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콘텐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씨앗의 연대기
역사의 그늘에서 묵묵히 세상을 바꾸어 온 이들의 이야기
25년 동안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를 묵묵히 이끌어온
시화노동정책연구소 공계진 이사장의 현장 기록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사업?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예요.”
“‘노조활동할 권리’는 규모 있는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규모와 상관없이 심지어 단 1명이 일하는 사업장이라도 그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고 하지 않았다. 급하게 갈 필요가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더딤과 느림을 이해하면서 시화공단 12만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천천히 갈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시화공단 노동자들의 작은 애환이 아니라 우리 옆, 바로 이웃들이 일터에서 홀로 외롭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 지침서’입니다. 지금 내 일과 생활이 불안하다면, 혹은 내 이웃의 삶이 궁금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펼쳐보세요. 당신의 삶을 바꿀 작은 조각, 혹은 든든한 무기가 되어줄 겁니다.
_박지혜(시화공단 노동자)
이 책은 한 활동가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양심을 지키며 치열하게 투쟁해온 한 인간의 기록이자, 공단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향한 지극한 우정의 기록입니다. 세상의 아래로부터 변화를 불러올 주체인 작은 공장 노동자들, 이들이 ‘마침내 빛날’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 만들기 안내서’의 출간을 축하합니다. 공계진 동지의 멈추지 않는 실천에 깊은 존경과 동지애를 전합니다.
_한상균(전 민주노총위원장, 권리찾기유니온 초대위원장)
미미한 시작에서 창대한 흐름으로,
우리 곁의 숨은 거인들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인원이 적고 영세하다는 이유로 사업주의 사정을 헤아리며 법에서도 유예되었다. 하청에서 하청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다단계 구조 속에서 기업은 그들의 손실을 작은 공장 하청업체에 넘기고, 작은 공장 사업주는 “기술이 없으니 시간으로 때우고, 자본이 없으니 사람으로 메우는”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손실을 메우려 한다. 그 아래에서 인격 모독은 기본으로 저임금에 12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의 부당함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작은 공장 노동자의 목소리는 왜 들리지 않는 걸까.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조직률이 0.1퍼센트라는, 사실상 무노조에 가까운 수치가 그 대답은 아닐까. 그들의 노동권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번 책은 작은 공장 노조 건설을 위해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묵묵히 현장을 지켜온 저자의 생생한 기록이다. 핍진한 성찰과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시간의 기록을 넘어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할 권리가 있는 노동자”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말하고, 동료를 만나고, 산별노조와 지역사회를 통해 힘을 얻을 때, 시화공단은 단순한 저임금 하청공단이 아니라 그 이름의 숨은 뜻처럼, 아래로부터 변화하여 ‘마침내 빛날(始華)’ 노동의 공간이 될 것임을 저자는 현장의 언어로 전한다.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번 책은 새로운 연대의 이정표를 마련할 것이다.
산업단지가 아닌 ‘밀려난 사람들의 생존지’,
시화공단은 누구의 땅이었고, 누구의 몸으로 채워졌는가
군사정권의 추진력은 놀라워서 1984년에 ‘해면매립장기 기본계획을 위한 타당성조사’를 한 후 불과 2년 후인 1986년부터 시화지구 매립 사업과 방조제 공사가 시작되었다. 염전노동자들과 어민들이 쫓겨난 곳에 덤프트럭 수천 대가 흙을 퍼부었다. 그 흙에 눌려 염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닷물에 몸을 의지하며 살던 작은 물고기를 비롯한 생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흙을 쌓아 만든 대지에는 공장이 들어섰고, 그 공장은 서울 문래동 등에서 밀려난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6~7쪽)
이 책의 출발점은 시화공단을 단순한 산업단지나 국가경제 발전의 산물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시화공단은 애초부터 누군가의 삶터를 밀어내고, 또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밀어넣어 만든 공간이었다. 바다와 염전, 갯벌을 메워 공장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어민과 염전 노동자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동시에 서울 문래동, 인천 남동공단, 안산 반월공단 등지에서 밀려난 중소영세 공장과 노동자들이 시화공단으로 흘러들어왔다. 이 점에서 시화공단은 ‘개발’의 이름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 추방, 생계의 막다른 선택, 그리고 산업정책의 폭력성이 깊이 새겨져 있다.
문 씨, 남 씨, 안 양, 반 씨, 조 아줌마, 호 씨는 모두 각기 다른 경로로 시화공단에 왔지만, 공통적으로 자기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행사한 사람들이 아니다. 문래동 도금단지에서 온 노동자는 공해산업 이전 정책에 따라 공장과 함께 이동했고, IMF 이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시화공단의 작은 공장으로 들어왔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여성은 갯벌을 잃고 공장노동자가 되었으며,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가족 생계를 위해 낯선 공단의 가장 낮은 자리로 들어왔다.
저자는 시화공단의 역사가 노동자 개인의 이동사가 아니라 한국 산업화가 주변부 노동자들을 배치해온 역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시화공단은 수도권 공해산업 이전, 대기업 하청기지 조성, 중소영세업체 집적, 이주노동력 유입이 겹쳐진 공간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몇몇 노동자의 고단한 사연을 듣는 일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하층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화공단을 ‘산업단지’가 아니라 ‘밀려난 사람들의 생존지’로 다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