이 가장 아름다운지를, 각 장소마다의 감상 포인트를 자세히 알려주어, 슬며시 그 시간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또한 포천을 잠시 거쳐간 유명한 사람보다는 이곳에 터 잡고 살았던 인물들을 친근하게 알려주어 포천에 대해 더욱 알고 싶게 만든다. 각 잡고 쓴 안내판보다 여행지 주민의 간단한 설명이 더 이해하기 쉽듯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포천의 다양한 표정에 정이 들어갈 즈음 포천 방어벙커, 38선 휴게소, 영평 로드리게스 사격장 등 분단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포천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918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 1027년 만에 한반도에 그어진 분단선” 아래 있는 포천, 언제나 호국(護國)해 왔던 포천이 앞으로는 평화의 거점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이렇게 끝을 맺는다.
“호국로는 철원 용암 삼거리에서 멈추지만 통일을 꿈꾸는 당신이라면 화천에서 오는 56번 국도를 만나 비무장지대를 넘고 평강을 지나 금강산을 에돌아 원산까지 단번에 달려가는 상상을 할 것입니다. 당신의 상상을 태우고 가는 차 안에는 무엇이 실려 있을까요. 장벽과 철책으로 상징되는 경계는 놓아 두고 북상하는 봄꽃 소식 한아름 싣고 떠나시길 바랍니다. 분단의 기억은 녹슬도록 놓아 두고 금강산 단풍만 가득 담아 오시길 또한 바랍니다. 무기를 더 많이 쌓아야만 평화가 온다는 말은 거짓임을 믿습니다.”
◎ 책 속으로
“마홀(馬忽). 문헌에 기록된 포천 지역의 최초 지명이다. 이두문자를 차용했다. 마(馬)는 흐르는 물을 뜻하고 홀(忽)은 마을을 뜻한다. 물이 흐르는 마을. 그것이 지금의 포천(抱川)이다. 마홀이란 지명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붙인 이름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명지(命旨)’라고도 불렀다.”
-「포천의 짧은 역사」 21쪽 중에서
“꽃 소식에 설레고 귀가 쫑긋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꽃구경 가고 싶은 굴뚝 같은 마음을 바쁜 일상이라는 복병이 막고 있으니 그게 문제다. 그래서 꽃에 관한 기억은 언제나 아쉬움을 동반한다. 포천의 유채꽃은 6월이다. 4월이 아니다. 한반도의 마지막 유채다. 4월 제주의 바람을 타고 올라온 노란 꽃이 포천에 와서 절정을 맞는다.”
-「포천 한탄강 꽃정원」 59쪽 중에서
“그날 만난 도슨트는 코버월드를 만든 관장이었다. 그의 부친은 의정부 중앙극장 앞에서 구두 수선을 하셨다. 의정부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세계 각처를 고향으로 둔 미군 병사들은 전투화 수선비를 각국의 동전으로 계산했다. 외국돈 모으는 취미가 이때부터 생겼고 이후 30년을 더 모았으니 방대한 종류와 양은 말할 것도 없다.”
-「코버월드 화폐박물관」 97쪽 중에서
“포천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야 경기도에서도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김포의 김포장, 일산장과 함께 경기도 4대 장터인 데다가 『동국문헌비고』(1770)에도 기록된 바 ‘매월 3일과 8일에 개설되었다’고 적혀 있으니 이름이 빠질 이유가 없어 은근 괘씸하기까지하다.”
-「포천5일장」 103쪽 중에서
“초봄의 싸한 바람이 얼음을 녹이면 동토에서도 흐름을 멈추지 않았던 여울의 물안개가 바위틈을 무심결에 지나가는 곳. 목단이 피었다가 떨어지고 철쭉이 외로운 향기를 다할 때면 백운산의 기개를 담은 영평천 물줄기가 폭풍처럼 휘돌아가며 수선조(水仙調, 거문고의 명인 백아의 주요 레파토리)를 울리는 곳. 봉래 양사언의 단아한 해서체 현판에 가을빛이 물들거나 설눈이 흩날리면 초야(草野)에 묻혀 한 생을 놀다간 이들이 있는 그곳, 금수정의 묵객들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금수정」 141쪽 중에서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흉물스런 철강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해, 쇠락한 독일 루르 지역의 엠셔강 일대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친환경 관광명소로 재탄생하듯 천주산의 폐채석장은 2009년 ‘아트밸리ʼ란 이름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포천 아트밸리」 201쪽 중에서
“금강산의 천하절경 만폭동이 품고 있는 그의 글씨가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다. 만폭동 구경 값이 천 냥이라면 그중에 오백 냥은 양사언의 글씨 구경 값이라 했으니 “표표하여 마치 하늘에 치솟고 허공을 걸어가는 기상이 있으니 그 글씨 속에 선골(仙骨)이 있음을 속일 수 없다”는 성호 이익(1681~1763)의 찬사조차도 부족함이 있을 만하다.”
-「길명리 양사언 묘」 210쪽 중에서
“1789년 초여름 장용영 임시 서국에 삼인이 모였다.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참 벗들이었다. 정조는 이들에게 조선 무예를 망라한 책의 저술을 명했다.”
-「무란마을 백동수」 223쪽 중에서
“자일리의 새벽은 오세철의 풀피리 소리로 시작한다. 일생 풀피리가 손에서 떠난 적 없는 것처럼 농사일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벼잎, 갈잎, 아카시아. 개복숭아 모든 게 지천으로 널려 있어 손때 묻힐 일 없는 악기들과 함께 피리 불듯 농사짓고 농사짓듯 소리를 다듬었다. 2018년 가을엔 그가 사는 집 앞에 입간판을 하나 세웠다.”
-「오세철 풀피리 전수소」 232쪽 중에서
“인간에게 태어난 장소의 정신적 육체적인 영향은 대단한 거야. 난 여기서 태어났지만 항상 전쟁들을 했어. 어린 마음에 왜 인간은 전쟁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앞설 수밖에…….”
-「김광우 조각공원」 236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