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찬쉐의 대표작
대체 불가능한 스타일로 인류의 감정사感情史를 엮는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의 선구자 찬쉐의 대표작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찬쉐의 첫번째 장편소설 『오향거리五香街』가 출간되었다. 오향거리에 새로 이사온 자유분방하면서 비밀스러운 X여사를 둘러싸고 거리의 주민들은 저마다 그녀의 나이, 과거, 습관 등 모든 것에 대해 무수한 추측을 이어간다. 그녀가 오향거리의 여성들이 선망하는 Q선생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까지 퍼지자, 주민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X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파고들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정체는 오히려 묘연해지는데…… 사건의 본질을 두고 벌어지는 난장亂場 한바탕을 만난다.
외계인, 무녀巫女, 존경하는 우리의 X여사……
관건은 주민들의 머릿속에서 교묘하게 일어난 재현
소설은 필자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필자는 간통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기록하기 위해 사건의 발단을 추적하고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 요컨대 소설은 생동적이고 자유로운 주인공 X여사가 과연 Q선생과 어떻게 간통을 저질렀는지를 두고 작가-필자-주민들의 진술이 삼중 메타를 이루는 형식이다. X여사는 강가에서 볕을 쬐며 옷을 벗어던지고,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독특한 견해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어두운 골방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등 기이한 행동을 일삼긴 하지만, 마을 주민들에게 이렇다 할 피해를 끼치는 것 없이 결국 오향거리 어귀에서 작은 견과류 가게를 운영할 뿐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X여사는 마을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외계인이 되었다가, 무녀가 되었다가, 존경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극히 개성적인 우리 주민들 눈에는 누군가에게 멧돼지로 보이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비둘기로, 또다른 사람에게는 빗자루로 보이지요. 191쪽
X여사의 나이만 두더라도 22세에서 50세까지로 추정하는 등 주민들의 의견은 각자의 입장에서 제각각이다. 작가 찬쉐는 이런 군중의 속성을 서늘히 관조하면서도―“우리는 낭만적이지 않고 거론할 가치가 없는 기괴한 행동일수록 거기에 풍부하고 아름다운 의미와 신비한 색채를 부여하며 멋지게 장식해 살아가기 위한 정신적 양식으로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저열한 근성이고요.”―그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필자의 입을 빌려 그 모든 진술들을 긍정하기에 이른다.
관건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주민들 머릿속에서 교묘하게 일어난 재현입니다. 그토록 왕성하고 아름다운 창조, 그토록 거침없고 호방한 상상, 그토록 심오하게 저변을 파고드는 탐구, 그토록 세심하고 포기를 모르는 집요한 감지력.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광활한 세계를 구성하는 풍부한 보고寶庫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늙겠지만 이 생명의 나무에 맺힌 기이한 열매는 자유롭게 내달렸던 우리의 감정을 영원히 상징할 것입니다. 193쪽
마을 주민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이를 담아내는 소설의 내용과 형식은 실은 제목에서부터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오향거리五香街. ‘오향’은 오향장육이나 오향닭과 같이 중국 요리에서 풍미를 더하는 팔각, 계피, 회향 등의 다섯 가지 향신료를 일컫는 말이다. 중국의 독자들은 분명 제목을 보자마자 후각이 먼저 자극됐을 테다. 어느 하나가 묻히는 일 없이 각자의 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복잡미묘하게 뒤엉켜 후두부를 강타하는 느낌. 그러한 향이 온 거리에 가득한 이곳, 오향거리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들이 이야기, 나아가 소설 그 자체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주민들의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거나 비루할지라도 이들을 굽어봐달라 강조하듯, 작가 찬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오향거리의 보잘것없는 소시민들을 사랑해달라고 촉구한다.
사회 최하층의 보잘것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철학적 진리를 막힘없이 늘어놓을 때 반감을 품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본질적 삶’이 바로 그렇거든요. 늘 철학이란 그런 소소한 사람들에게 속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넓고 심오한 이론은 우리의 물질생활 깊숙이 들어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오향거리의 소시민을 사랑해주세요. 그들은 뛰어난 통찰력과 결단력을 지녔기에 이상을 좇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거침없고 호방하게 뻗어나가는 상상력, 멈추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오향거리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잘 차려진 한상, 『오향거리』를 만나볼 때다.
주류에서 벗어난 삶의 궤적이 빚어낸 진정한 이단 작품
‘욕망의 철학 3부작’ 서막을 올리다
1953년에 태어난 작가 찬쉐는 지역 일간지 <신호남보> 사장의 딸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957년 정부의 ‘반우파 운동’으로 <신호남보>가 우파조직으로 지목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이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퇴직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찬쉐는 할머니 손에 맡겨진다.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때문에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1970년부터 선반 조립과 수레 운반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경험하다 1985년 「더러운 물 위의 비눗방울」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진흙거리」를 출간한 후 첫 장편소설 『오향거리』를 발표하게 된다.
작가 찬쉐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한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주류 작가가 아닌 주변부의 이단 작가로 서게 됐다. 공교육을 받지 못하고 무속신앙 신봉자였던 할머니 손에서 자라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일들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며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정립했고, 십 년의 문화대혁명 동안 생계를 위해 궂은일을 하며 ‘보잘것없는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976년 막을 내린 문화대혁명 이후에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 것도 작가에게는 득이 됐다. 그간 정치적 영향권 아래, 사상의 도구로 간주되던 문학에 자유로운 서사와 서술을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기이하고 몽환적으로 그려내는 생명력 넘치는 날것의 작풍은 이렇게 형성되었고, 그 독특한 스타일은 첫 장편소설 『오향거리』에 고스란히 담긴다. 특히 『오향거리』에서 외부세계와 타협하지 않는 X여사의 캐릭터는 찬쉐의 독특한 세계관과 시선이 응축된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인다.
X여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다지 민감하지 않았지만, 각종 경로를 통해 자신을 향한 남들의 분노를 감지했고 이성적으로도 세상의 적의를 눈치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녀는 특별한 경험, 사람들에게 진짜 느낌을 털어놓으면 웃음거리가 된다는 경험을 했다. 사물을 보는 방식이 모든 사람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세밀한 감각까지도 사람들은 그녀와 완전히 다르고 어긋났다. 이미 오래전에 몸에 배었기에 X여사는 자기 습관을 바꿀 수도 없고 남한테 적응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X여사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이라고 고집스럽게 믿었다. 128쪽
찬쉐의 대체불가능한 스타일은 『오향거리』와 함께 ‘욕망의 철학 3부작’이라 불리는 장편소설『마지막 연인』 『신세기 러브스토리』를 비롯해 이후의 작품들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