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상 재활용률 87.4%
세계 최고 수준의 재활용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왜 재생 패트병은 찾아보기 어려울까?
분리배출을 잘하면 재활용과 환경보호에 도움이 될까? 힘들게 분리해서 버린 페트병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플라스틱, 종이, 비닐 등을 따로 모아서 내놓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보았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분리배출을 잘하는 나라도 없다는데 그 결과가 피부에 그리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환경공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플라스틱 포장재 재활용률은 2020년 기준 87.4%에 이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이 수치와 크게 다르다. 독일 마트에 가면 100% 재활용 소재로 만든 생수병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함정은 재활용을 정의하는 기준에 있다. 한국의 재활용 통계는 재활용시설로 들어가는 ‘투입량’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경우가 많다. 시설에서 소각되더라도 통계상으로는 재활용으로 잡힌다. 게다가 플라스틱을 태워 에너지를 얻는 ‘에너지 회수’까지 재활용률에 포함된다. 게다가 혼합해서 배출된 폐기물을 분리해야 하는 현실에서 깨끗한 플라스틱을 별도 회수하는 구조가 확립되어 있지 않아 실제로 쓰레기를 제품 원료로 다시 사용하는 ‘물질 재활용’ 비율은 턱없이 낮다. 실제로 2022년 녹색연합 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있는 플라스틱 선별업체 341곳 중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별도 선별할 수 있는 곳은 57곳, 16.7%에 불과하기도 하다.
버려진 자원이 다시 쓰이는 지속가능한 순환의 구조, 즉 ‘닫힌 고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7년 넘게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와 씨름해 온 저자는 2023년, 독일 마트에 설치된 공병 회수 기계에서 그 구조의 실마리를 보았다. 그것은 다 쓴 페트병을 재생원료로 하여 또다시 페트병을 만드는 완벽한 플라스틱 순환의 교본이었다.
독일에서 플라스틱 전문가의 책임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은 저자는 수거 체계를 설계하는 정부의 역할, 효율적인 재활용 해법을 제시하는 기업의 역할, 플라스틱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역할을 고민하며 모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루프빌더(LOOP Builder)’가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저자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기로 결심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에 대한 기록이자 우리 모두를 위한 순환고리 설계 안내서다. 지속가능한 순환고리는 정부의 정책, 기업의 기술 혁신, 소비자인 시민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3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이 책이 정책입안자에게는 통찰을, 기업 실무자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시민에게는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 재활용을 넘어 진짜 순환을 설계해야 할 시간
그 고리를 잇기 위한 루프빌더의 여정을 따라가다!
저자는 롯데케미칼에서 국내 플라스틱 선순환 프로젝트 ‘프로젝트 루프’를 기획·운영하며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실험과 모델을 직접 설계하고 실행했다. 현재는 자원순환·ESG·순환경제 분야의 강의와 컨설팅을 이어가며 자원순환의 작동을 현장에서 돕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플라스틱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그 단점을 구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PART 1 ‘플라스틱의 두 얼굴과 순환경제’에서는 플라스틱의 두 얼굴을 마주하며 순환경제의 기본 개념을 다진다. 20세기에 ‘기적의 물질’로 불렸던 플라스틱은 이제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현대인은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기 힘들다. 그래서 플라스틱 사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이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실에서 플라스틱 문제의 세 주체인 정부, 기업, 시민이 직면한 다층적인 딜레마를 살펴보고 ‘왜 순환경제인가’에 대한 철학적·개념적 기초를 공부한다.
PART 2 ‘순환경제를 설계하다’에서는 시야를 넓혀 유럽과 한국의 정책적 여정을 비교하며 거대한 흐름을 읽는다. 2023년 5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수도꼭지를 잠그다: 세계는 어떻게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고 순환경제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여 플라스틱을 덜 버리고 순환시키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이를 위해 빠르게 고도화되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술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기술이 활용될 수 있도록 순환경제의 구조를 수립하고 일상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도 2020년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24년부터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시행하는 등 변화의 발걸음을 내디뎠으나 선도적인 순환경제 국가가 되기까지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PART 3 ‘현장에서 답을 찾다: 루프빌더의 기록’에서는 저자가 진행한 ‘프로젝트 루프’의 생생한 기록을 살펴본다. 저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수거된 폐페트병을 활용해 순환고리의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향이 국내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으로 실을 뽑아 가방과 신발 같은 섬유제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는 당시 국내에서 성공 사례가 거의 없던 도전이었다.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최대한 타협하지 않고 폐페트병으로 재생원료를 만들었고, 그 결과물로 제작된 친환경 운동화가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선물에 포함되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 후로도 ‘라이브 드로잉’으로 유명한 김정기 작가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파우치,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와 함께 만든 스카프, 프로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친환경 유니폼 등 다양한 협업이 이어졌다.
PART 4 ‘지속 가능한 순환을 위한 현장의 목소리’에서는 고장 난 장난감을 수리해서 되살리는 코끼리공장, 더 나은 폐기물 배출 및 선별 방식을 고민하는 자연상점, 데이터로 자원순환을 보여주는 플랫폼인 프로젝트알이, 버려지는 디지털기기와 부품을 재사용하는 리맨 등 현장의 혁신가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들은 필요한 기술과 사람은 이미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낸다. 순환고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고 설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현장에서 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PART 5 ‘소비자의 역할: 우리가 만드는 순환의 시작’에서는 지속 가능한 순환을 위한 우리의 역할을 함께 고민해 본다. OECD의 2022년 보고서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 2060년까지의 정책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9년 3억 5,300만 톤에서 2060년 10억 1,400만 톤으로 세 배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런 때일수록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 소비자의 선택이 개입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소비자를 넘어 시민으로서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완성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숙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 플라스틱 재활용은 실패해 왔는가?
폐기물을 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도 기업도 시민도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플라스틱 재활용이 실패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수거와 선별, 재활용과 유통, 소비와 정책 등에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자가 한꺼번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각자 입장을 내세우는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플라스틱 순환은 마치 거대한 조별 과제와도 같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지구’라는 이름의 한 조가 되어 서로 다른 역할과 이해관계를 안고 같이 과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누군가 빠지거나 협력이 깨지는 순간 과제는 완성될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결론을 내리기보다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우리의 삶(Life)은 무엇을 소비하며 무엇을 남기는가? 둘째, 기업과 기관(Organization)은 플라스틱 순환에서 어떤 책임과 혁신을 만들어 낼 것인가? 셋째, 우리는 플라스틱 위기 속에서 어떤 순환의 기회(Opportunity)를 창조할 것인가? 넷째, 플라스틱으로 상처받은 지구(Planet)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치유되며 살아갈 것인가? 네 질문의 머리글자를 이으면 '고리'를 뜻하는 LOOP가 된다. 저자가 스스로를 루프빌더라 부르는 이유이자, 결론 대신 던진 네 개의 질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순환고리를 이루는 셈이다. 이 질문들을 저마다 가슴에 새기고 대답을 고민하며 작은 실천의 흐름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플라스틱 시대'라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마법 같은 기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 혁신과 제도 설계, 기업의 결단과 현장의 실천이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순환은 현실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순환경제는 시장에만 맡겨두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넘어, 사용 비율에 따른 세제 지원과 인증, 공공 조달 우대, 설비 전환 지원 같은 인센티브가 함께 제공되어야 하고,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이 잘되도록 만드는 인프라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요컨대 정부의 일은 시민에게 실천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재생원료를 쓸 수밖에 없는 '시장'을 설계하는 것이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것을 실제 변화로 바꾸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재생원료 사용은 비용이 아니라 브랜드 전략이자 ESG 경영, 소비자 신뢰를 함께 끌어올리는 투자가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자원순환 의무가 빠르게 확대되는 지금, 먼저 움직이는 기업에게 순환은 규제가 아니라 기회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를 처음 굴리는 힘이 시민의 선택이라는 사실은 앞서 본 그대로다. 독자들이 정책의 자리에서, 실무의 자리에서, 일상의 자리에서 저마다 새로운 자원순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데 이 책이 자극제이자 동기부여의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