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이요? 보령 아니고요?” 여행을 떠나기 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령이라는 곳이 있어요. 충청남도 보령 말고 경상북도 고령이요. 좀 생소하지요? 일일 생활권이다, 사통팔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못 가본 고장이 너무 많습니다. 고령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고등학교가 두 개, 99개석을 갖춘 영화관이 하나. 시장은 5일에 한 번 서고 기차는 아직 다니지 않습니다. 시골의 고립무원을 사랑하는 여행자에게는 그야말로 청정구역 같은 곳이지요.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아이고, 멀리서들 오셨네”라며 밭에서 딴 앵두며 블루베리를 한 움큼씩 쥐어주는 곳이기도 하고요.
고령(高靈)은 이름처럼 높고 신령스런 고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가야의 도읍지였습니다. 산 중턱에 포도송이처럼 퍼져 있는 왕들의 무덤은 한 편의 서사시 그 자체였습니다. 520년 넘게 존속했던 고대 왕국의 실존이 거기 있었습니다. 산책길에 주운 토기 조각, 그 또렷한 물결무늬가 메마른 상상력에 불을 지폈습니다. 초여름의 연둣빛 고분들 사이를 거닐며 단순한 산책의 재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무덤은 괴괴했지만 길은 그저 아름답기도 했으니까요. 이탈리아까지 가서 스타벅스를 찾듯, 이따금 커피며 디저트를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가야산이 보이는 카페에서 폭신한 다쿠아즈를 먹고, 폐교를 개조한 캠핑장에서 카푸치노 거품을 홀짝였습니다. ‘힙’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뉴웨이브를 이끄는 젊은이들은 어김없이 있었습니다. 제주나 부산이 아닌 고령이어서 그들의 존재는 더 각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령은 터프한 땅입니다. 가야인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힘찬 기개로 여행자를 압도합니다. 오동나무를 깎아 가야금을 만드는 명인, 시장에서 3대째 쇠를 담그는 대장장이, 화살통을 차고 벌판을 달리는 기마무사들은 누가 봐도 명백한 대가야의 후예입니다. 그 무형의 유산 또한 여러분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장소에 이처럼 귀하고 찬란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따로 귀띔하고픈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개실마을 마루에서 바라본 베롱나무의 눈부신 분홍,
수십 개의 장독을 휘감는 상비산의 물안개, 농부가 즉석에서 튀겨준 들깨 꽃 부각의 바삭함.
우리가 몰랐던, 당신이 몰랐던 그곳, 고령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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