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청진스님이 들려주는 참스승, 히말라야 착한 이웃들의 이야기
『당신을 만난 축복입니다』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26년 동안 수행을 하며 구도의 여정을 이어가는 청전스님의 이야기를 글과 흑백사진으로 수록한 책이다. 저자인 청전스님은 1972년 유신 선포 때 사회에 대한 자각으로 대학을 그만두고 성직자의 길을 택하였고, 신부수업을 받다 송광사로 출가해 참선수행을 했으며, 수행과정 중의 의문을 풀기위해 순례길에 오르다 결국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26년 동안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서 지내 오면서 발견한 진정한 행복은 ‘착한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하며 깨달음(수행)과 사랑(행복)은 하나임을 보여준다.맑은 영혼의 땅, 히말라야 설산을 헤매며 순례자의 길을 걷던 스님은 라다크에 다달았다. 그곳의 절과 마을의 열악한 환경을 알게 된 후 애타게 깨달음을 갈구하던 저자는 산타 스님으로 변해 해마다 주민들에게 전해줄 선물 보따리를 싣고 라다크로 떠났다. 스님의 이러한 행동에 알음알음 도움의 손길이 오갔고, 그 결과 열악한 주민들을 위해 초등학교를 지어주고, 사미승과 아이들을 위한 학용품과 영양식을 챙겨주는 등 곳곳에서 기적을 낳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달라이 라마를 큰스승으로 모시고 있지만, 이십년 넘게 단골로 지내는 인도의 푸줏간 삼형제, 이웃의 티베트 난민들, 라다크 순례 봉사에서 만나는 눈 맑은 노승들까지 자신을 가르친 참스승은 바로 민중이었음을 고백하고 날마다 참스승과 조우하는 히말라야의 삶을 아름답게 풀어내었다.
■ 본문중에
고지를 넘는 것과 같은 힘든 과정이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조차 내가 험고를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고통이 곧 행복의 씨앗이 된다. 그때도 찻집 아저씨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십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한달음에 갈 수 있었을 것인가. 지금도 힘든 여정을 만나면 찻집 아저씨의 말이 저절로 주문처럼 되새겨진다. “니째 도 킬로!”푸줏간 삼형제처럼 사회 밑바닥을 이루는 순박한 민중의 삶과 접할 때마다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진실된 삶의 자리에 뿌리박은 그들의 모습은 가슴속 깊이 잠재해 있던 나의 삶을 바로 비추고 들여다보게 한다. 이처럼 그분들을 통해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니, 나의 종교는 민중일 수밖에 없다. 진실하며 위선이 없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민초들의 삶이야말로 세상의 스승인 것이다.일행 중 한 사람이 내가 길 떠날 때 늘 챙겨가는 손톱깎이로 시종 수줍게 웃는 노인장의 손톱을 곱게 깎아드렸다. 그리고 손톱깎이를 선물로 드린다고 하니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이럴 때 내 인생길은 행복으로 충만해진다. 하찮은 손톱깎이 하나로 이런 기쁨을 맛보다니.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을 때마다 딱 하나 남은 아랫니 치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초라한 삶임에도 그날그날 매상엔 관심이 없는 듯 편한 모습이다.티베트 스님이나 라다크에서 노스님들이 오시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양고기 요리를 해서 대접한다. 우리의 고추장과 된장으로 양념을 하면 양고기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없어져 먹기가 한결 낫다. 한번은 라다크에서 노스님들이 찾아오셔서 함께 양고기 요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내 방의 불단에 모셔둔 부처님까지 내려와 “너희만 묵냐. 나랑 함께 먹자”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국의 여러 지인들에게 써 보내서 한바탕 웃었던 적도 있다. 결국 내가 신부님께 전수해준 법이라는 게 양고기 조리법이었다. 스님이 되어가지고, 그것도 고기 요리법이라니! 게다가 전수해준 분이 신부님이라니!반가운 스님들, 일 년에 한 번 찾아가는 나에겐 이분들이 불보살의 화현으로 다가온다. 내가 인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라다크를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도살이 이십육 년에 라다크는 진즉 내 영혼의 땅이 되어버렸다. 한 달여 라다크 일주를 마치고 다람살라에 돌아가면 늘 파김치가 된다. 그때마다 더는 못 갈 곳이라 해놓고선 몇 달이 지나면 슬슬 그쪽 곰빠와 스님들이 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인다. 그러면 다시 온갖 약품을 챙기며 내년 여름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느 날이나 저녁엔 쉽게 잠에 빠졌는데 이 밤은 생각이 깊어진다. 내일 들어가는 링세 곰빠의 체링 도르제 스님 때문이다. 작년 여름이니 꼭 일 년 전에 신장 결석이 탈이 되어 끝내 이승을 마쳤다. 칠십 전이라 더욱 애잔한 마음이다. 이 길을 다섯 번이나 함께 걸었었다. 만약 작년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마땅히 그 스님이 말을 끌고 나왔을 것이다. 2007년에는 함께 한국 나들이도 했는데, 내가 이 길을 오갈 때 함께 한 인연 덕분이다. 늘 언젠가는 함께 티베트에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아, 인생은 무상하지요. 체링 스님, 스님은 지금 어디에서, 또 어떤 존재자로 머무시는가요?”나야 먹는 거라면 어떤 험한 먹을거리라도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이 문제다. 일부러 지 교수한테 “저 밥 먹을 수 있겠소” 물으니, 선뜻 손으로 집어먹으며 “스님, 이건 완전 기내식인데요!” 한다. 아무리 궁한 처지라도 말이 먹을 밥을 기내식이라고 하다니. 결국은 모든 사람이 이 밥을 데워 함께 먹기로 했다. 챙겨온 밑반찬으로 장아찌가 조금 남아 있어 가능할 듯했다. 말 세 마리에게 먹일 아침 끼니를 우리가 축내는 꼴이 된 것이다.무엇보다도 최고의 관심거리는 손목시계다. 한국에서 쓰지 않는 헌 시계를 모아 새 약을 갈아 끼워 이런 외딴 절의 스님들께 드린다. 해마다 이삼백 개의 헌 시계를 날라 쓴다. 꼭 나이순으로 당신들 마음에 드는 시계를 고르시도록 하기에 누구나 좋아한다. 한국 곳곳의 주지 스님들의 배려로 인도 땅까지 날아온 이 헌 시계는 받아쓰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선물이자 재산이기도 하다. 더러 어떤 신도 분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아라비아 숫자가 크게 박혀 있는 중국제 손목시계를 전해주시기도 한다. 이런 시계만큼은 가장 연로하신 스님들께 공양 올린다. 시계를 차보고는 그리도 좋아하시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