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수년 동안에 걸쳐 경향의 대학에서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동양철학이나 한국철학을 구성하는 세부 영역들인 유학·불교·도가의 텍스트 독해력 함양에도 동시에 주력해 온 학자다. 『조선시대 유학자 불교와의 교섭 양상』은 이 같은 저자의 풍부한 이론적 무장과 원전 해독 역량이 종교 간 대화의 문제라는 작금의 시대적 화두와 결합하게 되면서, 가시적인 결실로 이어진 비교종교철학의 성격을 띤 연구서다. 특히 저자는 종교적 중층 인구의 수효가 실제 국민 인구를 훨씬 상회하는 대한민국이나, 혹은 극단적인 근본주의 성향으로 인해 정경(正經)의 가르침 너머에서 늘상 피비린내를 동반하곤 하는 일부 고등종교들이 관용(寬容)의 미덕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탐색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 책의 저술을 구상하게 되었노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조선시대 유학자 불교와의 교섭 양상』에서는 선초(鮮初)인 15세기에서 조선후기 무렵인 18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유학자들인 괴애 김수온·일두 정여창·갈천 임훈·서계 박세당·임호 박수검·학고 김이만 등과 같은 6인의 인물들이 남긴 유학과 불교 사이의 다채로운 교섭 양상에 예의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당초의 연구 목적인 유(儒)·불(佛) 간의 교섭 양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편상, 이들 6인의 유학자들이 선보인 불교의 교학체계 전반에 걸친 지적 소양 정도와 주변 승려들과의 의미 있는 교유 양상, 그리고 ‘좌선(坐禪)·정좌(靜坐)·가부좌(跏趺坐)’ 등으로 대변되는 실참 수행에의 몰입 정도라는 세 가지 분석틀을 연구 방법론으로 설정하는 이론적 조처를 취하였다. 나아가 저자는 6인의 유학자들이 보여준 특별한 심리적 성향인 염리심(厭離心)과 강한 산수 취향, 그리고 영혼의 트라우마 현상 등과 같은 내용들을 세심하게 취급함으로써, 유·불 교섭 행위의 이면에 가로놓인 배경에 대한 이해를 적극 도모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이 책에서는 6인의 유학자들이 각인각색 격의 교섭 양상을 선보인 사실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선초의 고승인 신미의 아우인 김수온의 경우 려말 이후로 실체가 모호해져만 갔던 이른바 ‘거사불교’의 길을 평생토록 영위한 인물로 재규명되었다. 다만, 고관대작을 역임했던 김수온은 그가 추구한 거사로서의 구도적 삶에 오롯이 몰입하지 못했던 까닭에, 일평생 배회하고 방황해야만 하는 정신적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수온이 영위한 거사불교의 길은 그의 인생 구도에서 차선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괴애의 뒤를 이은 사림파의 영수 정여창은 메타적 회통론자인 나말 고운 최치원의 진정한 계승론자로 전면적인 재해석이 이뤄졌다. 그리하여 정여창이 남긴 유·불 교섭에의 자취가 한국사상사의 자기 전개 과정에서 보기 드문 회통론자의 위상을 구축한 것으로 새롭게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여창이 생전에 선정(禪定) 삼매(三昧)의 경지에 자주 접어들곤 했던 사실은 지금껏 세상에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에 해당한다.
김수온·정여창에 비해 근본 유자로서의 이념적·사상적 정체성을 탈각시키지 않았던 임훈과 김이만의 경우는 부분적·제한적 교섭론자로 평가되나, 두 사람이 남긴 교섭 양상은 각기 상이한 양태를 취하고 있었다. 우선, 임훈의 경우 불교교학과 선불교 방면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통상 유(儒)·석(釋) 교유로 지칭되는 승려와의 교류 면에서는 하나의 전범을 개척하는 식의 이채를 연출하였음을 조명하였다. 반면에 의미 있는 유·석 교유가 결여되었던 김이만은 부분적으로 불교의 공관(空觀)을 수용하거나, 정좌 수행에 심취하는 등의 교섭 행위를 통해서 애초 그가 떠안았던 심리적 트라우마 증상이 차츰 치유되는 국면으로 이행한 특징이 포착되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불교와의 부분적인 교섭 과정을 경유하면서, 애초 그들이 간직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음이 주목된다.
한편 이단적 사유체계를 대표하는 노장철학과 불교 방면에 대해 동시적인 교섭 활동을 전개했던 박세당은 진정한 교섭론자로 평할 만한 사상가였다. 비록 박세당도 정통 유학의 진리론이나 공부론에 배치되는 반야공관과 선불교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 보였지만, 공관의 독자적 진리치를 긍정하였고 몸소 참선 수행의 묘미를 체득하기 위한 노력을 노년에 이르도록 진지하게 경주하였기 때문이다. 박세당이 유지한 고승·대덕과의 교분도 이 같은 토대 위해서 수행된 것이다. 본서의 제6장을 장식한 박수검의 경우 전근대 시기에서 선보인 유·불 교섭의 극점을 제시한 희유한 인물에 해당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연원 깊은 심리적 트라우마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박수검은 실존적 인간이 직면한 구원에의 처방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유학의 가르침 너머에서 불자로의 종교적 ‘전향’을 전격 감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수검의 경우 임종을 전후로 한 무렵에도 그가 떠안은 트라우마를 해소·치유하지는 못했다. 이 같은 정황은 박수검이 시도한 종교적 전향 행위를 ‘개종’의 맥락까지를 내포하는 계기적 사건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로 작용했다.
이상에서 소개한 6인의 유학자들 모두 모태종교 격인 유학[혹은 정주학]적 기반 위에서 불교와의 유의미한 교섭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들의 경우 강한 도통 담론과 벽이단론을 개진하지 않은 묘한 특징이 발견된다. 이 점 6인의 유학자들이 각기 전면적·부분적 차원에서의 교섭 노력을 펼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이유와도 직접 맞닿아 있다. 동시에 이들 6인은 애당초 견지했던 유학자로서의 사상적·이념적 정체성을 결코 각하하거나 이완시키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종교 간 대화에서 요청되는 ‘관용’의 미덕이란 그 어떤 확고한 실체성을 담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내(忍耐)라는 덕목과 보다 친연성의 관계를 지닌 단어일 것임을 성찰할 만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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