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콘텐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휴일 저녁
슬픔의 전문가”
정착하지 못한 마음의 지리학,
폐허와 유랑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슬픔
일상에 신선한 감각을!
교유서가, ‘새로움’에 ‘시’를 더하다!
“당신의 시는 커다란 그물 같아요. 구멍들 속으로 빠져나가는 바람.
그 바람을 타고 당신은 떠나요. 떠나지 못해요.”
_김숨(소설가)
리산 시인이 8년 만에 펴내는 시집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가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 3번으로 출간된다. 이 시집은 한 사람의 삶을 통과하며 축적된 슬픔이 폐허, 여행, 기억, 유랑의 이미지로 변주되는 과정을 담는다. 리산 시인의 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의 힘을 오랫동안 탐색해왔다. 첫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혁명에 참여하는 시”(성기완)였다면 두번째 시집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는 한 존재가 환멸과 아름다움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기록한 책이었다. 몽상적 이미지, 신화적 사유, 냉정한 서정과 능청 그리고 세상과의 불화를 견디는 태도로 구축된 독자적인 시 세계가 이번 시집에서는 슬픔이라는 주제로 더욱 응축된다.
이 시집에는 떠나려 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하는 자,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자, 오지 않는 누군가를 끝내 기다리는 자 같은 존재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들은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 슬픔을 일상처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달을 떠나는 달」에서 “파도가 달을 벗어나고 있다 / 먼지는 계속 쌓이고”라는 문장은 떠남이 완결되지 못한 상태를 서정의 좌표로 고정한다. 이어지는 「잊으려 하지 않는다」에서는 “어디론가 떠나 돌아오지 않기에는 너무나 많은 흔적을 남겼다”라는 고백이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체류의 감정을 증거한다. 제목 그대로 이 시집에서 슬픔은 허약한 감정이 아니라 숙련된 기술인 것이다.
꽃가루를 옮기러 떠났던 벌들은 한 계절이 다 가도록 돌아오지 않고
붕붕거림의 소멸
깨어진 결혼식
성조가 사라졌다
_「달을 떠나는 달」
도착하지 못한 감정의 지도,
기억을 지우지 못한 마음이 끝내 머무르는 세계
슬픔은 한 장면이나 한 인물에 머무르지 않고 시집 전체로 확장된다. 몇몇 시에서 등장하는 더블린, 빈롱, 베른 같은 지명들은 단순히 여행의 목적지라기보다는 감정이 한 번도 도착하지 못한 채 이어지는 궤도로 기능한다. 「빈롱의 저녁」에서는 정원에 깔린 낙엽, 철도의 희미한 불빛, 기차의 진동 같은 이미지가 반복되며 체류의 감각을 불러온다. 「토성의 아름다운 어두운 꼬리」에서는 곧 도착할 것처럼 안내되면서도 끝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도착하지 못한 시간이 오래 축적되면서 기다림은 삶의 구조가 된다. 「고전미술반」의 아일랜드 풍경 또한 배경이 아니라 감응의 잔향을 각인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이 시집은 세상 곳곳에 도착하지 못한 감정의 겹을 덧입혀나가는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북을 치며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행렬을 보고
주소 없는 여자들이 중얼거린다
어린 도마뱀 한 마리 누울 수 없는 창가
철도의 불빛을 먹고 자라는 화분 하나가
내가 가진 정원의 전부야
_「빈롱의 저녁」
시집 초반부는 감정의 기원을 설명하기보다 먼저 세계의 규모를 드러낸다. 「사적인 슬픔」에서 “눈은 무거운 눈이라 /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았다”는 진술은 개인의 정서를 생태적이고 지질학적 속성으로 치환하고, 「무사」의 “울며 철책을 넘어가는 염소 치는 여자들”은 슬픔을 밀폐된 감정이 아니라 경계 바깥으로 번져가는 정서로 확장한다. 슬픔이 세계의 규모로 움직이는 것이다.
중반부에 이르면 슬픔은 도시, 노동, 자본, 시스템 속에서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낭만적인 배당」의 “지겨움으로 죽느니 과음으로 죽는 게 낫지”라는 선언은 슬픔이 현실을 버티는 기술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숲의 일부를 지나는 임시열차」에 등장하는 일련의 숫자와 기호, 발신전용 전화기, “불시에 팝업되고 변경되는 붉은 메모장”은 감정이 성과 혹은 지표의 언어로 번역되는 세계를 보여준다. 시인은 그 안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한 삶의 문법을 스스로 익혀가는 시간을 포착한다. 그렇기에 이 시집에서 슬픔은 무언가를 버티는 일에 가깝다.
헬레네,
기억을 지우지 않기에 계속 살아나는 이름
소나무 버드나무 두루미 미나리 바지저고리, 아름다운 헬레네 나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또 나는 당신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헬레네 미칠 것 같은 마음은 무엇입니까
_「조선어독본 첫째 권」
네 개의 제목, ‘아름다운 헬레네’ ‘다시 헬레네’ ‘헬레네’ 그리고 마지막의 ‘아름다운 헬레네’는 시간의 선형성을 흐리고 감정의 체류를 반복적으로 호출한다. 첫번째 헬레네는 이미 지나간 시절처럼 반짝이며, 두번째 헬레네는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과 불가능의 감각을 함께 불러온다. 세번째 헬레네에 이르면 헬레네는 더이상 대상이 아니라 몸에 각인된 감정의 패턴이 된다. 마지막 헬레네의 제목은 처음과 같지만 그 시선은 이미 변형을 거쳤다. 즉 이 반복은 회귀가 아니라 변성이다. 「Veinte Años」의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웠네”라는 문장은 망각을 통한 인생이 아니라 기억을 지닌 채 버텨내는 삶을 가리킨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감정을 폐쇄하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일이다.
헬레네 이후의 시들은 감응의 파편들이 여러 이미지로 흩어지며 확장된다. 「겨울 샐러드」의 노래하고 춤추는 낯선 사람들은 기쁨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결핍을 견디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뿌리 관목 라일락」의 붉은머리앵무새는 사랑하지만 끝내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 상태를 빛바랜 우언으로 드러낸다. 슬픔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압축된 감정이 아니라 개인윤리, 집단 정서, 세계의 피로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얽힌 구조로 제시된다.
이 구조가 완성되는 지점에서 김숨 소설가의 산문 「함께, 산책에서 돌아오지 않기」가 놓인다. 산문은 시의 이미지를 해석하거나 요약하지 않고, 시가 끝내 남겨둔 감정의 자리 옆에 조용히 머무르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 체류의 윤리이자 동반의 형식이다. 그 머무름의 방식이 하나로 응결하는 순간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는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잊지 않았기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잊지 않았기에 살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이름이 바로 헬레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