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미국소설의 진면목을 본 것 같은 또 하나의 멋진 소설. 필립로스 소설, 이게 네 번째인가 그런데, 읽은 작품들 모두 다 흥미진진하고 이야기 할 꺼리들이 넘치는 작품들이었다. 글 만으로 세계 하나를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독자들을 완전히 몰입시키는 재주가 탁월한 작가.
필립 로스의 '주커먼 시리즈'로 불리는 작품 가운데 한 편이기도 한 이 책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민감하게 다가올만한 작품인듯. 아직은 ’공산당‘ ‘노조’ ‘파업’ 이런 단어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위기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라. 책 속의 미국도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큰일나던 시기인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공공연히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혀도 눈총받지 않는 분위기인지 어떤지.
험한 동네, 팍팍한 가족들 사이에서 어릴 때부터 주먹 휘둘러가며 살아가야하는 아이라 린골드. 폭력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10대 시절에 살인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근사해지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각잡힌 공산주의자를 만나 그에게 매료되어 자신도 공산주의자로서의 살아가기로 결심하지만, 어쩌어찌 민주주의의 대명사인 링컨 대통령 역할의 성우 연기로 대박이 나면서 어느새 성공한 부르조아지들의 삶을 향유하게 된다.
아리따운 여배우와의 결혼, 자신만의 방송프로그램 진행 등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했지만, 아내가 죽고 못사는 고집불통 의붓 딸과의 갈등, 의붓 딸의 친구인 젊은 여자와의 불륜 등으로 점차 지옥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작가는 정치이념이든 개인적인 신념이든 아주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인 사생활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점, 특히 ‘배신’이 인간에게 주는 우울함, 그에 따른 처절한 복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책의 제목인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도 아이라의 부인이 그와의 갈등 끝에 폭로성으로 출판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후에 알게된 사실인데, 이 작품은 필립 로스가 오랜 세월 연인으로 지내다 1990년 결혼하지만 4년 후 이혼하게 되는 영국 여배우 클레어 블룸이 자신과의 결혼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한 회고록을 출간하자, 이에 분노해 발표한 작품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거대한 사회, 또는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개인이 파도에 몸을 싣어 오르락 내리락하다 결국 사그러지는 모습들을 담은 작품들이 꽤 많은 듯. 매번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이 지루하지 않고 생생하고 흡인력 있는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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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턴이 우울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 모든 사람은 우울에 빠지는 성향을 타고나지만, 일부만이 우울을 습관화한다. 어떻게 습관이 되는 걸까? 이 문제에 버턴은 답하지 않았네. 그 책에는 답이 없었지. 난 상륙작전이 끝날 때까지 의문을 품었고, 나중에 개인적인 경험으로 알아낼 때까지 계속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네.
배신을 당하면 그 습관이 생기는 거야. 정답은 배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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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 배신을 억누르면 결국 다른 쪽에서 배신이 튀어나온다. 그건 정적인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 때문이고, 살아 있는 건 모두 움직이기 때문이다. 순수함은 돌처럼 굳은 것이고,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니 오데이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금욕의 귀감이 아니라면, 오만 가지가 충동을 다그치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필립 로스, 김한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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