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단종애사 상세페이지

단종애사작품 소개

<단종애사> 「단종애사」는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로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217회로 완성한 작품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소재로 단종의 억울한 죽음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쓴 김동인의 「대수양」과는 달리 수양대군을 가해자로 보고 그의 성격을 강하게 부각하였다.
단종 즉위 직후의 정치적인 상황보다는 수양 대군을 야망 있는 악인으로 묘사하였다. 또 단종 주변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연재소설로써 재미를 부여하였다.
동아일보에 연재 당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춘원의 투병 때문에 십여 차례나 연재 중단이 되기도 하였다.
그가 병상에서도 집필을 계속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으며, 그 자신도 다른 소설보다 더 많은 정성과 경건한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출판사 서평

「무정」으로 유명한 춘원 이광수는 1892년 평안도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메이지학원 중학부에 편입하였는데 이 시기에 도산 안창호의 일본 동경 연설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1917년 1월 1일부터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함으로서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의 첫 시작을 알린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초기 이광수는 봉건적 사회제도를 혁파하고자 하였으며,
가부장제를 배격하고, 자유연애를 신봉한 사상가였다.
「무정」에서는 신교육을,「개척자」에서는 과학사상을,「흙」에서는 농민계몽을 설파하였다.
그런 춘원이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하였으니,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고, 도산 안창호가 죽고, 중국의 일본군 위문을 위한 모임 결성식의
사회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일본에 협조하게 되었다.
창씨개명을 하였으며 황국신민화, 징병 권고문 등을 신문에 기고하였다.
춘원이 이런 행동을 한데는 그의 출신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다섯 살 때 한글과 천자문을 깨치고, 여덞 살에는 논어, 대학, 중용 등 동양고전을 섭렵한 신동이었으나
열 살 에 부모를 잃고 한순간에 고아가 된 춘원은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한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공부도 하였으나 식민지 지배하에서는 아무리 실력이 좋고 노력하여도
일본의 식민지 구조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이 그의 독립의식을 약화시켰으리라 생각될 뿐이다.


저자 프로필

이광수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92년 3월 4일 - 1950년 10월 25일
  • 학력 1919년 와세다대학교 철학
    1910년 메이지가쿠인대학교 중학
  • 경력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
    동아일보 편집국 국장
  • 데뷔 1917년 매일신보 소설 '무정'

2017.05.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이광수

호는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 출신이다.
1907년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에 편입했으며, 동창회보인 백금학보 제 19호에 일본어로 쓴
《사랑인가》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1910년 메이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오산학교 교원이 되며, 7월 백혜순과 혼인하였다.
1914년 미국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주필로 내정되었으나
제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에 가지 못하게 된다.
1917년 1월 1일부터 5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장편소설《무정》을
연재하였다. 1917년 두 번째 장편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젊은층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자유로운 결혼생활을 주장한 《신생활론》, 《자녀중심론》같은 글을
발표해 당시 사회에 논란을 불려 일으켰으니 그 배경에는 폐병이 재발해
병상에서 허영숙의 간호가 인연이 되어 결혼을 약속하고 이듬 해 허영숙과
베이징으로 도피하는 사건이 원인이다.그들은 몇년 후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작가는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했으며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 주임을 맡았고,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수양동우회 발족에 참여 하였으며, 동아일보에 《마의태자》, 《단종애사》,
《흙》등을 연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도산 안창호와 함께 투옥되었다가
재판을 받던 중 전향을 선언하였다.
이후 매일신보에 황민화운동, 창씨개명과 황도군 징병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해방 후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의 의뢰로 1947년 1월 집필을 시작해
5월에 《도산 안창호》를 출간한다. 1949년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적에 대한 경위와 맥락을 밝힌 《나의 고백》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1950년 7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10월 사망하였다.

목차

목차

작가 소개
출판사 서평
등장인물

단종애사

1. 고명편(顧命篇)
2. 실국편(失國篇)
3. 충의편(忠義篇)
4. 혈루편(血淚篇)


리뷰

구매자 별점

0.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0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