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 그리고 여자 이야기
“스트레스를 받거나 생각이 생각을 낳아 도무지 멈춰지지가 않을 때
신나게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듯, 부릉부릉 맘껏 달린다.
길이 아닌 길을 가도 상관없고 정해 놓은 목적지도 없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는
원하는 사이즈가 없어 구입을 미뤄왔던 파우치 하나가,
미영 언니에게 어울리는 앙증맞은 가방 하나가,
혜연이의 안 좋은 허리를 받쳐 줄 쿠션 하나가,
울 귀여운 조카가 집에서 뛰어놀 때 입을 편안한 바지 하나가 태어난다.
고민으로 시작해 행복으로 태어난 아이들.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취미로, 생활의 한 부분으로
조금은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가, 나는 그렇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자연을 닮아 욕심 내지 않은 배우 김현주의
달빛처럼 은은한 바느질 이야기
“사람들은 모두 보여 주는 모습만 보여 주고
가리고 싶은 모습은 숨긴다.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으니까.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 싶으니까.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
이런 것들이 괜히 확대되어진다.
딱히 감추려고 한 것도 아니고
숨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신비주의 전략이냐고 물어온다.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까.
내게 숨겨진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이 책에서 보여 준 바느질이다.”
김현주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이다. 1996년 데뷔 이래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수많은 역할을 맡으며 연기의 폭을 넓혀 트렌디한 현대극에서부터 의미 있는 시대극까지 다양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기자로 성장했다. 「유리구두」에서는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진 풍파를 다 겪고 그걸 꿋꿋하게 딛고 일어서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밝고 낙천적인 캐릭터를 연기했고,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에서는 소박하고 순수한 꿈을 갖은 억척같은 여자로 오뚝이 같은 성격을 보여줬다. 「토지」에서는 현실적,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냉정하고 강한 어린 ‘서희’에서부터 두 아들을 둔 어머니 ‘서희’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냈고, 이후 「인순이는 예쁘다」에서는 상처를 간직한 여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했다. 「꽃보다 남자」에서는 맑고 큰 눈, 깨끗한 외모, 씩씩함과 밝고 털털한 성격으로 시청자들에게 ‘여신강림’이란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고, 최근 종영한 「파트너」에서는 남편과 사별 후 애 하나 딸린 억척 아줌마 변호사로 변신하여 연륜 있는 연기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이 책은 그녀가 평소 틈틈이 취미로 만들었던 에코백, 패브릭 파우치, 앞치마, 뜨개 목도리 등 소품들을 만들면서 여배우로서 또 여자로서 행복했던 이야기, 사랑했던 이야기, 그리고 단순히 말로 표현하기에는 복잡하고 미묘했던 마음 속 생각들을 오밀조밀 풀어낸 바느질 에세이이자 그녀만의 소품 만들기 노하우를 담은 DIY 책이다.
사부작 사부작 손으로 짓는 기쁨과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끄적임
“숨쉬기……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가끔씩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렇게 자신만의 호흡을 찾아가는 것,
정말 시원하게 숨을 쉬는 것.
답답한 숨통을 화악 열어보는 것.
어쩌면 내게, 그것이 바로 바느질이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바느질에 관심을 가진 건 데뷔 이후 3~4년이 지나면서부터이지만, 중학교 시절 가사 시간에 만든 실습용 블라우스가 너무 꼼꼼해 엄마가 해 준 것으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그녀의 손재주는 남달랐다. 그 손재주는 배우로 데뷔한 후에도 변하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이면 말로 다 담지 못한 마음을 모두 담을만한 커다란 가방을 만들고, 복잡한 마음을 풀어가듯 털실을 풀어가며 스웨터를 뜨고,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만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바느질은 취미를 넘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책을 보고 독학을 하거나 수예점을 찾아다니며 알음알음 배워나간 것이기에 전문적인 소품은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들었던 원단이 멋진 작품으로 변신할 때,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재료들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할 때마다 그녀의 정성과 마음이 어우러져 따뜻하고 특별한 느낌이 묻어났다.
그녀가 만든 소품들은 외출할 때, 여행할 때, 요리를 할 때,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할 때 온기를 내뿜는다. 쉽게 더러워질 것을 염려해 겉과 속을 같은 천으로 만든 양면가방, 십 년쯤 된 명품 슬리퍼에 천을 덧대 리메이크한 슬리퍼, 작은 동전 하나도 귀하게 여기고 싶어 만든 동전지갑, 안대와 슬리퍼와 파우치로 구성된 여행용 기내 세트, 테두리가 닳아 안쓰러운 다이어리를 위해 만든 다이어리 가방 등 작은 소품이라도 쓰임에 따라 제각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품들은 김현주의 감성적인 글과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끄적임, 그리고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서 빛을 발한다. 그녀 또한 늘 행복할 수만은 없고 또 늘 불행할 수만은 없는 법. 우울하고 힘들 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나 부엌에서 일어나는 엄마와의 소소한 대화, 조카를 사랑하는 고모의 마음이 담긴 단상, 여행에서의 유쾌한 에피소드 등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머, 맞아! 나도 그런데’ 하고 살포시 웃음 지으며 행복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다. 김현주의 일상도 살짝 들여다보면서 필요했던 소품들의 만드는 방법까지 나와 있어 왠지 덤을 얻은 듯한 설렘을 주는 책.
** 김현주가 직접 만든 소품은 'How to make'에 도안을 수록해 손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했다. 바느질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따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