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굉장한 것
빛 쪽으로 한 걸음 더 내딛겠다는 의지와 다짐
신동엽문학상 수상 작가 안희연 신작 시집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슬픔도 결핍도 정면으로 마주하며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담아내는 안희연 시인, 그의 네번째 시집 『당근밭 걷기』가 문학동네시인선 214번으로 출간되었다.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안희연은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와 이어진 두 권의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현대문학, 2019)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창비, 2020)을 통해 동료들에게 “한 손에는 미학, 한 손에는 깊이를 포획”(시인 이원)하고자 하는 시인이며, “깨달음의 우화와도 같은” 시편들을 통해 “기어이 어떤 연약한 강인함에 가닿는다”(시인 이제니)는 미더운 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시집은 ‘여름 언덕’에서 내려와 ‘당근밭’을 걸으며 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삶의 신비와 여분의 희망을 건져올리려 애쓴 시인의 지난 4년을 담고 있다.
가위는 가로지르는 도구다. 가위는 하나였던 세계를 둘로 나누고 영원한 밤의 골짜기를 만들고 한 사람을 절벽에 세워두고 목소리를 듣게 한다. 발아래, 당신의 발아래 내가 있으니 그냥 돌아가지 말아요.
절벽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위는 있다. 그는 밤 가위로 밤을 깎는다. 밤의 껍질은 보기보다 단단하다. 밤으로부터 밤을 구하려면 밤도 감수해야 한다. 피부가 사라지는 고통을. 그래도 조각나지는 않는다. 밤 가위는 밤의 둘레를 천천히 걸어 하나의 접시에 당도한다. 당신 앞에 생밤의 시간이 열릴 때까지.
당신 발밑으로 이유 없이 새 한 마리가 떨어진다면 제가 보낸 슬픔인 줄 아세요. 저는 아직 절벽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_「밤 가위」 전문
서시 자리에 놓인 이 작품은 안희연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영원한 밤의 골짜기” 속 “절벽”에 세워진다 해도, “생밤의 시간이 열릴 때까지” 천천히 나아가보겠다는 태도. 낮과 밤을 가로질러 세계를 이등분할 만큼의 위력은 없어도 “피부가 사라지는 고통을” 감수할 의지와 각오로 손에 들린 가위를 써보겠다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그런 화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돌’이다. “어디서 굴러온 돌일까. 쥐어보니 온기가 남아 있다.” 처음엔 “가엾은 돌”이라 생각했다.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곧이어 굴러온 또다른 돌. “거듭해서 말해져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이 돌들은 “간곡한 돌”이 된다. 점차 “무거운 돌”이 되었다가 “무서운 돌”이 되기도 하고,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릴 만큼 쏟아지는 돌은 “모르는 돌”이자 “무한한 돌”. 이쯤 되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돌의 의지”(이상 「발광체」)를 들여다보는 것, 시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 안희연의 화자는 “돌을 태운다”(「간섭」) . 『당근밭 걷기』의 1부는 이렇듯 삶과 세계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들여다보려는, 몸과 마음을 다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굳은 모양을 보면/ 어떻게 슬퍼했는지가 보인다/ 어떻게 참아냈는지가”(같은 시). 그러므로 “매일의 디테일로 맞서는/ 최선의 사람”(「썰물」)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모두 나의 땅이라 했”을 때 “그게 뭐든 무해한 것”을 심고자 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무언가 자라기 시작하고” ‘나’는 “기르는 사람이 된다”. 그 ‘당근밭’에는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 긴 이야기”가 생겨나리라(이상 「당근밭 걷기」).
지난 시집 ‘시인의 말’에서 안희연은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고,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 이어진 “담대한 척 고백해놓고/ 조금은 슬펐”다는 혼잣말, “단박에 알아”본, “너”라는 존재는 그러므로 더 귀하다. “백지 앞에서 마음이 한없이 캄캄해질 때/ 너는 등뒤에 집채만한 나무 그림자를 매달고 나타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때 알았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_「긍휼의 뜻」에서
“걸고 쓰느라 부서진 마음 알아봐주는/ 단 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 “서로의 목격자가 되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것을 깨달은 안희연의 화자는 이제 “서글픔 농담”을 하고도 “싱긋 웃”을 수 있다.(이상 「긍휼의 뜻」)
2부에는 ‘식물-화자’가 인상적인 시편들이 묶여 있다. “내가 볼 때/ 너도 보았겠지”(「자귀」)로 요약할 수 있을, ‘인물’과 ‘식물-비인간 존재’의 관계 맺기.
안희연의 이번 시집에서 ‘시선’은 그것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존재와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 이 시들이 마주보려는 곳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 있음을 말할 수 없어서 저절로 망각된 존재들이 있다. 이들과 마주보기 위해서는 눈앞의 존재를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자로, 즉 눈을 가진 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를 주체로 받아들일 때 그 역시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일방적 시선의 한계가 사라지는 잠깐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때 비대칭적이던 인간-비인간 사이의 관계는 대등하게 재설정되고, 그로부터 ‘존재’는 새롭게 경험된다. 분리된 줄 알았지만 실은 이어져 있다는 발견 속에서, 삶은 ‘함께 있음’의 감각으로 다시 경험되는 것이다. _이재원, 해설에서
폭포처럼,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모양새를 하고는 “위아래가 뒤바뀐 삶도 있다고/ 뻗치고 헝클어지는 게 일이라고” 그러면서 “당신 안에도 나 있지요?”(「립살리스 레인」) ‘나’에게 말을 거는 행잉 플랜트가 있고, “그의 잠을 지키는 일”에 몰두하고 “슬픔이 작동하는 회로를 아는 사이/ 나는 그것을 가족이라 부”(「율마」)르는 식물이 있다. ‘식물-화자’는 기다릴 줄 안다. “한 존재를 안다고 말하기까지/ 매일매일 건너왔고// 건너왔다는 건/ 두 번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잎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나’의 귀도 아파온다(「자귀」). ‘식물-화자’와 ‘나’는 통상의 위치를 뒤바꾸어 소통하며 “멀리서 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겪고 있”음을 깨닫는다.
죽음과 상실의 시편들로 채워진 3부 ‘너는 나의 가장 무른 부분’은 물론 가슴 아프다. “우주의 균형을 맞추는 저울은/ 너를 덜어내고 무엇을 얻었을까”(「진앙」) 따져 묻고 싶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우주의 마지막 인사였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북극진동」)던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하고, “자꾸 그렇게 자신을 잊으려 하지 말”(「기록기」)라고, 깨어나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앞선 2부의 “죽지 마 살아 있어줘”라는 “조약돌 같은 말”(「자귀」)을 손에 쥔 채 “검정의 세부를 새롭게 색칠해보기로 한다// 깨진 마음을/ 여기 산처럼 쌓아두고”(「파동과 경로」). “나를 이곳에 보낸 숲의 정령을 상상하며 걸을 때면/ 그 어떤 방지턱도 부드럽게 넘었”(「점등 구간」)음을 기억하며.
그렇게 마주한 4부 ‘느리게 오는 아침을 맞아요’에는 안희연의 절박하면서도 단단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눈물방울에서 느껴지는 반짝임 같은 시편들. 출간 전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삶은 굉장하다고, 상상 이상의 반짝임과 일렁임으로 가득하다고, 그러니 반드시 살아 있어달라고. 우리는 누구나 존재의 초과와 부족을 경험할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무척 거셀 테지만, 그럼에도 그 중압감에 매몰되지 말고 생의 감각, 생의 의지를 일깨우고 싶다는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던 시기였”다고 강조해 말했다.
내 안에 든 것이 누구의 심장인지는 몰라도
삶은 내가 그 안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
내가 있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_「물결의 시작」에서
“절대로, 도무지, 결단코, 기어이, 마침내, 결국……/ 그런 말들은 다독여 재우고”(「야광운」) “깨버리면 그만일 독이더라도/ 연두를 밀어올리려는 발걸음”(「독 안에」)이 되겠다는 다짐. 포기하는 것도 나빠지는 것도 쉽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삶 속에, ‘독 안에’ 있겠다는 ‘나’의 다짐이 우리에게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삶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고 그중엔 힘겹고 가혹한 것도 많다. 다정하고 좋은 것은 거의 다 잊힌 게 아닐까 싶은 순간들이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안희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손을 이끌어 빛 쪽으로 간다. ‘우리/나-너’와 우리 안의 그것을 모두 구하러 함께 가자고 말하며.
신비로워, 딱따구리의 부리
쌀을 세는 단위가 하필 ‘톨’인 이유
잔물결이라는 말
솥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신기를 신비로 바꿔 말하는 연습을 하며 솥을 지킨다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_「굉장한 삶」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