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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부흥론 상세페이지

균형잡힌 부흥론

조나단 에드워즈 클래식 03

  • 관심 0
소장
전자책 정가
14,400원
판매가
14,400원
출간 정보
  • 2025.05.31 전자책 출간
  • 2005.07.10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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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26.4만 자
  • 25.7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94295877
ECN
-
균형잡힌 부흥론

작품 정보

[책 소개]
교회사 최초이자 최고의 부흥신학

뉴잉글랜드 부흥이 진행되어 가면서 특히 부흥에 대해 양 극단으로 치우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한쪽 극단에서는 뉴잉글랜드에 임한 부흥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다른 극단에서는 부흥 체험을 너무 광신적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이미 1734~1735년에 자신이 섬기던 교회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의 부흥을 경험한바 있었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붓을 들어 부흥에 대한 양극단적인 입장의 잘못을 지적하며, 부흥에 대해 바르고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에드워즈의 부흥신학이다. 에드워즈의 이 책은 부흥신학의 원조로서 부흥신학에 대한 최고의 고전적인 동시에 최고의 명저라 불러도 손색없다.



균형 잡힌 부흥론(Some Thoughts Concerning the Revival, 1743)
교회사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부흥신학

백금산 목사

* 이 책이 발간된 역사적 배경

미국 제1차 대각성 운동이라 불리는 놀라운 부흥은 영국인 휫필드의 두 번째 미국 방문 기간(1739.10〜1741.1) 중에 임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740년 2월 12일에 휫필드에게 편지 보내어, 뉴잉글랜드 지방에 올 때, 노샘프턴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휫필드는 1740년 10월 7일부터 노샘프턴에 4일간 머물게 된다. 이 때 노샘프턴은 은혜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다. 1741년 4월에는 20여 개 지역으로 부흥이 확산되었고, 여름에는 더 넓은 지역으로 부흥이 확산되었으며, 1741년 8〜9월에 부흥은 최고봉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741년 9월, 에드워즈가 예일대 개학식에서 ‘영분별’에 대한 설교를 했을 때, 이미 부흥에 대한 극단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에 대한 에드워즈의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인해 사람들은 부흥에 대해 어중간한 중립 지대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1741년, ‘영분별’을 책으로 발간한 이후 1742년에 에드워즈의 부흥론에 대한 이 대작이 나오기까지 부흥에 대한 양 극단적 입장이 점점 분명하게 대두되었다. 한 편으로는 직접 계시를 주장하면서 부흥의 감정적 현상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 광신주의자들이 있었고, 또 한 편으로는 부흥전체를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부흥반대주의자들이 있었다. 따라서 에드워즈의 『균형잡힌 부흥론』은 이러한 부흥에 대한 잘못된 양 극단적인 두 전선의 싸움 가운데 형성되었다. 에드워즈는 이 양 극단적인 입장을 모두 반박하고 뉴잉글랜드의 부흥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부흥을 지속하기 위한 책임과 노력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의 『균형잡힌 부흥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나오게 된 부흥에 대한 양 극단적인 입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광신주의

먼저 광신주의는 1741년 하반기에 등장해서 1742년에 본격적으로 기세를 떨쳤다. 이들은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감정적인 충동을 성령의 인도와 동일시했다. 목회자들은 이런 광신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급기야 뉴잉글랜드 교회들은 분열되었다. 광신주의는 교회를 분리한 것만 아니라 자기들의 집회에서 평신도 설교자를 임의로 임명하여, 교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부흥의 열기를 식게 만들고 부흥반대주의자들로 하여금 부흥 전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범한 잘못된 오류 세 가지

첫째,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후 판단을 하지 않고 사전 판단을 하는 오류를 범했다. 즉 이들은 부흥을 결과가 아니라 부흥이 시작된 방법이나 부흥에 사용된 도구나 수단으로 판단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흥에 있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시며,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기도 하신다.
둘째,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경 대신 다른 것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먼저 이들은 성경 대신 철학으로 판단하면서 영혼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잘못된 철학, 즉 감정과 의지를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경향 때문에 감정이 충만한 상태는 무조건 부정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일시적인 격정과 구별되는 신앙 감정은 참된 신앙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감정은 본질적으로 의지와 구분될 수 없고, 신앙은 주로 거룩한 감정들로 구성되며, 의지와 감정의 고양은 결국 감정의 고양임을 주장했다. 천국에 있는 자들은 거룩한 감정으로 충만한 자들이며, 지상의 가장 뛰어난 성도들도 감정이 풍부한 자들임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거룩한 감정은 고양될수록 더욱 좋은 것이며, 거룩한 감정이 클수록 신앙이 더욱 좋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강렬한 신앙 감정은 성령의 강한 역사로 인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충분히 그리고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몸의 특별한 현상 때문에 부흥을 반대한다. 그러나 성경은 몸의 의학 책이 아니라 영혼의 의학 책이다. 오히려 성경은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몸에 이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 성경 대신에 역사 혹 이전 경험으로 판단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이라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계시는 점점 진전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대신 자기 경험으로 판단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 죄에 대한 회개,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에 대한 이해, 진리에 대한 확신 등은 구원에 필수적인 체험들이기 때문이다.
셋째,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흥시 발생하는 부정적인 면들로써 부흥 전체를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으로 매도했다. 특별히 부흥을 극단으로 몰고 간 광신주의자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부흥 전체를 잘못된 것으로 몰고 가려 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부흥시 발생하는 극단적인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부흥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즉 부흥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악한 것들 때문에 부흥 전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한두 가지로 사람 전체를 판단하거나 한두 사람의 경우를 보고 전체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흥 때에는 인간의 본성상 커다란 감정적 변화로 인해 일탈적인 행동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회나 교회에 혼란과 소동,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이 뒤섞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인간의 약점으로 말미암아 광신주의, 미신, 무절제한 열심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오류는 바른 지도자가 없을 때는 더욱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결국 부흥시 생기는 오류들은 사람의 연약함과 보편적인 부패 때문이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부흥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은 사람들을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편이기도 하고, 사탄의 공격 때문이기도 한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야 하며, 또한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불태워서는 안 되며,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부흥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첫째, 부흥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부흥 때에 하나님이 높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동참하지 않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부흥 때에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에게는 기초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신다. 교회란 그리스도가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 크게 기뻐하도록 부름받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므로 부흥 때 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손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 뉴잉글랜드 부흥은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둘째, 에드워즈는 뉴잉글랜드에 임한 부흥을 구속사적인 관점,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에드워즈는 뉴잉글랜드 부흥이 종말에 있는 큰 부흥의 출발점이며, 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뉴잉글랜드 부흥을 증진시키는 것이 합당하며 억누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에드워즈는 종말의 영광스러운 부흥이 시작될 것으로 예언된 이사야의 예언이 미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신대륙의 발견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신대륙 발견은 새롭고 영화로운 교회 출현을 위해서다. 구대륙에서 그리스도의 육신적 탄생과 구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신대륙에서 그리스도의 영적 탄생과 구속의 적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으며, 신대륙은 순교의 피를 흘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기에 적합하다. 따라서 신대륙은 구대륙에서 받은 복음을 다시 영광스럽게 구대륙에 전해 줄 가능성이 있으며, 신대륙에서 하나님의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에드워즈가 이렇게 자신이 살고 있던 신대륙에서 복음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기대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통찰력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교회를 새롭게 하실 때는 교회가 처음 개척되는 곳에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가장 마지막으로 세워진 곳에서 하나님이 가장 크게 역사하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도행전에서 시작하여 오늘의 교회 역사에 이르기까지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했던 곳은 언제나 선교의 최전방이었다. 현재도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시는 곳, 성령의 부으심으로 인한 부흥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은 세계 선교의 최전선에 있는 지역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에드워즈의 뉴잉글랜드에 대한 부흥의 시각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에드워즈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에드워즈의 이런 생각은 천년왕국에 대한 후천년적인 관점을 배경으로 한다. 오늘 우리는 에드워즈의 이런 주장에 대해 에드워즈의 후천년설의 문제점을 제기할 수도 있고, 너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 중심주의적 편견에 빠진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에드워즈의 주장을 좀 더 큰 구속사적인 문맥에서 파악하면 그렇게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에드워즈가 말하는 천년왕국을 오늘날의 용어로 세계 선교 혹은 세계 복음화의 완성이라고 바꾸어 보자. 그리고 세계 선교가 완성되기 위해 교회가 영적으로 큰 부흥과 각성을 체험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자. 즉 예수께서 부흥과 세계 선교의 관계에 대해 가르쳐 주신 황금의 공식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교회사와 선교 역사는 우리에게 부흥(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 일어날 때 세계 선교가 확장(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된 것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교회 역사, 선교 역사 면에서 사실 19세기부터 시작된 세계 선교 역사는 18세기 부흥에서 시작된 것이며 미국의 뉴잉글랜드는 이런 18세기 부흥의 시작이기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 부흥을 반대하는 자들은 위험하다

셋째, 에드워즈는 부흥을 반대하는 자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성경이 종말에 큰 성령의 부으심이 있을 것이며, 구속의 가장 큰 추수가 있을 것임을 말하지 않았던가? 특히 종말에 있을 교회의 영광스러운 잔치의 모형인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소낙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며 초막절을 반대하는 자는 영적인 죽음과 멸망을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에드워즈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 일어난 구원을 반대하는 것도 위험한 것인데 신약 시대 교회의 구원을 반대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임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입을 방해했던 아멜렉과 모압과 암몬 족속이 받은 진노, 드보라를 돕지 않았던 메로스 거민, 기드온을 돕지 않았던 숙곳과 브누엘 거민, 다윗이 법궤를 옮길 때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미갈, 이삭이 젖을 뗄 때 비웃었던 이스마엘, 큰 기근이 풍성함으로 바뀔 것이라 예언한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을 믿지 않았던 사마리아 장관, 바벨론 포로 후에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재건에 반대한 자들이 받았던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사례를 제시한다. 즉 이런 구약 역사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저주받고, 찬성하는 자는 복 받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 부흥을 증진시키기 위해 공직자, 목회자, 성도들이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

넷째, 에드워드는 부흥에 대한 바른 태도와 자세는 부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찬성하고 옹호하며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드워즈는 공직자들이 이런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왕에게 가장 큰 존경과 충성을 바칠 사람은 왕국의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날 일차적으로 협조해야 할 사람이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성막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앞장 선 사람들은 바로 족장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부흥을 인정하지 않는 공직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며, 공직자들이 약속된 교회의 영광스러운 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를 공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부흥시 목사들의 임무는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목회자들을 통해 부흥을 증진시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일에 솔선수범한 사람들은 제사장과 레위인이었다. 그러므로 에드워즈는 부흥을 의심하는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해가 되기 때문에 부흥 시기에 목사들은 특별히 처신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사들은 천국 문을 관리하는 자들이며, 부흥의 때는 충성스럽지 못한 목사들을 심판하시는 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목사들은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많이 사용하시는 다른 목사들을 시기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수단과 방법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부흥은 공직자와 목회자만이 힘써야 할 일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힘을 합해야 한다. 광야에서 성막을 세우는 데, 후에 성전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이스라엘 온 백성이 함께 힘을 모으지 않았던가? 부흥의 때에 성도들은 부흥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부흥의 때에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보면서도 부흥을 반대하는 것은 혹시 자기들이 가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데, 성도들이 부흥을 반대하는 방법에는 직접 말로 비판하는 것도 있고, 간접적으로 부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있다. 그러나 부흥의 때에 과오를 지적하기보다는 영광스러운 일을 더욱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부흥의 날에 부흥시 생기는 약점을 지적하는 데 급급하다면 이는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그래서 에드워즈는, 하나님은 지금 뉴잉글랜드의 모든 사람이 부흥을 증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신다고 말한다.

** 이 책에 대한 평가 **

에드워즈의 이 책이 발간되자마자 뉴잉글랜드의 종교적 상황은 더욱 양극화되었다. 1742〜1743년 사이에 코네티컷 동부 지방만 100개의 교회가 광신주의자들 때문에 분리되었다. 또한 1743년 여름, 목사들 사이에 공적으로 분열이 생겼다. 뉴잉글랜드의 400명 가운데 130명이 부흥에 반대하는 강경 노선의 입장에 섰다. 이들이 부흥을 반대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새로운 형태의 설교에 대한 반대였다. 둘째는 체험적 신앙에 대한 반대였다. 셋째는 역사적 칼빈주의에 대한 반대였다. 역사는 에드워즈의 『균형잡힌 부흥론』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치우치기 쉽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우리가 배울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

에드워즈의 『균형잡힌 부흥론』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얼마나 극단으로 치우치기 쉬운 존재인가를 보게 된다. 부흥이라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역사하는 현장에서 우리 인간의 반응은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는 것을 본다. 하나는 우리의 지성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로 하여금 지성주의의 극단으로 치닫도록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지성이 중요하지만 감정과 행동을 무시한 채 지성주의로 치우치는 것은 문제다. 찰스 촌시를 비롯한 부흥반대주의자들의 이론적 기반은 바로 감정에 대한 철저한 지성 우위의 입장이었다. 감정은 이성보다 낮은 것으로 간주하고, 감정을 무시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감정은 중요한 것이다. 참 신앙은 감정을 포함한다. 감정도 우리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변한다면 감정도 변화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또다른 감정주의의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 감정적인 충동을 하나님의 직통 계시로 받아들이게 되면 광신주의의 문을 활짝 열게 된다. 데이번포트를 비롯한 광신주의자들이 빠진 함정은 모두 감정을 이렇게 잘못 이해한 데 있었다. 지성 없는 감정은 이처럼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에드워즈가『균형잡힌 부흥론』에서 제시해 주는 균형감각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교회의 일각에서는 부흥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 있으며, 또 한 편으로는 외적인 현상에만 몰두하는 성령운동에 치우쳐 있다. 이는 모두 현대판 부흥반대주의와 광신주의의 후손들이다.
본문에 나오는 단락 번호와 중간 제목, 소제목 등은 원래 원문에는 없는 것이지만 독자들의 이해와 연구를 위해 필자가 많은 공력을 들여서 붙인 것이다. 이 소제목들은 에드워즈 부흥론 전체의 설계도와 같고 뼈대와 같다. 독자들이 잘 활용한다면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과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요,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지성은 너무나 심오하고 강하여 아직도 해마다 그의 업적에 관한 논평과 저술이 간행되고 있다. 그러나 죠나단 에드워즈는 그러한 사상가 및 철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영어권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고도 영적인 신학자요 대부흥사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해 철저하게 하나님을 알고 찬미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으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도록 각성시키는 일에 전력하였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메사추세츠 노샘프턴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 마침 뉴잉글랜드 전역은 처음의 청교도 정신으로부터 차츰 이완되어 영적으로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신앙회복과 거짓 종교, 즉 이단의 궤멸을 주창하며 영적 대각성 운동을 펼쳐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뜨거운 마음을 인정하시어 역사적 대부흥의 길을 여셨다. 그러나 인간적 안목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그의 일생은 비극으로 끝이 났다. 즉, 노샘프턴 주민들에 의해 그는 사역지에서 쫓겨나야만 했고, 프리스톤 신학교의 총장직을 맡은 지 불과 두 달만에 열병으로 인해 삶을 마감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55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신학적 업적과 대부흥을 주도했던 뜨거운 설교들은 2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 있다.
탁월한 신학적 이해력과 각성에 대한 직접적 체험론으로 인해 저술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두었지만, 그는 부흥신학의 제 일인자로 인정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청교도 신학의 완성자이자 부흥 신학과 현대 복음주의의 아버지로서 미국 교회가 배출한 최고의 신학자이며, 철학자다.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에 비유하고, 루터와 칼빈을 히말라야 산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사람" 이러고 평한바 있다. 『신앙감정론』, 『의지의 자유론』, 『구속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 등 수 많은 저서와 설교로 오늘날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일 대학 출판부에서 에드워즈 결정판 전집 27권을 발간(1957년부터 현재까지 25권 발간됨)함으로써 최근 에드워즈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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