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입에 달고 살며, 이를 잣대로 정치가나 지도자, 위정자를 평론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修身도 齊家도 안 되었는데 무슨 治國에 뜻을 두는가? 나아가 平天下라니, 이는 아주 먼 이야기”라고 악평을 늘어 놓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대학>에 실려 있는 팔조목(八條目)의 뒷부분이다.
그러나 그 앞부분 “格物·致知, 誠意·正心”이 바로 누구나 자신이 해야 할 수신(修身)의 전단계(前段階)임은 점검하지 않은 채, 쉽게 남을 비평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論語≫와 ≪孟子≫를 일찍이 끝내고, 내친김에 <大學>과 <中庸>까지 마치면 그래도 「四書」는 알뜰히 재점검하리라 여겨 덤볐더니, 그 철학적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인용된 ≪詩≫의 내용도 미리 ≪詩經≫이나 ≪尙書≫를 온전히 섭렵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음을 알았다.
이에 ≪詩≫와 ≪書≫까지 어느 정도 정리해 놓고 나서, 그제야 이 두 책의 역주 작업에 안정된 일념을 경주(傾注)할 수 있었다.
비록 <大學>은 經 1章, 傳 10章이요, <中庸>도 33장의 적은 분량이지만, 그냥 ≪예기≫ 전체를 읽어나가는 정도로는 미진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大戴禮記≫까지 完譯詳註하고 나서, 다시 이 2편을 읽되, 朱熹의 章句를 중심으로 짚어나갔다.
<대학>은 <중용>과 함께 원래 ≪禮記≫(小戴禮記) 제31과 42에 실려 있는 한 편씩의 문장이다.
따라서 원래부터 낱권의 독립된 책으로 전해오던 것은 아니었다.
≪예기≫는 고대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禮)’였으며, 한대(漢代)에 이르러 소위 ‘삼례(三禮)’라 하여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로 분화되었고, 송대(宋代) 이후 모두 ‘십삼경(十三經)’에 열입되었다.
그 중 ≪예기≫는 체계를 갖추지 아니한 채 학술, 禮俗 등 잡다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공문(孔門) 70제자들과 그 後學들이 기록한 것을 모은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예기≫는 다시 ≪小戴禮記≫와 ≪大戴禮記≫가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예기≫는 바로 ≪소대례기≫를 가리킨다.
즉 대덕(戴德, 大戴)이라는 사람이 고례(古禮) 204편을 85편으로 줄인 것이 ≪대대례기≫이며, 그의 조카(?) 대성(戴聖, 小戴)이 달리 이를 49편으로 줄인 것이 ≪소대례기≫, 즉 오늘날의 ≪예기≫이다.
따라서 <중용>과 <대학>은 小戴가 정리하여 전수해온 것이다.
이를 南宋에 이르러 주희(朱熹: 1130∼1200)가 그중 2편을 따로 뽑아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라 칭하면서, 장(章)과 구(句)로 나누고 기존의 주석을 모아 ‘집주(集註)’를 더하여 편정(編定)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중시를 받게 되었다.
그 후 이 ‘사서’는 사림(士林)과 유림(儒林)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송대 이후 元, 明, 淸을 거치면서 과거(科擧)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었고, 지금도 儒學이나 經學의 입문서로써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용>은 성(性)을, <대학>은 심(心)을 다룬 것으로, 당대 이후 송대를 거쳐 명대까지 꽃을 피웠던 宋明理學, 즉 性理學의 가장 적합한 연구 교재로 인식되면서, 이 두 가지만은 ‘용학(庸學)’이라 불리며 그 자리를 잡게 된다.
<中庸>은 자사(子思, 孔伋, 공자의 손자. 孔鯉의 아들)가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史記≫(孔子世家)와 정현(鄭玄)의 <目錄>, 그리고 공영달(孔穎達)의 ≪禮記正義≫에 모두 이를 인정하여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학>은 증자(曾子. 曾參)와 그 문인, 혹은 자사(子思, 孔伋. 孔鯉의 아들, 즉 孔子의 孫子)가 지었다는 2가지 설이 있으며, 지금도 확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희는 일관되게 曾子가 전한 것이며, 그 문인이 기록한 것으로 여겨 章句와 集注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대학>의 내용은 儒家의 가장 뛰어난 政治哲學을 담은 것으로, 흔히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 ‘본말종시(本末終始)’로 나눌 수 있다.
‘삼강령’은 ‘明明德’, ‘親(新)民’, ‘止於至善’이며, ‘팔조목’은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8가지 순서와 덕목이다.
그리고 ‘본말종시’란 사람을 일깨우는 순서이며, 동시에 자신의 구학(求學)의 단계로써 “物有本末, 事有終始”를 말한 것이다.
朱熹는 이에 ≪예기≫ 속의 이 문장을 들어내어 순서를 바로잡고, 그 내용에 맞추어 經 1장(三綱領, 八條目 및 事有本末을 孔子의 말이라 보았음)을 앞에 제시하고, 이어서 그 하위 개념(經을 풀어 쓴 내용)을 傳(曾子, 혹 子思의 풀이)이라 하여, 10장으로 나누어 차례로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본 <대학>은 ≪예기≫의 <대학장>과는 문장 순서가 다르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이는 漢學의 기본이며 모든 학습의 주된 교재였고,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필수 과목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건국이념인 숭유(崇儒)에 맞추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고 나서, 서둘러 四書의 언해(諺解) 작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읽고 외웠으며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대학’을 우리도 한번 읽고 새기고, 음미하여 내 삶의 참된 지표로 삼을 기회를 가져 보자.
이 책은 일찍이 출간되었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옛날 젊은 혈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환희심에 겨워 작업했던 ‘四書’에서 미진한 부분이 늘 가슴에 걸렸다.
그런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중단된 나의 고전 총서 작업 전부를 다시 일으켜, 모두 전자책과 함께 내겠다고 제의하여, 하늘이 아직 나에게 선현(先賢)의 보석같은 철학을 더 절마(切磨)하여 완성도를 높이라고 기회를 주는구나 하고 기쁨에 겨웠다.
요즈음 고전, 특히 漢文古典은 읽는 이도, 보는 이도, 참고하는 이도, 관심을 갖는 이도, 전공하는 이도 거의 없으니, 그럴수록 어느 정도 완정하게 해놓는 것이 이 시대 책임이 아닌가 한다.
2025(乙巳)년 芒種(6.5)
布穀鳥 소리에 젖어 丹陽 黃庭山 아래 酉蝸廬에서
茁浦 林東錫이 다시 고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