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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연주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예술/문화

음악과 연주

음악과 글 12 | 창조와 재창조에 대하여
소장종이책 정가20,000
전자책 정가25%15,000
판매가15,000

음악과 연주작품 소개

<음악과 연주> 음악사에서 “연주에 온 영혼을 바치되
감정에 도취해 관찰하는 정신과 방향을 잡는 의지를
절대로 마비시키지 말라”
_ 브루노 발터

1. 대가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음악적 유산
온화하고 진취적인 연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쓴 《음악과 연주 _ 창조와 재창조에 대하여》가 출간되었다. 1959년,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경험과 깊은 통찰을 담은 이 책은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음악인(음악도)과 음악 애호가들에게 ‘음악의 본질’과 ‘연주의 의미’에 대한 커다란 울림을 줄 것이다.
이 책은 원래 발터의 자서전《주제와 변주Thema und Variationen》의 마지막 장으로 기획했던 것이다. 자서전에서 빠진 ‘사색’의 글에 노년에 이르러 더욱 깊어진 대가의 지혜를 함께 담은 이 책을 가리켜 발터는 자신의 “음악적 유산”이라고 불렀다.
17세에 처음 지휘를 시작한 후 구스타프 말러의 부지휘자를 거쳐 60년 이상 지휘 무대에서 활동한 발터는 푸르트벵글러, 토스카니니, 클렘페러, 클라이버와 함께 ‘빅5’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지 않는, 민주적이며 인간적인 새로운 지휘자 상을 확립해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다. ‘음악의 해석자’이자 ‘감성적 사색자’이며 ‘고전적 낭만주의’의 후예로, 조화와 화해, 융화와 창조를 향해 정진했던 브루노 발터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2. 이 책의 주요 내용
첫째, 음악에 대한 발터의 철학이 드러나 있다. 발터에 따르면 “ ‘모든 예술의 본질은 질서’다. 음악 연주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란 “우주의 원초적인 내적 울림이 인간에게 창조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훌륭한 음악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창작자의 재능과 능력, 영감과 의도, 뛰어난 인격에 의해 최고가 되는가 하면, 무능하고 열등한 인격에 의해 가치가 떨어지기도 한다.
둘째, 재창조하는 연주와 연주자에 대해 말한다. 이상적인 연주자는 작곡가의 본질에 긴밀히 연결되어 작곡가가 느꼈을 영감, 열정, 비애감 등을 함께 느끼며(감정이입) ‘수용’하고 자신의 개성으로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존재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연주자는 올바른 연주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속도’ ‘리듬’ ‘명확성’ ‘표현’ 4가지 측면을 갈고 닦아야 한다며, 베토벤, 슈만, 베버 등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연주법을 상세히 제시한다.
셋째, 지휘자나 지휘자가 되려는 음악도들에게 말한다. 발터는 이 장에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젊은 동료 지휘자들과 이 직업에 헌신하려는 음악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지휘자의 기술적 과제와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발터는 지휘자에게 필요한 요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휘자는 거의 암보할 정도로 총보를 철저히 공부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웬만큼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오케스트라의 화성적 울림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실내악에서 피아노 파트를 맡아 함께하는 음악을 느끼고, 성악 반주를 통해 주선율의 반주 역할을 경험하기를 권한다.
이어 본격적으로 지휘의 길에 들어선 지휘자들에게 정확성, 감성, 표현의 상관 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 특히 오페라 지휘자에게는 연극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그리고 음악 진행과 연기의 시간적 차이와 효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발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지휘자의 ‘인격’과 ‘지성’이다. 지휘자의 인간적인 됨됨이와 소양은 공연의 예술적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성격을 스스로 다스려 좋은 인품을 갖추지 않거나, 정신적 소양을 다스리고 훈련하지 않고, 지적인 관심사에 몰두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음악 공부를 했더라도 원하는 목표에도 이르지 못한다. 요컨대 ‘그저 음악가이기만 한 사람’은 어중간한 음악가밖에 되지 않는다.”

“지휘자의 과제는 예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과제다. 인간과 교류할 줄 모르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지휘자라는 직업 적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넷째, 자신의 삶과 당대 예술을 회고하고 전망했다. 유대계 출신으로 나치의 폭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브루노 발터는 2차 세계대전 등 20세기에 드리워진 불안과 음울함, 급격한 문명 발전과 예술사조의 변화를 바라보는 심정을 이 글에 담았다. 그는 음악을 비롯 예술 분야에서 ‘현대적인 것’ ‘새로운 것’ ‘이질적인 것’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과몰입하는 현상을 목도하며 거기에서 ‘인격과 영혼을 앙양’하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발견할 수 없다는 심정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대의 전망을 내비친다. “오늘날 뮤즈가 힘을 잃었어도, 차가운 영혼의 가을이 개화와 결실을 잠시 멈추게 했어도, 지금 세대의 재능과 노력이 근본적으로 물질과 기술 쪽에 가 있어도, 지구의 기후처럼 우리 시대의 정신의 기후가 위협적으로 변했어도, 내 확신은 말해준다. 저 샘에서 흘러나오는 정신과 도덕의 힘을 다시 동원하면 인류의 창조성은 질병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고.”

3. 두 개의 부록 : 바흐와 <마태 수난곡>, 모차르트와 <마술피리>
바흐와 모차르트의 작품을 음악적 철학적으로 자세히 분석한 이 두 글은 원래 본문 안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책의 성격을 더 잘 살리기 위해 한국어판에서는 후반부에 부록 형태로 실었다. 이 작품들의 공연이나 감상을 앞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관행에 따라 부분 삭제 연주하곤 했던 것이 마음 아팠던 발터는 한참 후에야 무삭제 판본으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극작가로서 음악가로서의 바흐의 혼이 담긴 <마태 수난곡>을 지휘자의 시각에서 음악적으로 깊이 있게 설명한다.
두 번째 부록인 <마술피리>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 이면에 담긴 철학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대본 작가인 에마누엘 시카네더가 당초 기획했던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모차르트의 개입과 영향으로 상당 부분 달라졌다. 모차르트와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해 발터는 이렇게 언급한다. “상당히 수다스러웠고 고백하기 좋아하는 모차르트였지만 평소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다 <마술피리>에 이르러 비로소 자라스트로와 타미노를 빌려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여기서 모차르트만의 정신적 유언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4. 연주자와 음악 애호가들을 위하여
최근 실력 있는 젊은 연주가들에 의해 소위 ‘K 클래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연주의 수준과 관객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연주자는 끊임없이 연주 실력을 연마하고, 감상자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휘어잡을 무대와 음반을 찾아다닌다. 연주자도 애호가도 자문한다. ‘훌륭한 연주란 무엇이며, 대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해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브루노 발터는 이 책 첫머리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 속에서 살고, 음악을 없어서는 안 될 영혼의 양식으로 여기는 사람은 누구나 나의 독자”라며,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글’ 시리즈
‘음악의 글’은 음악 전문 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로, 음악을 좀 더 깊이 읽고 폭넓게 이해하는 통찰이 담긴 글들을 한데 모읍니다.
제1권은 최초의 근대적 음악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과 음악가 _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제2권은 리트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평생 헌신했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리트, 독일예술가곡 _ 시와 하나 된 음악》, 제3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 ‘미국 음악의 목소리’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_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제4권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정신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 크로슈 씨를 통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_ 프랑스 음악의 한 정신》, 제5권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 한스 큉의 《음악과 종교 _ 모차르트–바그너–브루크너》, 제6권은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담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_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제7권은 작곡가, 지휘자, 저명한 음악 교육자였던 이모겐 홀스트가 집필한 음악 교육서의 고전 《음악의 ABC _ 입문자를 위한 음악 기초 문법》, 제8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휘자 푸르트벵글러가 격변의 시대에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음과 말 _ 에세이와 강연록》, 제9권은 음악과 음악가의 위대성에 대해 논하는 아인슈타인의 《음악에서의 위대 _ 위대한 음악가는 누구인가》입니다. 제10권은 시인 오든이 “역사상 최고의 음악평론가”라 칭송했던 버나드 쇼의 《쇼, 음악을 말하다 _ 거장 극작가의 음악 평론》, 제11권은 세기말과 세기초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긴 《사색과 기억 _ 예술과 인생에 대하여》입니다.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 사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들려주는 예술과 인생!








“청중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 하지만 어중간한 영혼은 없다. 다시 말해 청중은 재깍 흡수되지도 않고 굉장하게 압도하지도 않는 예술에는 이해심과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_ R.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의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의 부친이 연주하는 호른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지며 뷜로의 리허설 현장에 있어 보고 싶어진다.” _ ‘옮긴이의 말’에서
근대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

“빰- 빰- 빰~ 쿵쾅 쿵쾅 쿵쾅” 찬란한 금관에 이어 장엄한 타악이 뒤따른다. 달 너머 지구가, 태양이 떠오른다. 곧이어 초기 인류가 등장하여 도구를 집어 든다. 역사의 시작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첫 장면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명장면에서 되풀이하여 흐르는 음악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니체의 주제를 따라 작곡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의 들머리이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는 교향곡, 교향시, 오페라, 실내악, 가곡 등 서양 고전음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걸작을 남긴 거장이다. 뮌헨의 자랑이었던 명 호른 연주자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여섯 살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작곡하여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놀랍게도 음악 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뮌헨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예술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했다.
이 책은 슈트라우스가 남긴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로, 그의 예술관과 인생 이야기뿐만 아니라 출판을 고려하지 않은 사적인 기록과 회고, 서신 등도 포함되었다. 독일 교양 시민이자 문화행정가로서, 오페라 지휘자로서 슈트라우스의 면모와 사유가 이 글들에서 드러난다.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의 다시없는 천재성이 세상에 남겨준 유산을 감사히 가꾸고자 했고 문학과 음악 교육의 양과 질을 높일 것을 끊임없이 역설했다. 또한 예술가의 생계 보장과 예술의 수준 유지, 선구적으로 저작권 문제까지 발 벗고 나섰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시민들에게 가능한 한 수준 높은 예술을 제공하기 위한 제안들을 살피다 보면 당시와 오늘날의 문화계 형편이 그리 다른 것 같지 않아 씁쓸한 웃음이 난다. 확신으로 가득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한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재능이 주어졌을까 하고 그의 음악과 예술을 향한 깊은 사유와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 특히 자신의 음악 인생에 큰 역할을 한 부친과 스승 한스 폰 뷜로에 대한 회고가 풍부하게 등장한다(슈만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고 바그너와 브람스의 주요 작품들을 초연했으며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혼인했으나 바그너에게 아내를 넘겨야 했던 바로 그 뷜로!). 두 사람은 당대 음악에 대해 서로 반대 입장이었지만 연주자와 지휘자로서, 슈트라우스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여러 일화를 남겼다. 글 속에 드러나는 두 사람의 신경전은 유쾌하다.

내가 방에 다시 들어섰을 때, 다른 쪽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깊이 감동하여 뷜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셨다. 그거였다. 뷜로가 기다렸던 것. 성난 사자처럼 그는 아버지에게 퍼부어댔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저한테 감사하실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왕년에 여기서, 여기 이 망할 놈의 뮌헨에서, 당신이 제게 저지른 일을 저는 하나도 잊지 않았다고요. 제가 오늘 한 일은, 당신 아들이 재능이 있어서 한 거지, 당신을 위해서 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대기실을 떠났다. _ 226쪽

브람스가 등장하여 젊은 후배에게 충고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이어 나는 내 f단조 교향곡을 지휘했다. 청중 중에는 무려 요하네스 브람스가 와 있었고, 나는 내 교향곡에 대한 그의 판단을 듣기를 한껏 열망하고 있었다. 그는 말수 없는 특유의 태도로 “썩 좋아요”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명심해둘 만한 교훈을 덧붙였다. “젊은이, 슈베르트의 춤곡들을 정확히 잘 보시고 8마디짜리 단순한 선율들을 고안하려 해보세요.” 이후 나는 거부감 없이 대중적 선율도 내 작업 안에 정말로 수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 요하네스 브람스 덕분이다(오늘날 지고하신 비평가들이 지닌 학교 지식은 그런 선율을 참으로 하찮게 평가하겠지만, 그런 선율은 정작 몹시 드물게 그리고 운이 좋아야만 떠오른다). 위대한 마이스터가 한 또 하나의 일침인 “당신의 교향곡에는 테마의 유희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순전히 리듬상으로만 대비되는 많은 테마를 하나의 같은 화성 위에 이렇게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당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리듬적으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화성적으로 바짝 강도 높게 대비되는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주제가 시적 필연성을 통해 일시적으로 합쳐질 수 있을 때라야만, 대위법은 타당하다는 것을. _ 231-232쪽

평생을 독일 음악에 헌신하며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치적 통찰력이 부족하여 나치 정권하에서 제국음악원장직에 오르거나 뮌헨 문화 인사들의 안티 토마스 만 캠페인에 서명하는 등 돌이키기 어려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2차 대전 종전 직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가 열두 살 손자에게 보낸 생일 축하 편지에는 이런 씁쓸한 회한이 담겨 있다.

너도 네 지난 생일을 기억할 때는, 항상 야만을 혐오하면서 같이 기억했으면 한다. 그 야만의 만행이 우리 아름다운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구나.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너는 네 형과 마찬가지로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네가 30년 후에 이 애처로운 글을 다시 손에 쥔다면, 70년 가까이 독일의 문화, 조국의 영예와 명성을 위해 노력한 네 할아버지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_ 315-316쪽 ‘옮긴이의 말’ 중


세계를 담아 낸 음악

슈트라우스는 새로운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노력한 음악가로 85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바그너를 특히 존경했던 그는 바그너의 악극과 관현악법을 이어받았으며 교향시와 오페라, 200곡 이상의 가곡을 창작했다. 그는 음악 인생 전반부에는 화려한 교향시에, 후반부에는 웅장한 오페라에 집중했다. 교향시와 오페라의 소재는 철학과 사상, 전설 등으로 다양했고,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던 그는 철학적, 문학적 관심과 사유의 결과를 음악 속에 녹여냈다.

문헌학자들은 음악가가 아니며, 음악가들은 철학적으로, 음악적으로 교양이 너무 부족한 상태다. 그렇지 않다면 쓸데없는 음악을, 멋모르는 오페라를 그토록 많이 쓰지는, 심지어 무대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_ 116쪽

악극이라는 목표를 가진 바그너, 그가 말에서 태어난 운문 선율을 음 예술적 판타지가 거둔 최고의 수확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된다. (중략) 선율들은 바로 우리의 고전 대가들의 상상에서 솟아난 것이다. 이 선율들은 인간 영혼의 계시를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이들 선율이 실루엣의 아름다움과 선율 진행의 정갈함, 심오한 감정 내용 면에서 보여주는 형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_ 116쪽

갑자기 떠오른 선율이 천공에서 곧장 내려와 불현듯 나를 엄습한다. 외부에서 감각적 자극이나 영혼의 동요가 없는데 떠오른다(영혼의 동요도 선율이 떠오르는 데 아주 개연성 높은 직접적 계기가 된다. 이는 전혀 딴판인 비예술적 성격의 흥분 상황에서 직접 자주 경험한 바다). _ 197쪽


지휘란 청중을 위한 것

한스 폰 뷜로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할 정도로 슈트라우스의 지휘와 작품 해석 능력 역시 탁월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다채로운 음향을 추구했지만 지휘자로서는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게 곡을 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손동작과 얼굴표정을 최소화하고 악보를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젊은 카펠마이스터에게 남기는 글에서 “지휘할 때 땀을 흘리지 말지라, 관객의 가슴이 따뜻해져야 할 뿐”이라고 지휘자들의 과장된 몸동작을 경계했다. 또한 텍스트의 가청성에 전무후무하게 심혈을 기울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 당시에는 오페라를 연주할 때 가사가 또렷이 들리지 않는 상황을 어느 정도 감수하는 분위기였지만, 슈트라우스는 청중에게 가사가 정확히 들리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그의 입장에 많은 후배 음악인들이 공감했고, 이후 독일 성악 연주 수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대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청중들을 기쁘게 하려고 연주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_ 52쪽

지휘를 할 때 손목 관절만 까딱 움직여 사인 지시를 짧으면 짧게 할수록 실행이 더 정확하다. 이게 지휘 테크닉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같이 지휘하는 팔(일종의 지렛대 동작인데, 이 동작의 끝을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경우는 없다)은 오케스트라에 마비와 혼란을 가져온다. _ 62쪽

가수가 각별히 기억해둘 게 있다. 제대로 조음한 자음만이 어떤 오케스트라든 (우악스럽기 그지없는 오케스트라까지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중략) 나는 특히 바그너의 악극에서, 가령 보탄이 들려주는 이야기나 〈지크프리트〉의 에르다 장면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성량은 크고 딕션은 안 좋은 가수는 오케스트라의 파도 속에 무력하게 침몰하는 반면, 성량은 크지 않아도 자음을 선명하게 발음하는 예술가들은 확실하게 프레이징하면서 오케스트라 교향악의 음향 홍수에 맞서 힘 안 들이고 대사를 관철해냈다. _ 179쪽



출판사 서평

음악사에서 “연주에 온 영혼을 바치되
감정에 도취해 관찰하는 정신과 방향을 잡는 의지를
절대로 마비시키지 말라”
_ 브루노 발터

1. 대가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음악적 유산
온화하고 진취적인 연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쓴 《음악과 연주 _ 창조와 재창조에 대하여》가 출간되었다. 1959년,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경험과 깊은 통찰을 담은 이 책은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음악인(음악도)과 음악 애호가들에게 ‘음악의 본질’과 ‘연주의 의미’에 대한 커다란 울림을 줄 것이다.
이 책은 원래 발터의 자서전《주제와 변주Thema und Variationen》의 마지막 장으로 기획했던 것이다. 자서전에서 빠진 ‘사색’의 글에 노년에 이르러 더욱 깊어진 대가의 지혜를 함께 담은 이 책을 가리켜 발터는 자신의 “음악적 유산”이라고 불렀다.
17세에 처음 지휘를 시작한 후 구스타프 말러의 부지휘자를 거쳐 60년 이상 지휘 무대에서 활동한 발터는 푸르트벵글러, 토스카니니, 클렘페러, 클라이버와 함께 ‘빅5’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지 않는, 민주적이며 인간적인 새로운 지휘자 상을 확립해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다. ‘음악의 해석자’이자 ‘감성적 사색자’이며 ‘고전적 낭만주의’의 후예로, 조화와 화해, 융화와 창조를 향해 정진했던 브루노 발터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2. 이 책의 주요 내용
첫째, 음악에 대한 발터의 철학이 드러나 있다. 발터에 따르면 “ ‘모든 예술의 본질은 질서’다. 음악 연주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란 “우주의 원초적인 내적 울림이 인간에게 창조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훌륭한 음악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창작자의 재능과 능력, 영감과 의도, 뛰어난 인격에 의해 최고가 되는가 하면, 무능하고 열등한 인격에 의해 가치가 떨어지기도 한다.
둘째, 재창조하는 연주와 연주자에 대해 말한다. 이상적인 연주자는 작곡가의 본질에 긴밀히 연결되어 작곡가가 느꼈을 영감, 열정, 비애감 등을 함께 느끼며(감정이입) ‘수용’하고 자신의 개성으로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존재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연주자는 올바른 연주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속도’ ‘리듬’ ‘명확성’ ‘표현’ 4가지 측면을 갈고 닦아야 한다며, 베토벤, 슈만, 베버 등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연주법을 상세히 제시한다.
셋째, 지휘자나 지휘자가 되려는 음악도들에게 말한다. 발터는 이 장에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젊은 동료 지휘자들과 이 직업에 헌신하려는 음악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지휘자의 기술적 과제와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발터는 지휘자에게 필요한 요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휘자는 거의 암보할 정도로 총보를 철저히 공부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웬만큼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오케스트라의 화성적 울림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실내악에서 피아노 파트를 맡아 함께하는 음악을 느끼고, 성악 반주를 통해 주선율의 반주 역할을 경험하기를 권한다.
이어 본격적으로 지휘의 길에 들어선 지휘자들에게 정확성, 감성, 표현의 상관 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 특히 오페라 지휘자에게는 연극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그리고 음악 진행과 연기의 시간적 차이와 효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발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지휘자의 ‘인격’과 ‘지성’이다. 지휘자의 인간적인 됨됨이와 소양은 공연의 예술적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성격을 스스로 다스려 좋은 인품을 갖추지 않거나, 정신적 소양을 다스리고 훈련하지 않고, 지적인 관심사에 몰두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음악 공부를 했더라도 원하는 목표에도 이르지 못한다. 요컨대 ‘그저 음악가이기만 한 사람’은 어중간한 음악가밖에 되지 않는다.”

“지휘자의 과제는 예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과제다. 인간과 교류할 줄 모르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지휘자라는 직업 적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넷째, 자신의 삶과 당대 예술을 회고하고 전망했다. 유대계 출신으로 나치의 폭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브루노 발터는 2차 세계대전 등 20세기에 드리워진 불안과 음울함, 급격한 문명 발전과 예술사조의 변화를 바라보는 심정을 이 글에 담았다. 그는 음악을 비롯 예술 분야에서 ‘현대적인 것’ ‘새로운 것’ ‘이질적인 것’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과몰입하는 현상을 목도하며 거기에서 ‘인격과 영혼을 앙양’하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발견할 수 없다는 심정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대의 전망을 내비친다. “오늘날 뮤즈가 힘을 잃었어도, 차가운 영혼의 가을이 개화와 결실을 잠시 멈추게 했어도, 지금 세대의 재능과 노력이 근본적으로 물질과 기술 쪽에 가 있어도, 지구의 기후처럼 우리 시대의 정신의 기후가 위협적으로 변했어도, 내 확신은 말해준다. 저 샘에서 흘러나오는 정신과 도덕의 힘을 다시 동원하면 인류의 창조성은 질병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고.”

3. 두 개의 부록 : 바흐와 <마태 수난곡>, 모차르트와 <마술피리>
바흐와 모차르트의 작품을 음악적 철학적으로 자세히 분석한 이 두 글은 원래 본문 안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책의 성격을 더 잘 살리기 위해 한국어판에서는 후반부에 부록 형태로 실었다. 이 작품들의 공연이나 감상을 앞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관행에 따라 부분 삭제 연주하곤 했던 것이 마음 아팠던 발터는 한참 후에야 무삭제 판본으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극작가로서 음악가로서의 바흐의 혼이 담긴 <마태 수난곡>을 지휘자의 시각에서 음악적으로 깊이 있게 설명한다.
두 번째 부록인 <마술피리>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 이면에 담긴 철학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대본 작가인 에마누엘 시카네더가 당초 기획했던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모차르트의 개입과 영향으로 상당 부분 달라졌다. 모차르트와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해 발터는 이렇게 언급한다. “상당히 수다스러웠고 고백하기 좋아하는 모차르트였지만 평소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다 <마술피리>에 이르러 비로소 자라스트로와 타미노를 빌려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여기서 모차르트만의 정신적 유언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4. 연주자와 음악 애호가들을 위하여
최근 실력 있는 젊은 연주가들에 의해 소위 ‘K 클래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연주의 수준과 관객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연주자는 끊임없이 연주 실력을 연마하고, 감상자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휘어잡을 무대와 음반을 찾아다닌다. 연주자도 애호가도 자문한다. ‘훌륭한 연주란 무엇이며, 대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해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브루노 발터는 이 책 첫머리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 속에서 살고, 음악을 없어서는 안 될 영혼의 양식으로 여기는 사람은 누구나 나의 독자”라며,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글’ 시리즈
‘음악의 글’은 음악 전문 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로, 음악을 좀 더 깊이 읽고 폭넓게 이해하는 통찰이 담긴 글들을 한데 모읍니다.
제1권은 최초의 근대적 음악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과 음악가 _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제2권은 리트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평생 헌신했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리트, 독일예술가곡 _ 시와 하나 된 음악》, 제3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 ‘미국 음악의 목소리’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_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제4권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정신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 크로슈 씨를 통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_ 프랑스 음악의 한 정신》, 제5권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 한스 큉의 《음악과 종교 _ 모차르트–바그너–브루크너》, 제6권은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담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_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제7권은 작곡가, 지휘자, 저명한 음악 교육자였던 이모겐 홀스트가 집필한 음악 교육서의 고전 《음악의 ABC _ 입문자를 위한 음악 기초 문법》, 제8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휘자 푸르트벵글러가 격변의 시대에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음과 말 _ 에세이와 강연록》, 제9권은 음악과 음악가의 위대성에 대해 논하는 아인슈타인의 《음악에서의 위대 _ 위대한 음악가는 누구인가》입니다. 제10권은 시인 오든이 “역사상 최고의 음악평론가”라 칭송했던 버나드 쇼의 《쇼, 음악을 말하다 _ 거장 극작가의 음악 평론》, 제11권은 세기말과 세기초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긴 《사색과 기억 _ 예술과 인생에 대하여》입니다.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 사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들려주는 예술과 인생!








“청중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 하지만 어중간한 영혼은 없다. 다시 말해 청중은 재깍 흡수되지도 않고 굉장하게 압도하지도 않는 예술에는 이해심과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_ R.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의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의 부친이 연주하는 호른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지며 뷜로의 리허설 현장에 있어 보고 싶어진다.” _ ‘옮긴이의 말’에서
근대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

“빰- 빰- 빰~ 쿵쾅 쿵쾅 쿵쾅” 찬란한 금관에 이어 장엄한 타악이 뒤따른다. 달 너머 지구가, 태양이 떠오른다. 곧이어 초기 인류가 등장하여 도구를 집어 든다. 역사의 시작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첫 장면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명장면에서 되풀이하여 흐르는 음악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니체의 주제를 따라 작곡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의 들머리이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는 교향곡, 교향시, 오페라, 실내악, 가곡 등 서양 고전음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걸작을 남긴 거장이다. 뮌헨의 자랑이었던 명 호른 연주자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여섯 살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작곡하여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놀랍게도 음악 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뮌헨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예술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했다.
이 책은 슈트라우스가 남긴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로, 그의 예술관과 인생 이야기뿐만 아니라 출판을 고려하지 않은 사적인 기록과 회고, 서신 등도 포함되었다. 독일 교양 시민이자 문화행정가로서, 오페라 지휘자로서 슈트라우스의 면모와 사유가 이 글들에서 드러난다.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의 다시없는 천재성이 세상에 남겨준 유산을 감사히 가꾸고자 했고 문학과 음악 교육의 양과 질을 높일 것을 끊임없이 역설했다. 또한 예술가의 생계 보장과 예술의 수준 유지, 선구적으로 저작권 문제까지 발 벗고 나섰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시민들에게 가능한 한 수준 높은 예술을 제공하기 위한 제안들을 살피다 보면 당시와 오늘날의 문화계 형편이 그리 다른 것 같지 않아 씁쓸한 웃음이 난다. 확신으로 가득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한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재능이 주어졌을까 하고 그의 음악과 예술을 향한 깊은 사유와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 특히 자신의 음악 인생에 큰 역할을 한 부친과 스승 한스 폰 뷜로에 대한 회고가 풍부하게 등장한다(슈만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고 바그너와 브람스의 주요 작품들을 초연했으며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혼인했으나 바그너에게 아내를 넘겨야 했던 바로 그 뷜로!). 두 사람은 당대 음악에 대해 서로 반대 입장이었지만 연주자와 지휘자로서, 슈트라우스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여러 일화를 남겼다. 글 속에 드러나는 두 사람의 신경전은 유쾌하다.

내가 방에 다시 들어섰을 때, 다른 쪽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깊이 감동하여 뷜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셨다. 그거였다. 뷜로가 기다렸던 것. 성난 사자처럼 그는 아버지에게 퍼부어댔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저한테 감사하실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왕년에 여기서, 여기 이 망할 놈의 뮌헨에서, 당신이 제게 저지른 일을 저는 하나도 잊지 않았다고요. 제가 오늘 한 일은, 당신 아들이 재능이 있어서 한 거지, 당신을 위해서 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대기실을 떠났다. _ 226쪽

브람스가 등장하여 젊은 후배에게 충고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이어 나는 내 f단조 교향곡을 지휘했다. 청중 중에는 무려 요하네스 브람스가 와 있었고, 나는 내 교향곡에 대한 그의 판단을 듣기를 한껏 열망하고 있었다. 그는 말수 없는 특유의 태도로 “썩 좋아요”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명심해둘 만한 교훈을 덧붙였다. “젊은이, 슈베르트의 춤곡들을 정확히 잘 보시고 8마디짜리 단순한 선율들을 고안하려 해보세요.” 이후 나는 거부감 없이 대중적 선율도 내 작업 안에 정말로 수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 요하네스 브람스 덕분이다(오늘날 지고하신 비평가들이 지닌 학교 지식은 그런 선율을 참으로 하찮게 평가하겠지만, 그런 선율은 정작 몹시 드물게 그리고 운이 좋아야만 떠오른다). 위대한 마이스터가 한 또 하나의 일침인 “당신의 교향곡에는 테마의 유희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순전히 리듬상으로만 대비되는 많은 테마를 하나의 같은 화성 위에 이렇게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당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리듬적으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화성적으로 바짝 강도 높게 대비되는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주제가 시적 필연성을 통해 일시적으로 합쳐질 수 있을 때라야만, 대위법은 타당하다는 것을. _ 231-232쪽

평생을 독일 음악에 헌신하며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치적 통찰력이 부족하여 나치 정권하에서 제국음악원장직에 오르거나 뮌헨 문화 인사들의 안티 토마스 만 캠페인에 서명하는 등 돌이키기 어려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2차 대전 종전 직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가 열두 살 손자에게 보낸 생일 축하 편지에는 이런 씁쓸한 회한이 담겨 있다.

너도 네 지난 생일을 기억할 때는, 항상 야만을 혐오하면서 같이 기억했으면 한다. 그 야만의 만행이 우리 아름다운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구나.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너는 네 형과 마찬가지로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네가 30년 후에 이 애처로운 글을 다시 손에 쥔다면, 70년 가까이 독일의 문화, 조국의 영예와 명성을 위해 노력한 네 할아버지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_ 315-316쪽 ‘옮긴이의 말’ 중


세계를 담아 낸 음악

슈트라우스는 새로운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노력한 음악가로 85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바그너를 특히 존경했던 그는 바그너의 악극과 관현악법을 이어받았으며 교향시와 오페라, 200곡 이상의 가곡을 창작했다. 그는 음악 인생 전반부에는 화려한 교향시에, 후반부에는 웅장한 오페라에 집중했다. 교향시와 오페라의 소재는 철학과 사상, 전설 등으로 다양했고,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던 그는 철학적, 문학적 관심과 사유의 결과를 음악 속에 녹여냈다.

문헌학자들은 음악가가 아니며, 음악가들은 철학적으로, 음악적으로 교양이 너무 부족한 상태다. 그렇지 않다면 쓸데없는 음악을, 멋모르는 오페라를 그토록 많이 쓰지는, 심지어 무대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_ 116쪽

악극이라는 목표를 가진 바그너, 그가 말에서 태어난 운문 선율을 음 예술적 판타지가 거둔 최고의 수확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된다. (중략) 선율들은 바로 우리의 고전 대가들의 상상에서 솟아난 것이다. 이 선율들은 인간 영혼의 계시를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이들 선율이 실루엣의 아름다움과 선율 진행의 정갈함, 심오한 감정 내용 면에서 보여주는 형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_ 116쪽

갑자기 떠오른 선율이 천공에서 곧장 내려와 불현듯 나를 엄습한다. 외부에서 감각적 자극이나 영혼의 동요가 없는데 떠오른다(영혼의 동요도 선율이 떠오르는 데 아주 개연성 높은 직접적 계기가 된다. 이는 전혀 딴판인 비예술적 성격의 흥분 상황에서 직접 자주 경험한 바다). _ 197쪽


지휘란 청중을 위한 것

한스 폰 뷜로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할 정도로 슈트라우스의 지휘와 작품 해석 능력 역시 탁월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다채로운 음향을 추구했지만 지휘자로서는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게 곡을 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손동작과 얼굴표정을 최소화하고 악보를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젊은 카펠마이스터에게 남기는 글에서 “지휘할 때 땀을 흘리지 말지라, 관객의 가슴이 따뜻해져야 할 뿐”이라고 지휘자들의 과장된 몸동작을 경계했다. 또한 텍스트의 가청성에 전무후무하게 심혈을 기울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 당시에는 오페라를 연주할 때 가사가 또렷이 들리지 않는 상황을 어느 정도 감수하는 분위기였지만, 슈트라우스는 청중에게 가사가 정확히 들리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그의 입장에 많은 후배 음악인들이 공감했고, 이후 독일 성악 연주 수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대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청중들을 기쁘게 하려고 연주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_ 52쪽

지휘를 할 때 손목 관절만 까딱 움직여 사인 지시를 짧으면 짧게 할수록 실행이 더 정확하다. 이게 지휘 테크닉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같이 지휘하는 팔(일종의 지렛대 동작인데, 이 동작의 끝을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경우는 없다)은 오케스트라에 마비와 혼란을 가져온다. _ 62쪽

가수가 각별히 기억해둘 게 있다. 제대로 조음한 자음만이 어떤 오케스트라든 (우악스럽기 그지없는 오케스트라까지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중략) 나는 특히 바그너의 악극에서, 가령 보탄이 들려주는 이야기나 〈지크프리트〉의 에르다 장면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성량은 크고 딕션은 안 좋은 가수는 오케스트라의 파도 속에 무력하게 침몰하는 반면, 성량은 크지 않아도 자음을 선명하게 발음하는 예술가들은 확실하게 프레이징하면서 오케스트라 교향악의 음향 홍수에 맞서 힘 안 들이고 대사를 관철해냈다. _ 179쪽


저자 소개

브루노 발터 (Bruno Walter)


민주적이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새로운 지휘자 상을 확립한 가장 존경받는 20세기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푸르트벵글러, 토스카니니, 클렘퍼러, 클라이버와 함께 ‘빅5’로 불렸다. 1876년 9월 15일 베를린의 중산층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8세에 슈테른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어린 나이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뒤 1893년 9월 1일부터 쾰른에서 지휘자 생활을 시작해 17세에 처음 오페라 공연을 지휘했다. 이후 함부르크(이곳에서 구스타프 말러를 처음 만난다), 브레슬라우, 프레스부르크, 리가, 베를린 왕립 오페라에서 활동했다. 1901년에 말러의 부름을 받고 빈 궁정 오페라에서 함께 작업하며 평생 자이자 친구로 우정을 쌓았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1911), 9번 교향곡(1912) 등 초연을 담당했고, 1912∼1922년까지 뮌헨 왕립오페라에서 총 음악감독으로 재직한 뒤 베를린 시립 오페라, 베를린 필하모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했다. 1936년부터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될 때까지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냈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뉴욕 필하모닉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지휘했으며 종전 후 열렬히 환영받으며 유럽 무대에도 복귀했다. 만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하며 컬럼비아 심포니를 이끌고 명반들을 남겼다. 1962년 2월 17일 베벌리힐스에서 타계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음악
음악의 기원 ┃ 음악의 본질

2장 연주
자아와 타인―음악의 해석에 관하여 ┃ 속도 ┃ 리듬 ┃ 명확성 ┃ 표현

3장 지휘자
일러두는 말 ┃ 과제의 특수성 ┃ 정확성 ┃ 귀와 손 ┃ 내적인 음악성과 외적인 음악성
지휘자의 전문 학업 과정 ┃ 일반 교육 ┃ 무대에서의 지휘 ┃ 콘서트 지휘자
오페라 지휘자

4장 음악과 무대
오페라 ┃ 오페라의 시간적 요소: 오페라 연출의 문제들

5장 회고와 전망

맺는 말
부록 1 바흐와 〈마태 수난곡〉
전체 구조 ┃ 해석의 문제 ┃ 자유 ┃ 꾸밈음
부록 2 모차르트와 〈마술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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