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외환위기는 한국의 사회경제구조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1960년대 이후 수출주도 경제전략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던 한국경제가 급속히 국가적 채무상환위기(default)에 빠졌으며, IMF 구제금융의 선결요건으로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소위 4대 부문 구조개혁을 강요받았다. 당시 IMF가 요구한 구조개혁 조치는 자본시장의 개방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핵심이었다. 이 같은 4대 부문 구조개혁 조치에 따라 모든 기업, 금융, 공공 기관에 대해 정부의 경영혁신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짧은 시간 내에 2백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가 발생하였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인 인터넷 붐과 아울러 김대중 정부의 발 빠른 경제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기반으로 한국 경제는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가 가져온 이중 노동시장 구조와 고용 불안정,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이후 더욱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 제로’ 시대 구현을 제 일의 정부 공약으로 제시할 만큼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고용인구 중 비정규직 비율은 30%대로 추정하는 정부통계와 달리 이미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도 더욱 심해져 근로빈곤층을 양산함으로써 사회 양극화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는 사실 금융산업 분야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은행과 금융기관의 통폐합 등 구조조정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증가에 따른 사회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자 2006년 정부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을 제정하여(2006.11)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를 막고자 하였다. 금융산업 분야에서도 2006년 말 우리은행을 필두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금융산업 분야의 비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을 별도의 직군 또는 하위직급으로 편제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고용안정을 제외한 모든 노동조건에서 일반 정규직과는 차별적인 요소가 온존하여 무늬만 정규직일 뿐 실상은 임금과 노동조건 측면에서 비정규직 노동과 차이가 별로 없었다.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금융산업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과 정규직 전환 관련 연구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더욱이 금융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타 산업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라는 이유로 소위 귀족노동자로 분류되어 금융 및 은행 조직 내에서 이들에 대한 차별 관행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기도 했다. 이 연구는 금융산업 분야의 비정규직 전환 노력이 ‘정규직’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고용 이외에는 임금과 고용 면에서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를 일반 정규직과는 다른 ‘2차정규직’ 군으로 개념화하고, 금융산업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2차정규직 노동의 실태 및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연구 용역에 따른 9개 시중은행의 2차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이 연구는 금융산업 분야 2차정규직에 대한 최초의 설문조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연구는 금융산업 분야 2차정규직 노동자의 각종 노동조건과 복리후생 등에 관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향후 금융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2차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승진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연구결과는 금융산업 분야 2차정규직은 하위직급 또는 별도의 직군에 몰려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정규직으로의 전환이나 승진의 벽이 높아 일반 정규직과 차별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 분야 2차정규직 노동의 절대다수가 여성으로 마치 1990년대 초반 제도적으로 사라진 여행원 제도가 부활이라도 한 듯 성차별적 요소가 여전히 온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주로 텔러, RS 등 대민 업무를 맡고 있어서 감정노동에 크게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을 치유하는 제도적 장치 또한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연구는 금융산업 분야의 이러한 차별적 관행을 조사자료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나아가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아무쪼록 이 연구결과가 향후 금융산업 분야 2차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금융산업 분야를 넘어 공공부문, 민간부문에서의 2차정규직 노동실태 연구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