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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사회 상세페이지

서열 사회

데이터 경제는 어떻게 우리를 줄 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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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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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0원
출간 정보
  • 2026.08.21 전자책 출간
  • 2026.08.12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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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29.5만 자
  • 21.6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88962627275
UCI
-
서열 사회

작품 정보

편리함과 기쁨을 좇아 남긴 데이터는
어떻게 우리를 분류하고 줄 세우는 힘이 되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수면 점수가 기다린다. 내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경로를 골라주는 출근길, 우리 각자의 위치는 교통 흐름 데이터가 되어 서로의 경로를 바꾼다. 점심 식당은 별점 4.5 이상에서 고르는 게 마땅하다. 배달이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리뷰 요청의 알림이 뜨고, 손가락놀림 몇 번으로 라이더와 식당에 별점을 매긴다. 중고거래 앱의 매너 온도를 관리하고, 신용점수를 올려주는 카드 실적을 확인하고, 밤에는 알고리즘이 골라준 영상을 보다 잠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하루 종일 점수를 매기고, 또 점수 매겨진다. 버클리와 듀크의 두 저명한 사회학자가 함께 쓴 『서열 사회』는 이 지극히 평범한 하루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사회 변동, 즉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새로운 계층화의 질서를 해부한다.
이상한 일이다. 무엇 하나 강요당한 적이 없다. 회원가입도, 리뷰 작성도, 위치 정보 제공 동의도 모두 내가 눌렀다. 무료라서, 편리해서, 재미있어서였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별점 낮은 식당을 의심하고, 팔로워 수로 사람의 영향력을 가늠하고, 게임 티어와 학점과 신용점수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산다. 편리함의 대가로 지불한 것은 단지 개인정보가 아니었다. 우리 삶의 점점 더 많은 국면이 “즉시 인증되고, 기록되고, 분류되고, 일종의 척도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 상태, 그것이 우리가 실시간으로 치르고 있는 진짜 값이다.
『서열 사회』의 두 저자는 이 변화를 놓고 기술 기업을 악마화하지도, 사용자를 어리석은 피해자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기쁨’이다. 스마트폰 지도 위에서 반짝이는 내 위치를 처음 보았을 때의 경이, ‘좋아요’가 쌓일 때의 만족감, 걸음 수 목표를 채웠을 때의 뿌듯함. 비판적인 학자들은 흔히 “당신이 도심을 가로지르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은 미세하게 감시당하고 끊임없이 비정규직화되는 노동력을 바탕으로 구축됐다”라고 경고하지만, 저자들은 “사회 이론가들은 기쁨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라고 꼬집는다. 사람들이 정말로 사랑해서 쓰는 기술이, 바로 그 사랑을 동력 삼아 우리를 분류하고 줄 세우는 인프라가 되는 과정. 그 정교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화면이 전과 같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순위와 평점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에게,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처음으로 삼인칭 시점에서 내려다보게 해주는 지도가 될 책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흐름이 현대 사회의 구조를 재편하기까지
‘서열 사회’가 구성되는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적 논증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쩌다 "측정을 지향하고, 측정에 의해 정당화되고, 측정을 통해 통치되는" 사회에 살게 되었는가. 저자들은 이 질문에 아홉 개의 장을 층층이 쌓아 올린 하나의 논증으로 답한다. 월드와이드웹(WWW) 중흥기의 열광을 계곡열(Valley Fever)에 빗대어 표현한 서론 ‘실리콘밸리 열병’은 그 출발점을 뜻밖의 장소, 1960년대 반문화의 고향 캘리포니아로 잡는다.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며 태어난 웹은 국가도 위계도 없는 ‘개척지’를 꿈꿨지만, 스스로 서버를 일구는 자급자족의 삶 대신 사람들은 거듭 편리한 서비스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쌓이는 동안 웹은 누구나 서로를 평가하고 순위 매기는 자기 감시 네트워크, ‘소프트 시티’로 변모했다. 요컨대 서열 사회는 강요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했던 편리함의 그림자로 도착했다는 것, 이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첫 번째 전제다.
1장과 2장은 이 사회의 토대, 곧 데이터가 쌓이는 메커니즘을 양쪽에서 해부한다. 1장 ‘기쁨의 상자’가 개인의 측면에서 답한다면, 2장 ‘데이터 지상명령’은 조직의 측면에서 답한다. 개인은 왜 데이터를 내어 주는가? 빼앗겨서가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무료 서비스라는 ‘선물’은 마르셀 모스가 밝힌 선물의 힘 그대로 보답의 의무를 낳고, 우리는 그 답례로 클릭과 ‘좋아요’와 관계망을 내어놓는다. 그렇게 인간의 사회성 전체가 측정 가능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사회적 기층’이 된다. 그렇다면 조직은 왜 그 데이터를 그러모으는가? 쓸모를 알아서가 아니다. 언젠가는 가치가 있으리라는 믿음 아래 일단 "모으라(Thou Shalt Gather)"라는 명령이 기업과 국가의 제2의 천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데이터 지상명령’이라 칭한 이 강박이 17세기 통계학에서 머신러닝까지 이어지는 계보 위에서 그려진다.
3장 ‘분류 상황’은 이 책의 이론적 심장부이자 논증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쌓인 데이터는 그냥 쌓여 있는 게 아니라 일을 한다. 이름을 붙이고, 순위를 매기고, 짝을 지어주는 일이다. 데이터 기반 분류 체계가 만든 범주 안에서 개인이 놓이는 위치, 곧 ‘분류 상황’은 취업·의료·보험·교육·주택·신용·시민권에 이르는 삶의 기회를 좌우한다. 이는 베버가 말한 ‘계급 상황’처럼 삶의 기회를 좌우하는 새로운 계층화의 기제가 된다. 그리고 그 위치 자체가 자원이 된다. 개인의 디지털 흔적 총체가 압축된 새로운 자본, ‘고유자본’이다. 마르크스의 자본,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을 잇는 이 개념과 함께, 데이터의 문제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넘어, 기회 배분과 불평등의 문제로 확장된다.
4장과 5장은 이 서열화의 논리가 경제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추적한다. 4장 ‘대대적 언번들링’의 열쇠는 돈이 익명성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결제가 데이터 묶음이 되자 기업은 상품에 묶여 있던 경제적 권리를 잘게 쪼개 사람마다 다른 가격, 다른 조건으로 팔 수 있게 됐고, 판매는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고객을 계속 붙들어 두는 관계의 시작이 됐다. 5장 ‘중층적 금융화’는 그렇게 쪼개진 데이터 흐름이 다시 묶여 자산으로 거래되는 다음 단계를 보여준다. 추상화가 층층이 쌓이는 금융의 오랜 논리가 데이터 기술과 만나면서, 주식과 암호화폐를 넘어 개인의 미래 소득과 정체성까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세계가 열린다.
6장과 7장에서 시선은 경제로부터 인간과 정치로 옮겨 간다. 6장 ‘자기주권으로 가는 길’은 디지털 기술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실제로 자유를 확장하면서 그 자유의 책임까지 개인에게 떠넘기는 역설을 그린다. 오늘날 개인은 기존의 권위에 덜 의존해 지식을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삶의 경로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을 얻었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을 표현할 자유는 그 자신임을 증명해야 하는 ‘인증되는 노출’과 결합하고, 지식에 직접 접근하는 능력은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 판단해야 하는 ‘검색 기질’이 되며, 자신을 자유롭게 구성한다는 이상은 세분화된 범주들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정해야 하는 ‘자기조직’의 과제로 이어진다. 자기주권은 그러므로 해방을 가장한 예속도, 허울뿐인 자유도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개인의 행위능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 자유를 인증·검색·자기분류의 책임으로 되돌려 개인에게 떠맡기는 디지털 시대의 양가적 이상이다.
7장 ‘서열적 시민권’은 이 양가적인 자기주권의 이상이 시민권과 사회적 포용의 원리로 확장될 때 어떤 정치적 질서를 만들어 내는지 추적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근대 시민권의 이상이 개인별 점수의 체제에 의해 잠식되고 재편될 때, 차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다. 출신이나 집단적 정체성이 아니라 각자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개인을 평가하겠다는 약속은, 기존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 모든 사람을 고유한 개인으로 공정하게 대우하려는 열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평등과 자격, 사회적 가치를 개인별 데이터로 정밀하게 측정하려 할수록, 시민이 누릴 권리와 기회는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입증한 행동과 점수에 따라 달리 배분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구조가 만든 격차는 개인의 기록 속에 다시 나타나고, 서로 다른 결과는 각자가 응당 받아야 할 몫으로 해석된다. 점수는 결과를 각자의 ‘응분의 몫’으로 도덕화하여, 불평등에 그 어느 때보다 그럴듯한 정당성을 입힌다. 서열적 시민권은 평등을 단순히 폐기하는 질서가 아니다. 오히려 평등과 공정, 포용의 이상을 개인화된 측정으로 실현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새로운 위계와 배제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양가적 형식이다.
결론 ‘참을 수 없는 서열화의 올바름’은 이 모든 논의를 하나의 역설로 종합한다. 점수와 순위는 두 개의 진실을 동시에 갖는다. 내 눈높이에서 그것은 유용하고 심지어 즐겁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바로 그 유용함과 즐거움이 조직에는 통제력을, 기업에는 이윤을 공급하는 연료다. 그리고 누구도 한쪽 진실만 골라 살 수 없다. 대학 평가 순위를 경멸하면서도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로스쿨들처럼, 우리는 순위라는 덫에 빠졌다기보다 순위에 얽혀들었다. 순위에 기대면서 순위를 미워하는 이 ‘이중 운동’ 속에서 연대의 감정과 제도는 조금씩 깎여 나간다. 저자들의 진단대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선별되지 않은 뉴스 피드, 평가가 되지 않은 택시 기사를 바라지 않는" 이상, 이 질서는 되돌릴 수 없다. 다만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서열은 누구의 기준으로 매겨지며, 그 도구로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서열 사회에서의 삶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그 물음을 시작하라는 경고다.


하이에크를 비틀고 쿤데라를 변주하는 사회학
─ 이토록 유쾌한 정전은 오랜만이다

『서열 사회』는 결코 논리적이기만 하거나 딱딱한 책이 아니다. 저자들의 문장은 사회이론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유려하고 장난기가 넘친다. 6장 제목 ‘자기주권으로 가는 길(The Road to Selfdom)’은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자기조직 인간’은 윌리엄 화이트의 고전 『조직 인간』을 비틀었고, 점수 낮은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룸펜스코레타리아’에는 마르크스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정보를 유출하는 자는 결국 유출당하는 자가 된다"라는 경구에는 『자본』의 "수탈자가 수탈당한다"가 겹쳐 있다. 그러나 이들의 글쓰기 방식은 결코 단순한 지식 자랑도 말장난도 아니다. 원전의 논리를 빌려 와 정확히 뒤집거나 연장하는 것, 즉 제목 한 줄에 논증 하나를 통째로 압축하는 것이 저자들의 방식이다. 하이에크가 국가의 계획이 예속으로 가는 길이라고 경고했다면, 저자들은 그 책 제목의 한 글자를 바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며 도착한 ‘자기주권’이야말로, 평생 자신을 인증하고 검색하고 점수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예속의 길이 아닌가.
이 방식이 가장 빛나는 자리 중 하나가 결론의 제목, ‘참을 수 없는 서열화의 올바름’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연상시키는 이 제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무엇이 무엇으로 바뀌었는가다. ‘가벼움’의 자리에 들어온 말은 ‘올바름’이다. 쿤데라의 역설이 가장 가벼운 것이 우리를 가장 무겁게 짓누른다는 데 있었다면, 저자들의 역설은 가장 올바른 것이 이 시대 우리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다. 서열 사회의 점수와 순위는 조작된 낙인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실제로 한 행동, 내가 남긴 기록 위에 세워져 있고, 그래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방식이기는 해도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올바르다’". 우리는 그 올바름을 알기에 순위에 기대어 식당을 고르고 사람을 판단하며, 남을 평가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그 시선이 나를 향할 때에만 참을 수 없어질 뿐이다. 저자들이 ‘서열화의 이중 운동’이라 부르는 이 긴장, 곧 게임 안에 있고 싶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서고 싶은 욕망이야말로 서열 사회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 부당한 질서라면 맞서 싸우면 되지만, ‘올바른’ 질서 앞에서 우리는 항의할 언어부터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책 전체가 도달하는 이 결론이 제목 여섯 글자의 뒤틀림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셈이다.
베버, 모스, 부르디외, 들뢰즈, 보르헤스, 심지어 동화 작가 존 메이스필드까지 종횡무진 오가는 인용들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제 몫의 일을 한다.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라는 아서 클라크의 법칙은 그대로 인용되는 대신 뒤집힌다. AI는 우리를 마법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신탁 앞에서 의례를 되풀이하는 처지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엄밀함과 품격을 겸비했다. 지적 성취와 독서의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책"(캐런 레비, 코넬대학교 교수)이라는 상찬처럼, 이 책은 사상사의 유산을 빌려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유산에 21세기의 독자적인 의미를 새겨 넣는다. 묵직한 이론서를 읽으며 페이지마다 웃고 밑줄 긋는 경험은 흔치 않다.


판옵티콘, 『감시와 처벌』, 『감시 자본주의 시대』…
‘감시’의 사상사 250년, 그 계보의 다음 자리에 놓일 책
감시 사회 논의를 ‘분류와 매칭’의 문제로 확장하다

1791년 제러미 벤담은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수감자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원형 감옥, 판옵티콘을 설계했다. 1975년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 설계도를 근대 사회 전체의 은유로 확장했다. 감옥, 학교, 공장, 병원에 스며든 시선은 마침내 개인의 내면에 감시탑을 세우고, 사람들은 보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를 감시하는 규율적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9년 쇼샤나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 시선이 자본의 손에 넘어갔음을 고발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우리의 행동이 남긴 잉여 데이터를 채굴해 미래 행동을 예측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축적 체제를 세웠다는 것이다.
『서열 사회』는 감시가 수집한 정보가 분류·순위·매칭의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핵심 질문은 누가 나를 보고 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시선이 나를 어떤 범주에 넣고, 누구와 연결하며, 어떤 기회와 조건을 배분하느냐는 것이다. 수집된 시선이 최종적으로 하는 일은 이름 붙이기와 순위 매기기, 곧 분류와 서열화다. 저자들은 일찍이 오스카 갠디가 ‘판옵틱 분류(panoptic sort)’라 지칭했던 이 ‘규율적 감시 시스템’이 이제 신용점수, 위험 등급, 추천 알고리즘, 매칭 시스템의 형태로 전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푸코의 규율 사회가 사람을 ‘주조’했다면, 서열 사회는 질 들뢰즈가 예견한 대로 코드와 점수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조절’한다. 감시탑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남기는 디지털 흔적이 곧 감시탑이고, 그 흔적으로 매겨진 서열이 곧 감옥의 등급이기 때문이다. 감시 사회 논의가 “누가 나를 보는가”를 물었다면, 이 책은 그다음 질문을 던진다. “나를 본 그들은, 나를 몇 번째 줄에 세우는가.”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감시 사회의 논의를 분류와 서열화의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사회 이론의 새 국면을 열어젖힌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물’한 것이다
스스로 감시와 서열의 제단에 오르는 현대인의 역설

데이터 경제에 대한 기존 비판은 대체로 ‘약탈’의 서사였다. 기업이 우리의 정보를 훔치고, 수탈하고, 인클로저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이 서사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매일 아침 제 발로 그 약탈의 현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가? 저자들의 진단은 신랄하다. “데이터의 포획을 강도질이라고 한다면, 길거리에서 총구를 겨누는 노상강도라기보다는 파티에서 당하는 소매치기에 가깝다.” 우리는 끌려간 것이 아니라 초대받았고, 흔쾌히, 때로는 열렬히 파티에 참여했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저자들이 소환하는 것이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선물 이론이다. 모스가 『증여론』에서 밝혔듯, 선물은 자발적이고 무상인 듯 보이지만 받는 이에게 보답의 도덕적 의무를 지운다. 선물은 “사회라는 직물을 꿰매어 잇는” 원초적 힘이다. 디지털 자본주의는 바로 이 힘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었다. 무료 검색, 무료 이메일, 무료 소셜 미디어라는 ‘선물’을 받은 우리는, 그 답례로 개인 데이터와 사회관계망 정보를 내어놓는다. 저자들이 ‘모스식 거래(Maussian bargain)’라 부르는 이 교환의 교묘함은, 답례물이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나의 클릭, 나의 ‘좋아요’, 나의 친구 목록은 플랫폼에 가입하는 순간 비로소 물질성을 얻는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으로 선물과 교환의 시장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측정과 감시와 서열 짓기의 대상으로 만들어 바친다. 원치 않는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명절 선물세트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하물며 그 선물이 이토록 편리하고 즐겁다면. 강탈의 서사로는 결코 보이지 않던 디지털 자본주의의 진짜 작동 원리가, 100년 전 선물 이론의 렌즈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21세기의 새로운 자본, ‘고유자본’이 온다
흩어진 디지털 흔적은 어떻게 새로운 자본이 되는가

마르크스는 공장과 화폐의 시대에 ‘자본’이라는 개념으로 계급의 형성과 재생산을 설명했다. 한 세기 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이 반드시 돈의 형태만 취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좋은 취향, 세련된 매너, 명문대 졸업장, 즉 ‘문화자본’은 몸에 배고(체화), 소유물로 드러나고(객관화), 학위로 공인되며(제도화), 경제적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개인의 자질로 둔갑시킨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의 자본은 무엇인가.
푸르카드와 힐리의 대답이 이 책의 이론적 절정을 이루는 ‘고유자본(eigencapital)’ 개념이다. 개인이 디지털 경제에서 맺어온 상호작용의 총체, 곧 나의 모든 검색과 결제와 이동과 관계가 하나의 정보 벡터로 압축되어 “사회적 위치를 특징짓는” 새로운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검색·결제·이동·관계 등 개인이 남긴 이질적인 디지털 흔적들은 아직 하나의 완전한 점수로 통합되어 있지 않고, 현재까지는 주로 ‘가능태(potentiality)’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서 이 흔적들은 개인의 위치를 특징짓고 기회와 대우를 좌우하는 자원으로 작동한다. 저자들은 이 잠재적 자본 형식을 ‘고유자본’이라 부른다. 고유자본 역시 문화자본처럼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 좋은 점수의 소유자는 자신의 데이터 분신 안에 자연스럽게 깃들어 살고(체화), 자녀의 신용 기록을 일찍부터 관리해 주는 부모처럼 ‘좋은 데이터’를 의식적으로 생산하며(객관화), 신용점수와 각종 통합 점수로 공인받는다(제도화). 그 결과는 낯설고도 익숙하다. 높은 고유자본은 과거 귀족만이 누리던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은총”, 곧 어디서나 통하는 신용과 세심한 응대를 수량화된 형태로 부활시킨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산업 자본주의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에 빗댄 저자들의 신조어 ‘룸펜스코레타리아(lumpenscoretariat)’, 점수가 낮거나 아예 측정되지 않아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있다. 마르크스에서 부르디외로, 부르디외에서 푸르카드와 힐리로. 자본 개념의 계보를 잇는 이 책은, 불평등 연구의 언어가 21세기에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등급과 서열의 나라에서, 이 책이 도착해야 할 자리
사회성을 포획하는 데이터 경제는 어떻게 새로운 서열을 만드는가

“푸르카드와 힐리는 머지않아 다수에게 견디기 어려운 사회가 될지도 모를 ‘서열 사회’에서 사회성이 어떻게 포획되고 수익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이자 파리경제학교 교수인 토마 피케티는 『서열 사회』를 이렇게 평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이 시사하는 중요한 지점 가운데 하나는 디지털 자본주의가 우리의 돈이나 노동뿐 아니라 ‘사회성’,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 자체를 경제적 자원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친구를 맺고, ‘좋아요’를 누르고, 리뷰를 남기고, 위치를 공유하는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은 끊임없이 데이터로 포착되고 새로운 가치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푸르카드와 힐리의 분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단순히 광고와 수익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개인을 분류하고 평가하고 매칭하는 재료가 된다. 사회성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가치가 되며, 그 가치가 다시 사람의 위치를 정하는 순환 속에서 ‘서열 사회’가 만들어진다. 저자들이 말하듯 서열 사회는 디지털 흔적이라는 기층 위에서 사회성을 유출하고, 다양한 점수화·분류·매칭을 통해 개인들을 끊임없이 서로 다른 위치에 놓는다.
‘서열’이라는 말이 이토록 실감 나게 읽히는 독자들이 또 있을까. 수능 등급과 대학 서열, 기업 순위와 아파트 브랜드의 위계 속에서 살아온 한국 사회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예민한 서열 감각을 지닌 사회다. 그리고 지금 그 익숙한 위계 위로 또 하나의 서열 체계가 겹겹이 쌓이고 있다. 배달 앱의 별점과 라이더 등급, 중고거래 플랫폼의 매너 온도, 금융 앱이 매일 알려주는 신용점수, 게임 티어와 SNS 팔로워 수까지. 일상의 수많은 활동이 수치와 등급으로 바뀐다. 그러나 디지털 서열의 특징은 단순히 순위의 종류가 더 많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이 새로운 서열들이 옛 서열과 달리 ‘공정’과 ‘객관’의 얼굴을 하고 온다는 점이다. 내 행동의 기록으로 매겨진 점수이니 불평할 수 없지 않으냐고, 시스템은 속삭인다.
『서열 사회』는 바로 그 ‘올바름’을 의심하게 만든다. 행동 데이터로 매긴 점수가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 격차를 그대로 흡수해 “응분의 몫”으로 세탁하는지, 측정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나는지, 그리고 “형식적 평등을 고집하는 태도”가 어떻게 “실질적 평등을 위한 투쟁을 가려버리는지”를 저자들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채용 AI의 공정성, 플랫폼 노동자의 평가와 계정 정지, 추천 알고리즘과 여론 형성, 생성형 AI 시대의 데이터 문제까지,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여러 쟁점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이론적 언어를 제공한다. 어느새 이 나라에서 능력주의 담론은 “공정하게 매겨진 서열은 정의롭다”라는 믿음과 한 몸이 되었다. 공정한 경쟁과 객관적인 평가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회일수록 이 책의 질문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노골적으로 부당한 서열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개인의 선택에 충실해 보여 반박하기 어려운 서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들의 마지막 문장, “서열 사회에서의 삶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한국 독자에게 특별한 무게로 다가온다.

작가

마리옹 푸르카드Marion Four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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