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장원재 교수(숭실대 문예창작학과)가 들려주는 올림픽의 숨은 이야기. 스포츠 고고학과 올림픽 종목, 축제를 빛낸 영웅들에 관한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올림픽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면 단순히 점수와 승패를 따지는 그 이상으로 보다 폭넓게 인류의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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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진 두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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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을 하고도 빼앗긴 고국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손기정의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서울올림픽 때 성화를 들고 펄쩍펄쩍 뛰어들어오며 환호하던 손기정 옹의 모습은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주었다.
손기정과 남승룡의 위대한 승리 뒤에는 숨은 주역이 있었다. 잊혀진 영웅 유장춘과 권태하가 그들이다. 1935년 당시 시즌 세계랭킹 10걸 가운데 7명이 일본 국적이었고 거기에 포함된 두 명의 한국인은 손기정과 유장춘이었다. 일본에게 배당된 베를린올림픽 출전권은 3장 뿐이어서 우리 선수들이 모두 출전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마라톤 천재 손기정과 당시 떠오르고 있던 남승룡이 출전권을 따낼 수 있도록 세계 랭킹 2위의 일본 선수 이케니카 야스오를 초반에 무서운 속도로 유인하여 탈진시켰다. 하지만 결국 본인은 레이스를 다 완주하지 못해 탈락하고 말았다.
또 한명의 영웅 권태하는 LA 올림픽 마라톤 9위를 차지했던 선수로서 당시에는 만주에서 철도 기관사로 있었다. 그는 손기정과 남승룡의 출전 소식을 듣고 천리길을 마다않고 노동으로 여비를 벌어 베를린까지 날아갔다. 전 올림픽 대표였던 것을 핑계로 두 선수 가까이에 갈 수 있었는 권태하는 시키지도 않은 현지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찹쌀떡을 먹어야 제 기량을 발휘하는 습관이 있는 남승룡을 위해 가까스로 찹쌀떡 비슷한 것을 구해 입에 넣어줄 수 있었다고 한다. 영웅을 기리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손기정, 남승룡과 더불어 이 두 명의 숨은 공로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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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의 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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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나라의 스포츠 엘리트 정책과 올림픽에 출전하는 운동선수의 인권, 그리고 종목에 따른 경기 관행 및 규칙의 변화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올림픽의 속얘기를 들려준다. 그 중 IOC와 경기단체 간의 견제와 자존심 다툼을 들여다 보는 것도 올림픽을 보는 또다른 재미이다. 축구의 예를 들자면, IOC는 세계적으로 가장 두꺼운 지지층을 거느린 축구를 차마 올림픽에서 제외할 수 없기에, 프로가 출전하지 않는 2류 타이틀의 불명예를 ‘울며 겨자 먹기’로 감수해왔다. 세계축구협회가 올림픽을 푸대접하는 배경은 월드컵만으로도 얼마든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올림픽에도 프로 선수의 출전을 허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형성하자, 세계축구연맹은 올림픽을 23세 이하의 경연장으로 만들겠다며 선수를 쳤다. 이미 청소년 대회(20세 이하), 유소년 대회(17세 이하)를 주관하던 세계축구연맹은 월드컵 산하의 또 다른 보조 타이틀 하나를 남의 손을 빌려 창설하고자 움직였던 것이다. 그 첫 대회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다. 대회가 끝나고 월드컵 본선경기에 비해 경기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난이 이어지자, 양 단체는 협상을 통해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와일드카드 선수 3명 출장 허용”이라는 합의문에 서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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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희와 감동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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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건국이후 최초의 금메달(레슬링 자유형)을 안겨준 양정모가 흘린 눈물은 우리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서울올림픽 때 글로벌 코리아의 자랑스러움을 준 페루 여자 배구 감독 박만복은 어떤가? 일찍이 남미로 건너가 배구 볼모지에서 팀을 일구고,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다른 나라의 감독이 되어 돌아온 박만복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남미선수권을 연이어 제패하며 파란을 예고했다. 장기간의 연마를 견딘 선수들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콤비네이션 플레이와 속공을 선보이며 절정의 배구 미학을 구현하자, 페루 국민들은 선수들 하나하나를 애칭으로 불러가며 성원을 보냈다. 접전 끝에 결승전에 패했지만, 관중들을 향해 눈물 섞인 한국식 인사를 보내며 페루 선수들은 박만복 감독을 무동 태우고 몇 바퀴고 몇 바퀴고 체육관 바닥을 돌고 또 돌았다.
인생은 상상할 수 없는 숱한 요소들이 장기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스포츠는 개인 혹은 단체가 쏟아 부은 재능과 노력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점수 혹은 기록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이자 인류문명의 거울이라고 불린다. 어쩌면 우리가 선수들의 몸짓 하나, 기록 하나에 울고 웃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스포츠정신이 살아있는 나라는 희망과 활기로 가득찬 사회이며, 운동선수들은 인류 전체를 대표하여 신과 인간이 선택한 사랑스러운 소수이다. 이제 올 여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들이 들려줄 또다른 감동의 이야기를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