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머리말 ㅣ
인간은 이성적 동물인가 아니면 감정적 동물인가?
인간행동에 대한 두 가지 기본적 가정을 두고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논쟁을 벌여왔다. 소비자행동 연구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소비자행동 연구는 경제학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었다.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들이 합리적 판단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한다. 즉, 각 대안의 기대효용치를 계산해 가장 효용이 큰 대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효용극대화 이론과 기대효용이론을 제안하면서 이 이론이 가정하는 대로 소비자들이 행동하면 합리적이고, 이를 위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소비자는 비합리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소비자는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소비자는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듯이 효용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고 이러한 정보를 완벽하게 처리할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는 합리적인 계산이나 추론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지만, 종종 감정이나 직감에 의존해 행동하기도 한다.
일단의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실제행동이 주류경제학에서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중심에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가 있었다. 그들이 1979년에 발표한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은 인간의 판단과 선택행동이 주류경제학에서 제안하는 기대효용이론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2002년 카네만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고 15년이 지난 2017년 시카고 대학의 행동경제학자 세일러(Thaler) 교수가 다시 노벨경제학상을 받음으로써 행동경제학은 여러 학문분야와 실무계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행동경제학은 실제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행동의 결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간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경제학에 접목시켜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다. 행동경제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만나는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사실은 주류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성적·합리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휴리스틱(heuristic)한 방식에 의존해 편향(bias)된 판단을 하거나 감성적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동경제학이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이론으로 등장함에 따라 소비자행동 연구자들도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해 소비자의 판단과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행동경제학 기반의 소비자행동 연구는 연구의 역사가 비교적 짧고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행동경제학의 주요 이론과 개념들, 그리고 소비자행동 분야에서 이를 적용한 대표적인 연구들을 정리·소개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책을 집필하였다.
본서는 먼저 1장과 2장에서 의사결정의 출발점인 문제인식, 고려상표군의 형성과정과 고려상표군이 대안선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인간의 확률판단 및 발생가능성 예측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형태의 휴리스틱(이용가능성 휴리스틱, 대표성 휴리스틱, 닻 내림과 조정, 감정 휴리스틱)에 대해 설명하였고, 4장에서는 개인의 목표추구성향과 합리화 욕구가 소비자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절초점이론과 이유에 근거한 선택이론을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5장에서는 행동경제학 태동의 모태가 된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에 대한 설명과 이로 인해 나타나는 다양한 소비자 반응들을 심적 회계, 보유효과, 매몰비용효과, 프레이밍효과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6장과 7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호 및 행동 변화가 언제(시기추론이론, 과거 회상평가, 피크앤드효과), 어떤 상황(평가모드, 최종제안게임, 공공재 게임)에서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았다.
본 저서는 대학원에서 행동경제학적 접근의 소비자행동과 정책에 관한 연구논문을 준비하는 여러 전공영역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이나 행동경제학 이론과 개념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실무분야를 포함한 여러 영역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저술되었다. 그동안 본서를 이용한 독자들과 교수님들로부터 행동경제학적 접근의 소비자행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본서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피드백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이번 제2판에서는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주요개념들이 실무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고 소비자행동을 설명·예측하는 데 유용한지를 보여주는 최근 사례들을 많이 추가했다. 특히 1장과 2장의 내용을 보완했다. 1장 문제인식에서는 소비자 욕구의 주요유형을 소개하고 이들의 소비자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전략적 시사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2장 고려상표군 결정에서는 부분목록 단서제공에 대한 설명을 보완하고 이의 전략적 시사점에 대해 다루었다. 나아가 본문 중의 미흡한 설명이나 전달력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문장들을 수정·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따라 독자들이 보다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본서를 읽어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행동경제학의 주요이론과 개념들이 소비자의 판단과 선택을 설명·예측하는 데 어떻게 적용되고 이의 마케팅전략적 시사점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본서가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9년 11월
안광호·곽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