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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상세페이지

앎과 삶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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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0원
출간 정보
  • 2026.03.03 전자책 출간
  • 2026.02.05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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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15.3만 자
  • 14.3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72133894
UCI
-
앎과 삶 사이에서

작품 정보

■ 책 소개
정규직 교수를 사직하고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며 삶에 기반한 앎을 지향해온 저자 조형근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신문 등에 발표했거나 개인 소셜미디어에 기록한 글 가운데 ‘지금 여기’에서 다시 새기고 돌아보면 좋을 내용을 선별해 묶었다. 12.3 계엄과 타국의 내전, 참사와 재난, 산재 사망사고와 같은 거대한 사건부터 집과 이웃, 마을, 동료를 둘러싼 저자의 사적인 일화들까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겪은 정치‧사회적 국면과 두루 공감할 만한 삶의 장면들이 그 배경이다.
차별과 불평등 문제, 기득권 정치에 대한 비판, 중산층의 욕망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거악을 지목하고 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법을 지키면서 자기 이해를 추구할 뿐”인 소박하고 무해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앎과 삶의 긴장을 의식하지 않으려 할 때 소리 없이 악화하는 것에 주목한다. ‘86세대’로서 한때 ‘독재’와 ‘자본’에 맞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었으나, 이제는 집값 상승에 안도하는 범속한 중산층이 되었음을 토로하는 저자의 솔직하고 치밀한 성찰의 태도에 기반해 쓰였다.


■ 책 속에서

구조적 부정의란 어떤 것일까? 힘센 개인이나 기업의 불법과 악행, 그들과 결탁한 국가권력의 정책 탓에 발생하는 명백한 부정의와는 별도로, 법을 지키면서 자기 이해를 추구할 뿐인 수많은 개인들의 행위와 제도가 상호 작용한 결과로 발생하는 불의가 바로 구조적 부정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좋은 사례다. 투기꾼과 기업의 탐욕과 불법, 건설 자본을 보호하는 정권의 이해관계만으로는 미친 부동산 시장을 설명할 수 없다. 이 광풍은 좀 더 넓은 집, 학군 좋은 곳에서 살고 싶고 자산 부자도 되고 싶은 수백, 수천만 명 개인들의 평범한 욕망이 선분양이나 전세 같은 한국 특유의 제도와 뒤섞이며 빚어내는 비극이기도 한 것이다.

성숙한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고통 중 상당수는 구조적 부정의라는 틀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기후 위기, 성별, 지역, 인종 사이의 차별, 불평등 같은 문제도 그렇다. 기후를 망치겠다거나 사람을 차별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악인이 흔할까? 지방이 못 살기를 바라는 서울 사람이 있을까? 그저 편리한 것이 좋고, 친숙한 사람들과 일하고 교류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이 모여 풀기 어려운 부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장모님은 며칠 전 우리 동네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새로 온 50대 후반의 중국 동포 간병인은 싹싹한 데다 머리도 잘 감겨주고 힘이 좋아서 화장실에서 부축도 잘해준단다. ‘힘들어요’를 입에 달고 살던 이전 간병인보다 한결 낫다며 장모님도 좋아하신다. 병원을 옮기며 간병비 지급을 위해 주민번호를 확인하니 60대 초반이라던 그 간병인은 일흔일곱, 장모님과 동갑이었다. 간병 받을 나이에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제 나이를 밝히면 일을 못 얻을까 두려웠으리라.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힘들다던 하소연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여기가 대한민국이다. 가장 약한 자가 떠받치는.

세계은행의 2003년 정책보고서 <성장과 빈곤 감소를 위한 토지 정책>에 그 성과가 분명히 밝혀져 있다. 1960년 시점에 토지 분배가 평등한 나라일수록 1960년에서 2000년까지의 장기 경제 성장률이 높았다. 경제 성장률 최상위에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이 있는데, 모두 과감한 농지 개혁으로 토지 분배가 가장 평등하게 이뤄졌던 나라들이다. 중국의 경우는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 실시된 또 한 번의 농지 개혁이 성장률에 반영됐다. 평등의 힘으로 일어선 나라들이다. 반면 최하위에는 농지 개혁에 실패한 중남미 나라들이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짚고 가자. 이 논리에 따르면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더 나쁜 당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잘못해도 심판받으면 안 된다. 아니, 자신들의 과오로 정권 상실의 위기가 커질수록 더 열렬히 지지받아야 한다. 최악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되니까. 이번 대선이 바로 그 전형이다. 잘못할수록 지지할 이유가 더 커지는 정당이니 민주당은 참 복도 많다. 이 논리는 완전히 똑같이 국민의힘 쪽에도 적용된다. 이래서 두 당은 겉으로는 죽도록 증오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서로 간절하게 의존하는 사이다.

한국의 정치는 극우 정당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정당 민주당이 왜곡된 제도를 통해 정치를 과점한 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최악의 극우를 피해, 그보다는 좀 덜 나쁜 강경 보수가 노동자와 힘없는 약자들에게 베푸는 약간의 호의를 기대하자는 것. 이것이 소위 민주화 이후 30년이 훨씬 지나도록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의 주문이다.

사회대개혁의 열망이 추운 광장을 메웠다. 농민도, 불안정 노동자도, 청년 여성도,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이주민도, 당신과 우리도 좀 더 나은 삶을 외쳤다. 그 목소리에 힘입어 선거가 이뤄지자, 정치는 광장에 없던 기득권자들 몫을 챙겨주는 데 몰두하고 있다. 압도적 승리를 위해 우경화해야 한단다.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명박 정권이 안정적이었던가? 한때 지지율이 90퍼센트에 이르던 김영삼 정권의 말로는 어땠나? 사람의 삶이 사라지면 지지율은 신기루일 뿐이다.

신도시의 유가 계급이 된 후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웃에 임대 단지, 행복주택 따위나 들어온다며 불평하는 게시물들을 볼 때면 절망하게 된다. 벌써 올챙이 적 잊었느냐며 꾸짖는 댓글들도 있어서 희망을 얻는다. 그중 나 자신의 이기적 변화가 제일 흥미롭다. 집값에 관심이 생기고, 개발 소문에 귀가 팔랑거린다. 내 내면의 눅눅한 저 아래에 집값에 대한 욕망이, 강인한 이기심이 있다.

그날 사당동에서 나와 금선 할머니 가족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을 것 같다. 그 후로는 많이 멀어졌다. 나는 외곽이라고는 해도 수도권에 아파트를 가진 자산 계급이 됐다. 할머니 가족은 여전히 그 영구 임대 주택에 산다. 참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은 잡목 덤불처럼, 서로 연결된 불행들의 연쇄같이 뒤엉켰다. 작은 충격을 세상이 완충해주지 못하니 조금만 삐끗해도 불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영구 임대 주택만으로 가난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사실 이들은 평생 권리라곤 가져본 적 없이 없다. 조직화는커녕 아파트단지 임차인 대표 회의조차 임의단체일 뿐이다. 분양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 회의가 법적 기구인 것과 대조된다. 중산층 민주주의의 소란 속에 이들의 목소리는 없다. 몫 없는 자들이 몫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왜 쫓아냈냐고, 왜 돌아오지 않았냐고 이들이 물어올 때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두렵게 들어야 한다.

중산층인 채로 양심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건 좋은 일이다. 양심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평등한 세상이 집 밖에 있다. 착한 사람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렇게 모진 것은 아닐 것이다. ‘불편한 말, 위험한 정치가 필요한데 집이 너무 편안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밖에서는 억수같이 계속 비가 내렸다.

맞다, 이런 비판은 그동안 충분히 많았고 이제는 식상하다. 불편한 건 따로 있다. 지금도 불현듯 떠오르는, 그 인명
록을 열심히 뒤적이던 내 모습 말이다. 문제 많은 기획이군, 제법 의식 있는 체하면서 나는 그 인명록을 끝까지 들췄던 것이다. 잘나가는 지인이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었으리라. 그게 뭐 대수일까? 그냥 인지상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지상정일지언정 그것이 현실적인 욕망이 될 수 있는 자와 그저 몽상인 자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바로 이런 것이 구조적 불평등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이제는 586세대, 또는 그냥 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정부와 의회, 지자체의 고위 공직에 가득하다. 기업과 시민사회의 높은 자리에도 넘쳐난다. 개각 소식이나 기업 인사 소식에 혹여 아는 이름이라도 나올까 내 귀는 쫑긋거린다. 흔들어댈 꼬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_250쪽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나라가 쪼개졌었다. 사안의 불법성 여부는 애초에 내 관심이 아니었다. 전부 합법이라고 해도 나는 이상했다. 그 정도 집안에서 자식 스펙 만들고 금융 투자도 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항변들 앞에서 내 마음이 쪼개졌다. 이 집요한 계급 불평등 재생산을 부모의 인지상정이라고 항변하는 왕년의 민중주의자들 앞에서 내 마음이 아득해졌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거냐는 성난 부라림에 내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산업재해로 떠나간 노동자 유가족들을 내보낸 다음 유예 조항으로 얼룩진 중대재해처벌법을 처리한 여당에 대해, 그만하면 애썼다는 변호들이 들려서 내 마음이 까마득해졌다. “학삐리들…” 하며 끌려가던 그 여성 노동자의 눈빛이 내내 어른거렸다.
두 번째 구속 때 조사받던 시경 대공분실 밀실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여기가 욕조 있던 자리야. 종철이 때문에 없앴어” 하면서 형사는 물을 틀었다. 그때부터 나는 줄줄 불었다. 이번 주에 그이의 기일이 돌아온다. 사는 게 부끄러워서 몇 년 전부터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올해도 그럴 것 같아 마음이 더 춥다.

그의 진중한 성찰을 읽다가 얼마 전 처와 노후 대책을 의논하면서 주택연금을 받으면 그리 힘들지는 않겠다며 안도
한 일이 떠올랐다. 마흔 중반까지도 자가는 꿈꾸지 못했는데 어쩌다 삶이 변했다. 서울 전셋값 폭등에 쫓겨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를 할인 분양받아 이사 온 게 십여 년 전이다. 시간이 가도 아파트는 분양가 회복을 못 했다. 그사이 우리는 이웃살이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웃 생활의 중심지에 땅을 샀다. 땅은 빚으로 샀지만, 건축비는 무대책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아파트값이 치솟았다. 심지어 이곳 경기도 외곽까지 집값이 올랐다. 그 덕에 집 팔아 작은 집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그 폭등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이 멍들었던가? 성찰의 글을 읽다 보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졌다.

지금은 내란 막기에 힘을 모아야 하니 ‘탄핵 이후의 세상’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들 한다. 주로 더불어민주당 주변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래 놓고 자기들은 탄핵 이후의 세상을 거침없이 그리고 있다. 내란을 막자면서 왜 부자가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지 모르겠다. 윤석열은 나쁘지만, 세상의 고통이 모두 그의 탓은 아니다. 어떤 슬픔들은 당신들에게서 나온다.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우리의 응원을 받으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활동에서조차 잡일은 곧잘 간과되곤 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어느 진보 정당 당원의 글이다. “피케팅 하는 것보다 여러 피켓을 지고 나르고 다시 보관하는 일이 80프로”를 차지한다. 차가 없으니 새벽에 나와야 하고, 피켓 탓에 지옥철에서 욕도 듣는다. 운동의 대부분은 이런 시간이며, 아래로부터의 진보운동은 이런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잡일이 노선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잡일의 가치를 높이지 않는 진보는 허구다.

마트와 새벽배송, 배달 앱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어떤 거리낌이 느껴진다면 거기에 윤리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 윤리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 없이는 세상을 바꾼다는 꿈조차 꿀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먹으면 병 걸리고 죽는 게 아니라면 없는 사람들이 부정 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윤리적 감각일 것이다. 그 감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아이들이 16시간 일하는 세상에서 ‘선택의 자유’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조형근
대학을 사직하고 파주 교하의 동네에서 이웃과 살고 있는 동네 사회학자. 동네 협동조합 책방의 조합원이 유일한 직함이다. 불평등과 민주주의, 동네와 세상 사이의 관계, 제국과 식민지의 역사가 남긴 상처 등 여러 주제를 오가며 글을 쓰고 강연한다. 나는 바뀌지 않은 채 세상만 바꾸자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대로 살지 못한다. 《한겨레》에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쓴 책으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우리 안의 친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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