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 성공 사례 3개국, 실패 사례 3개국
‘복지’는 현재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중의 하나이다. 청년실업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인구는 빠르게 노령화 하고 있으며, 경제성장은 정체되었다. 우리사회 내에서는 지금까지의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방향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보편적 복지의 실현에 따르는 재정적 압박을 감수하더라도, 청년실업, 저출산, 양극화 등의 사회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복지체제의 확립을 위한 복지정책의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우리의 현실에 가장 적합한 복지체제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복지정책을 우리보다 앞서 실행한 국가들의 경험을 연구하여,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부분은 우리나라 복지체제 확립에 있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국가들이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일본의 복지체제를 돌아보며 이들이 범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교훈을 찾아 본다. 뒷 부분은 성공적 복지체제를 확립하거나 또는 복지개혁에 성공한 국가들을 다룬다. 스웨덴, 영국, 이스라엘의 경우를 살펴보면, 성공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체제의 선결조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작금의 복지논쟁을 보면 성공한 복지국가들의 정책이 지나치게 미화되는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서는 성공한 국가들 또한 “복지병”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국가들이 맹목적인 복지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개혁을 통해 경제성장과 상호보완적인 생산적 복지체제를 확립하였다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활발한 나라가 복지도 앞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복지가 함께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결론이다. 경제가 발전하여 성숙단계에 들어가면 성장을 통한 분배가 점차 어려워진다. 발전된 경제일수록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양적인 투자보다는 질적인 투자가 중요하다. 따라서 노동력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보다는 기술개발이 더 중요하게 되어 노동력이 생산요소 배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떨어진다. 이는 개인의 경제력과도 관련이 깊어 높은 수준의 교육과 창의력이 개인의 소득에 더욱 큰 영향을 준다. 게다가 경제가 안정궤도에 들어서면서 사회계층간 이동도 어려워져 계층간의 격차가 굳어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에서는 1차 분배 직후 소득의 편차가 심하며, 이를 완화하는 조세와 사회서비스 같은 공공부문의 재분배 없이는 사회적-정치적 문제가 생긴다. 이로 인한 사회갈등은 그 자체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경제가 성숙하면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계층간 소득의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가 진일보하면서 생겨나는 사회적 다양성, 특히 다문화 가정-싱글족 등 가족체제의 변화를 통한 전통적 사회구조의 변화는 가족이라는 기존의 사회안전망의 울타리를 약화시켜 새로운 소외계층을 만들어낸다. 경제적 요소 외에도 이런한 사회 내부의 동력이 새로운 복지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가족의존적인 선별적 복지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이렇게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성숙하면서 보이는 기존 복지체제의 한계는 소외계층의 증가뿐만이 아니다. 복지로 실패한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경제적 특성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가 가족중심적인 전통적 사회구조를 복지체제를 통해 고수하려다 저지른 패착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특히 일본과 남유럽국가들의 복지체제가 보이는 특성이기도 하다. 가족의존적 복지의 맹점은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게 만들어 여성의 사회진출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미혼 여성은 따라서 가정과 직장 사이에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면서 대부분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결혼이나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한다. 사회가 점차 다변화하여 저출산, 핵가족화, 다문화, 싱글족, 아이 없는 부부 등 전통적 가족구조에 속하지 않는 계층이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가족의존적 복지체제를 고수할 경우 복지혜택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따라 경제활동인구가 부양해야 하는 인구가 늘어나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가족의존적 복지의 또 다른 맹점은 가장의 고용보장이다. 완전고용은 복지국가들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유발한다. 완전고용을 이루기 위해 일본의 경우 민간부문이 평생직장 개념을 도입하였고, 그리스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충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평생직장은 거품경제의 붕괴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고, 그리스의 공무원 집단은 만성적인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부도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어쩔 수 없이 팽창위주 정책으로 경제를 운영하여 경제의 장기적 건실성을 해치게 된다. 이렇게 가족의존적 복지는 보이지 않는 암묵적 비용이 상당하기에 잘 고안된 보편적 복지보다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선진국형 복지는 복지와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
경제가 발전할수록 시장의 분배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막고 경제의 장기적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선진국형 복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 포퓰리즘의 소비적 복지와 대칭되는 생산적 복지는 산업화를 이룬 국가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사다리이다. 스웨덴의 경제학 대가 뮈르달은 1930년대에 이미 경제적 현상인 저성장과 인구학적 현상인 저출산 사이의 관계를 예견하였다. 뮈르달은 여성의 사회진출 때문에 저출산 현상은 불가피하며 따라서 미래에는 노후세대를 부양하는 현역세대가 줄어들어 경제성장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그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성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대적으로 건실한 공공부문 재정과 정부의 낮은 복지 관련 지출을 감안하면 저성장으로 인한 고용시장의 문제를 복지 확대를 통해 해결하려는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비적 복지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에서 보았듯이 결국에는 고용이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모순에 빠진다. 복지와 경제성장의 선순환적 관계를 위해서는 산업과 복지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스웨덴의 경우 복지를 통해 개인, 특히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작은 인구 규모의 스웨덴은 이렇게 국가의 인적자원을 최대화하였고, 고비용-고복지 복지체제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경쟁력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
이를 모델로 삼아 보편적 복지가 일종의 투자로서 경제를 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제3의 길’을 주창한 전 일본 총리 간 나오토(菅直人)가 좋은 예이다. 간 총리가 주창한 ‘제3의 길’의 요지는 복지지출을 늘려 보육-노후부양 등의 사회서비스 공급을 늘리고, 그 과정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내수를 증진하여 새로운 일본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저출산과 노령화 문제를 잡고 동시에 저성장까지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지만 이 길은 영국이 이미 반세기 전에 지나온 길이기도 하다. 가족의존적인 저비용-저복지의 간접복지에서 북유럽과 같은 고비용-고복지의 보편적 복지로의 변화는 상당한 투자를 요구하며 스웨덴과 같이 50%에 가까운 세율까지는 아니더라도 증세는 피할 수 없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평균 1%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스웨덴 같은 고비용-복지체제로 단기간 내 전환이 일본 같은 저성장 경제한테 어떤 결과를 낳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인구가 5,000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또한 인구 900만 명에 불과한 스웨덴의 복지모델을 무조건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비용-고복지체제는 자체로서 성장동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고비용 복지체제가 경제성장률을 평균적으로 1% 정도 낮춘다는 스웨덴의 산업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통해 알 수가 있다. 고비용-고복지체제가 장기적으로 고령화-저출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겠지만 여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십 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그동안 복지에 대한 엄청난 수준의 지속적 투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복지는 장기적인 경제적-사회적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동시에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경쟁력을 바탕으로 생산적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우리나라는 성공적인 산업화를 바탕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는 전환점에 도달하였다. 그런데도 사회적 갈등이 늘고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진 이유는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개인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배경에는 정체 상태인 노동시장에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젊은 세대의 고충이 있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이러한 도전은 이전 국가들이 겪었던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점은 일단 우리나라는 산업화라는 도달하기 힘든 단계를 이미 거쳤기 때문에 산업화 전단계에서 실패를 겪은 아르헨티나와 그리스를 반면교사로 삼기보다는, 강력한 제조산업을 토대로 복지국가를 확장한 이스라엘과 스웨덴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등한시할 경우 일본과 마찬가지로 장기적 침체에 빠질 것이 거의 확실한 바 복지문제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세계를 상대로 무한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경제력은 산업화된 국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스라엘과 스웨덴은 전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산업국가이며 동시에 총인구가 각각 1,00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국가들이다. 따라서 고도로 발전한 산업부문이 보편적 복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작다. 이 부분을 간과한 채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 영국이 결국 복지국가를 선포한 지 30여 년 후에 고비용-고복지체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중비용의 부분적인 선별적 복지체제로 전환한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최선의 복지정책은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보편적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