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비자, 법치 국가의 원리를 말하다
《한비자, 나라 다스리는 법을 말하다》는 생각비행 ‘고전으로 만나는 진짜 세상’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저자는 펜더 선생, 한아름, 장필독이라는 친근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법을 활용한 통치로 혼란한 세상을 안정시키고 백성의 이익을 고민한 한비자(韓非子)의 생각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법가 사상을 종합한 한비자의 삶과 고민을 살펴봄으로써 법이 왜 필요한지, 법이 잘못되면 왜 우리 삶이 힘들어지는지, 법이 권력에 종속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설명한다.
한비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활동한 법가(法家) 사상가였다. 힘이 없는 한(韓)나라 왕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언어 장애가 있어 군주 앞에서 떳떳하게 생각을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글재주를 바탕으로 부단하게 노력한 결과 법가 사상을 종합하여 《한비자(韓非子)》라는 책을 펴냈다. 그러나 책 전체를 한비자가 쓴 것은 아니었고 온전히 그의 독창적인 생각만 담은 것도 아니었다. 노자(老子) 사상에 영향을 받고 순자(荀子) 문하에서 공부한 결과를 《한비자》란 책에 담았기 때문이다.
공자(孔子)의 사상을 계승한 맹자(孟子)와 달리 순자는 ‘인간이 악하게 태어났다’고 보는 성악설(性惡說)의 입장이었다. 순자는 인간의 욕망을 중요하게 봤고, 한비자는 그 영향으로 인간의 ‘이기심’에 주목했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을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파악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같은 혼란기에 인간관계에 주목하는 유학(儒學)으로는 사회를 안정되게 유지할 수 없다고 보고, 강력한 법과 형벌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한비자 학문의 근본을 ‘황로학(黃老學)’이라고 평가했다. 황로학이란 한마디로 도가 철학과 법가 사상을 섞은 것을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다스린다는 ‘무위지치(無爲之治)’ 개념과 이전 법가 사상가들이 주장한 ‘법(法), 술(術), 세(世)’를 종합하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법을 만들고 법에 의한 통치를 통해 시대적인 안정과 백성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생각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며 법가 사상을 종합하다
한비자는 유가 사상을 ‘좀벌레’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한비자가 살던 전국시대 말기는 숱한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고 민심이 흉흉한 상황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분쟁도 끊이질 않았다. 이런 혼란한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한비자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강력한 법으로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한비자의 인식 저변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다.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한 것이다. 한비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왕과 신하의 관계에 질문을 던졌다. 한비자는 군주와 신하의 이해가 상충하기 때문에 의심하고, 감시하고, 서로 견제하는 사이로 보았다. 유가 사상과 정반대의 견해를 피력한 셈이다. 한비자는 인(仁)과 의(義)를 강조하며 통치자 개인의 역량에 의존해 인치(人治)나 덕치(德治)를 주장하는 유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만인에게 평등한 강력한 법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잘 운용되는 나라라면 모든 백성에게 이득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왕은 나라를 혼자서 다스릴 수 없기에 신하를 부리는 기술인 ‘술(術)’에 능해야 했다. 한비자는 이에 대해 현명한 군주는 관리를 다스리지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비자는 공을 세운 신하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을 저지른 신하에게는 벌을 주는 ‘상벌권’을 왕이 쥐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왕이란 지위에서 나오는 ‘세(勢)’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말하자면 ‘카리스마’와 같은 것으로, 왕이란 자리가 주는 위세와 권위가 굳건하면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이처럼 한비자는 군주가 ‘법, 술, 세’, 이 세 가지 무기를 가지고 신하를 관리하고,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법, 술, 세는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셋이 하나로 묶여야지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한비자》란 책이 ‘제왕학 교과서’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런 리더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