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섹터 고유의 앙트러프러너십을 찾아서
모든 것이 경제가치로 환원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예술이 어떻게 ‘순수성’과 ‘상업성’이라는 양 측면을 아우르면서 본연의 자리를 지켜왔는지, 그 비밀을 ‘앙트러프러너십(기업가정신)’이라는 열쇠를 통해 파헤친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앙트러프러너십은 ‘企業家’가 아닌 ‘起業家’의 정신을 말한다. 이때 기업가는 단순히 자본을 대고 경영하는 자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해내는 자다. 즉 유익한 기회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사람, 날카로운 예견・판단・직관 능력 그리고 인지적 리더십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문화예술 섹터의 앙트러프러너십을 살피기 위해 저자는 근현대를 대표하는 여섯 화상(아트딜러), 여덟 예술가(화가), 여덟 개 문화예술기관(미술관)을 소환해낸다. 저자는 이 인물들과 기관들이 어떤 나름의 사고와 철학을 가지고 또한 어떤 남다른 의지와 집념으로 자신들의 동기와 목표를 성취해나갔는지,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중요한 업적을 중심으로 그 특질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그리하여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오늘날 우리 문화예술이 처한 어려움과 문제점을 성찰하고 앞으로 지향해가야 할 앙트러프러너십의 기준을 제시해 보인다.
시대를 선도하는 아방가르드로서 앙트러프러너십
“미술사는 미술시장의 역사를 말한다.” 이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아는가? ‘미술사’란 제목을 단 책을 가장 먼저 쓴 사람이 아트딜러(art dealer) 즉 화상이었음을.”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과 ‘생계’ 사이에 놓인 간극과 모순 때문에 번민하고 실제로 고통당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시장에서 팔리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생존과 직결되는 절박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과 시장 사이에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직업군으로 화상이 등장한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이 책 제1부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술시장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아트딜러들에게서 어떤 특질을 발견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앙트러프러너십’이란 화두로 풀어나간다. 인품과 집념을 바탕 삼아 대화상으로 성장한 앙브루아즈 볼라르, 연구와 학습으로 탁월한 식견을 갖춘 화상 집안의 선구자 나탕 윌당스탱, 예술가들을 위한 절대적인 후원을 자처하여 거대한 컬렉션을 이룩하고 직접 미술관을 설립한 페기 구겐하임, 선견지명으로 이전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경영 방식을 도입한 인상파의 대부 폴 뒤랑뤼엘, 끈기와 인내로 일본 화상의 선구자가 된 하세가와 진,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톱 딜러 조셉 듀빈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독특한 기업가정신으로 예술의 역사와 미술시장에 새 장을 열었다.
제2부에서는 프란시스코 고야, 빈센트 반 고흐, 살바도르 달리, 카라바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에두아르 마네, 파블로 피카소, 렘브란트가 어떤 앙트러프러너십을 발휘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현하고 현실에 대응해갔는지를 살핀다. 이들 모두의 앙트러프러너십을 포괄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창작을 하는 화가는 어느새 철학자가 된 자신을 보게 된다. 생시몽(Saint-Simon)은 그래서 예술가를 ‘아방가르드’라고 불렀던 것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행동을 가지고 세상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 예술가는 모든 권력을 거부하는 존재로서 이러한 화가의 창의성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반드시 수반된다. ‘전문성’과 ‘애착’이 그것이다. 확실히 재능이 예술가의 본질을 결정한다. 하지만 꾸준한 작업이 따라야 한다. 예술적 소양과 꾸준한 작업에 따른 조화를 바로 예술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다.”
제3부에서는 필랜스러피, 스미소니언 연구소, 루브르 미술관, 고궁박물원, 보스턴 미술관, 뉴욕 근대미술관, 뮈제 도르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의 설립 동기와 이념을 통해 문화예술기관이 ‘보관하는’ 곳에서 ‘보여주는’ 곳으로 변모해온 과정을 이야기한다. 예컨대 저자는 나라의 역사도 짧고 미술관의 역사도 일천한 미국이 오늘날 미술관 천국이 된 것을 예로 들면서 이를 “대중을 교육하기 위해,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와 국민을 만들기 위해 누구나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문화예술의 장으로서, 또한 민주적인 교육의 장으로서 미술관의 역할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