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면서 ‘中庸’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윤리이며 아름다운 덕목인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때 어딘가 잘못 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왜 내 욕심이 앞서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가?
왜 노기를 참지 못하고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었을까?
왜 장년에는 나만 잘난 줄 알고 그토록 호기를 부렸을까?
늙어가면서도 욕망을 비우지 못한 것이 혹 노탐(老貪)은 아니었을까?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를 꼭 잡고 흔들리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중용’이란 아주 약한 바람에도 “공중으로 둥둥 떠가는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지만, 세상 누구도 그것을 들어 올릴 수 없다”라 하였는데, 참으로 맞는 말 같다.
지극히 가벼운 것이기에, 도리어 들어 올릴 수는 없는 것!
그래서 孔子도 “중용은 덕이 됨이, 지극하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지켜내고 있는 자가 드문지가 오래되었구나”(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논어≫ 雍也)라고 탄식한 것일까?
이러한 <중용>을 따로 모아 하나의 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마침 ≪예기≫(31)에 들어 있다.
따라서 원래부터 낱권의 독립된 책으로 전해오던 것은 아니었다.
≪예기≫는 고대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禮)’였으며 한대(漢代)에 이르러 소위 ‘삼례(三禮)’라 하여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로 분화되었고, 송대(宋代) 이후 모두 ‘십삼경(十三經)’에 열입되었다.
그 중 ≪예기≫는 체계를 갖추지 아니한 채 학술, 예속 등 잡다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공문(孔門) 70제자들과 그 후학들이 기록한 것을 모은 것이라 보고 있다.
≪예기≫는 ≪소대례기≫와 ≪대대례기≫가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예기≫는 바로 ≪소대례기≫를 가리킨다. 즉 대덕(戴德, 大戴)이라는 사람이 고례(古禮) 204편을 85편으로 줄인 것이 ≪대대례기≫이며, 대성(戴聖, 小戴)이 달리 이를 49편으로 줄인 것이 ≪소대례기≫, 즉 오늘날의 ≪예기≫이다. 따라서 <중용>과 <대학>은 소대가 정리하여 전수해온 것이다.
이를 남송 주희(朱熹: 1130∼1200)가 그 중 제 31편의 <중용>과 제42편의 <대학>을 뽑아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라 칭하면서, 장(章)과 구(句)로 나누고, 기존의 주석을 모아 ‘집주(集註)’를 더하여 편정(編定)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중시를 받게 되었다. 이는 당연히 송대 큰 바람을 일으켰던 性理學(理學)을 위해서였다.
‘性’, ‘理’, ‘氣’, ‘心’을 끝없이 천착(穿鑿)하던 당시 학자들에게 마침 이 두 책에는 이에 대한 定義와 설명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 ‘사서’는 사림(士林)과 유림(儒林)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송대 이후 원, 명, 청을 거치면서 과거(科擧)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었고, 지금도 유학이나 경학의 입문서로써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용>은 성(性)을, <대학>은 심(心)을 다룬 것으로 당대 이후 송대를 거쳐 명대까지 꽃을 피웠던 성리학의 가장 적합한 연구 교재로 인식되면서 ,이 두 가지만은 ‘용학(庸學)’이라 불리며 그 자리를 잡게 된다.
<중용>은 자사(子思, 孔伋, 孔子의 孫子. 孔鯉의 아들)가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기≫(孔子世家)와 정현(鄭玄)의 <목록>, 그리고 공영달(孔穎達)의 ≪예기정의(禮記正義)≫에 모두 이를 인정하여 이의를 달지 않았다.
<중용>은 공문(孔門)의 최고 경지인 인생철학서이다.
성(性), 도(道), 교(敎) 3가지를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성을 바탕으로도 천하 대본(大本)을 세우는 것을 중(中), 천하 달도(達道)를 실행하는 것을 화(和)로 하여 ‘치중화(致中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성이란 하늘의 도이다. 그러나 이를 정성스럽게 실천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20장)라 갈파한 것이다.
이에 주희는 문장 전체를 다시 33장으로 세분하여, 천명(天命), 솔성(率性), 수도(修道) 등의 문제를 章과 懼로 나누어 각각의 주석을 모으고, 자신의 의미를 더하여 풀이한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이는 한학(漢學)의 기본이며 모든 학습의 주된 교재였고,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필수과목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건국이념인 숭유(崇儒)에 맞추어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된 뒤 서둘러 언해(諺解) 작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읽고 외웠으며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중용의 도’를 우리도 한번 읽고 새기고, 음미하여 내 삶의 참된 지표로 삼을 기회를 가져보자!
한편 이 책은 이 책은 일찍이 출간되었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옛날 젊은 혈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양도 적고 문장도 순탄하여 그저 얕보고 환희심(歡喜心)에 겨워 작업했던 것을 늘 가슴의 한 응어리처럼 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중단된 나의 고전 총서 작업 전부를 다시 일으켜, 모두 전자책과 함께 내겠다고 제의하여, 하늘이 아직 나에게 선현(先賢)의 보석같은 철학을 더 절마(切磨)하여 완성도를 높이라고 기회를 주는 것이라 여겨 기쁨에 겨웠다.
그리하여 수정과 보완을 거쳐, 시각적으로 알기 쉽도록 구분하고, 각주를 더하여 이에 다시 내게 되었음을 내 자신에게 안위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莊子(列子)≫의 ‘목계(木鷄)’에는 근처에도 갈 수 없고, 더구나 이 책 제목대로 ‘중용’의 철리(哲理)는 터득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문세(問世)할 수밖에 없음을 너그러이 해량(海諒)하고 참고서로 활용해주기 바란다.
2025(乙巳)년 夏至에
茁浦 林東錫이 負郭齋에서 다시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