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대표작 출간
“인간의 내면과 도덕적 갈등에 대한 깊은 사색”
- 역자 이민희
◎ 도서 소개
일본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대표작 「라쇼몬」이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한국어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번 번역본은 원문의 섬세한 뉘앙스를 충실히 살리면서도 현대 독자들에게 친숙한 문체로 다듬어져, 독자들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
「라쇼몬」 등 주옥같은 단편 9편 수록
「라쇼몬」은 일본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사회적 몰락과 개인의 도덕적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무사는 비 내리는 라쇼몬 문 아래에서 갈 곳 없이 고민하며, 생존을 위해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 짧지만 강렬한 단편은 인간의 본성, 생존과 윤리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번역본에는 「라쇼몬」을 비롯한 아쿠타가와의 걸작 단편 8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과 삶의 아이러니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각을 통해 한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덤불 숲」은, 진실의 불완전함과 인간의 주관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특히 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몬〉의 원작으로 더욱 유명하다. 도적, 피해자, 목격자들의 각기 다른 증언이 얽히며, 독자는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 책에는 어린 소년이 공사장에서 운반용 손수레를 타면서 겪는 모험과 두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인 「광석차」도 실려 있다. 성장의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과 용기를 세밀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아쿠타가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문체가 돋보이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유년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김 장군」은 일본 제국주의 시기 조선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문화적 충돌을 독특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권력 구조를 그린 이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보여준다.
「지옥변」은 예술에 대한 광기와 집착,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한 화공이 지옥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문학적 상징과 미학적 요소가 빼어나게 어우러져 있어, 예술과 인간성의 관계를 깊이 고민하게 한다.
인간 세계의 부조리와 위선을 풍자하는 「갓파」는, 인간의 탐욕과 타락을 일본 전통 요괴인 갓파를 통해 익살스럽게 묘사한다. 아쿠타가와의 해학과 풍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현대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서양을 잇는 문학의 가교
이번 번역을 맡은 번역가 이민희는 “아쿠타가와의 작품은 일본 근대 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이번 번역에서 일본어 특유의 섬세한 표현과 깊은 철학적 의미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또한, 독자들에게 보다 친숙한 형태로 다가가기 위해 작품의 문맥과 시대적 배경을 철저히 연구하여 번역에 반영하였다 한다.
◎ 책 속에서
어느 저물녘의 일이다. 무사 한 사람이 라쇼몬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넓은 처마 밑에는 이 남자 이외에 아무도 없다. 그저 여치 한 마리가 군데군데 붉은 칠이 벗겨진 둥그런 기둥에 달라붙어 있을 뿐이다. 라쇼몬이 주작대로에 있는 이상, 비를 피할 요량으로 찾아든 삿갓 쓴 장사치나 두건 두른 무사 두서넛 정도는 더 있어야 맞다. 그런데도 이 남자 말고는 아무도 없다.
-「라쇼몬」 중에서
“맞아요. 그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전 언제나처럼 오늘 아침에도 삼나무를 베러 뒷산에 올랐습죠. 그런데 그늘진 덤불 사이로 시체가 보이지 뭡니까? 그곳이 어디냐고요? 야마시나 역로에서 1리 조금 더 떨어진 곳일걸요. 댓속 빈 삼나무가 얼기설기 뒤엉킨 인적 드문 숲입죠. 시체는 엷은 남색 옷에 도회지 풍의 주름 단 에보시를 눌러쓴 채로 하늘을 향해 쓰러져 있었습니다.”
-「덤불 숲」 중에서
김응서는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청용도를 한 차례 휘둘러 유키나가의 목을 쳐서 떨어뜨렸다. 피가 땅을 적시는 순간, 주위는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고, 눈빛은 여전히 매섭게 빛났다. 그 순간, 장군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달았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더욱 단단해졌다.
-「김 장군」 중에서
“전 계속 울고만 있는 암컷 갓파가 가엾어서, 그저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인간들과는 달리 갓파들은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의 흐느낌은 주위의 모든 갓파들이 잠시나마 그 슬픔에 젖어들게 만들었습니다.”
-「갓파」 중에서
그림 속 지옥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마치 진짜 불길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붉고 푸른 색채의 조화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마치 그림 속 불꽃이 현실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요시히데는 그림을 완성할수록 자신의 혼이 깎여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옥변」 중에서
일본 제일의 모모타로는 개, 원숭이, 꿩 세 마리와 인질로 잡은 도깨비 아이들이 끄는 보물 차를 몰고는 기세가 등등해져서 개선을 알리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 여기까지 이야기는 일본에 사는 모든 아이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모타로가 일생을 행복하게 보낸 것만은 아니다.
-「모모타로」 중에서
여기서 인사의 의미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신뢰와 존경의 표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의 위치를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나는 그 순간, 단순한 몸짓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지는지를 깨달았다.
-「인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