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의 숨결과 혼이 가장 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명실상부 우리 시대의 고전 『생의 이면』
온전하고도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는 개정판
이승우의 초기 대표작 『생의 이면』을 각고정려해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제32권으로 선보인다.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생의 이면』은 1992년 발간된 이래 끊임없이 쇄를 거듭하며 한국문학의 흔치 않은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내용을 수정하지 않는 선에서 전면적으로 문장을 가다듬고,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화영의 해설을 실어, 새로운 작가의 말과 함께 명실공히 ‘결정판’이라 이를 법한 개정판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작가 역시 “이 책은 나의 숨결과 혼이 가장 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라 밝힌바, 『생의 이면』은 그의 작품세계 “그 모든 층을 관통하는 작살과 같은 하나의”(128쪽) 책이라고 말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이승우라는 한 거장의 시원이자 정수를, 그의 뜨겁게 역동하는 젊은 날을 만끽하고자 한다면 『생의 이면』은 단연 그 마스터키가 되어줄 것이다.
『생의 이면』은 작가 ‘박부길’의 생애를 조명하는 글을 청탁받은 소설가 ‘나’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연보를 완성하기 위하여 1」 「지상의 양식」 「낯익은 결말」 「연보를 완성하기 위하여 2」. 이렇게 총 다섯 파트로 구성된 이 소설은, ‘박부길’의 평전이 쓰이는 과정 그 자체를 노출하기도, ‘박부길’의 소설이 고스란히 삽입되어 등장하기도, 이를 써내려가는 소설가 화자 ‘나’의 문학론이 전개되기도,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작가 ‘이승우’의 육성이 기입되기도 하면서, 마치 “생동하는 겹겹의 거울 같은 다중성의 세계”(김화영)를 만들어낸다. 이 다층적인 목소리가 한데 모이고 ‘소설 속 소설’ ‘화자와 작가’ ‘작가와 독자’ ‘실제와 이야기’에 관한 모티프와 어우러져 『생의 이면』이라는 하나의 ‘소설’이자 ‘계’가 축성된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신학 공부를 하여 목사가 되겠노라고”(212쪽) 말하는 한 남자의 생을 집요하게 추적해 “소설 이전의 작가의 현실을 복원해보려는 부질없는 꿈을”(221쪽) 꾸는 소설가의 소설. 수다한 ‘나’들이 등장하는 ‘오토픽션’이자 겹겹으로 상호작용하는 ‘메타픽션’의 장이기도 한 『생의 이면』은 문학과 종교에 관한 깊은 고심의 흔적, 신화와 상징에 대한 폭넓은 인유, 들끓는 파토스와 단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에니그마(수수께끼)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독자와 함께 새로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끝없는 현재성을 가진-자체 생산되는 힘을 가진 이야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불멸’일 것이며, 그 에너지를 가진 책이야 말로 ‘고전’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생의 이면』은 명실상부 한국문학의 ‘동시대-고전’임에 틀림없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며 걸어가는 자는 얼마나 숨이 가쁘겠는가.”
표면에서 이면으로, 마침내 전면(全面)으로 가닿는 하나의 生/소설
이승우의 소설은 다중성, 아니 그것도 그냥 다중성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뒤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로를 비추며 생동하는 겹겹의 거울 같은 다중성의 세계다. 그래서 독자는 종종 그 미로에서 길을 잃기 쉽다. 미로라는 표현은 너무 간결하다.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반복되는 표현을 빌려, 어쩌면 ‘수렁’이라고 해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점차 어떤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사의 다중성 때문이다. (…) 어둠이 뿜어내는 빛, 아마도 작가 이승우가 들어선 ‘이면’의 길은 이 ‘빛보다 더 아름다운’ 어둠의 빛일 것이다. _김화영(문학평론가)
그렇게 이 책을 타고 건너편으로 겨우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쓰기를 계속할 힘을 얻었습니다. 나를 건지기 위해 구사한 이 책의 ‘기교’에 공감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처음에는 좀 얼떨떨했습니다. 그러나 곧 누구에게나 나름의 수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이들이 나의 이 어설픈 기교를, 내가 그런 것처럼 자신의 고유한 수렁을 건너가는 방편으로 삼기도 한다는 사실을 느리게 받아들이면서 나는 조금 덜 외롭게 되었습니다. 한 책의 독자가 된다는 것은 동지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으로 손을 맞잡고, 조심스럽게, 최선을 다한 세심함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손을 잡아준 이들에게 애틋함을 느낍니다.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