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사랑을 찾아 바람처럼 떠난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의 여정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삶의 태도로서의 여행기에 가깝다
제목은 [서은영의 세상견문록]이지만 이 책은 세상을 여행하며 인상적으로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기록물이 아니다. 일반적인 여행기와 무척이나 다르다. 뭐랄까?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삶의 태도로서의 여행이랄까? 여행자가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해도 혼자 여행 하는 이의 생각과 마음은 항상 자기 내면을 향하기 마련이다. 서은영은 목적 없이 장시간 여행하면서 두려움 없이 그 어둡고 쓸쓸하고 눈물 나는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패션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일리스트로, 심지어 글을 쓰는 작가에 방송인으로까지 활동하면서 그 누구보다 강하고 화려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의 내면은 우리들의 예상과 달리, 조금 황량하고 심지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여행을 통해 돈키호테처럼 일어선다. 휘황찬란한 전쟁터와도 같은 패션계에서 한 발 물러나, 그곳에서 경험하고 성취하고 교제해온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남은 인생에서 정말로 항구적으로 추구할 만한 아름다운 가치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아름다운가?
누가 이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여행이 끝나갈 무렵 서은영은 단도직입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아름다운가? 나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름다움을 위해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가?”라고. 지난날 아름다워지기 위해 피부과에서 갖은 레이저 치료와 보톡스를 맞으며 온갖 노력했던 그녀는 불행하게도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제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멋진 곳에서 밥을 먹어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부터 뭔가 바뀌기 시작했다. 낙하운동을 하던 원자들이 ‘우연히’ 운행의 흐름을 바꾸는 것처럼 여행지에서 만난 무수한 우연들이 서은영의 생각과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켰다. 원망과 분노가 쌓여 걸핏하면 불 같이 화를 내는가 하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냉랭해지곤 했던 여자가 어느새 세계를 향해, 타인을 향해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다정한 여인으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뜨거워졌다. 그냥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 태어났다는 말이 맞을 거다. 도대체 여행 중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언젠가 디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르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얘기하기 뭐하지만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의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도 인도에 간 서은영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난한 인도인들이 평상시에 입는 옷에서 무한한 감동을 받은 그녀는 마치 첫 눈에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누추한 옷으로 최대한 아름답거나 멋지게 레이어링한 인도인들을 뒤쫒아다니며 하루 종일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어대는가 하면, 그들처럼 입고 싶어서 트렁크를 뒤적거려 잠옷으로 가져간 슬립을 원피스처럼 입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자수가 박힌 하얀색 쿠르타를 사기도 한다. 그러면서 고백한다. 청담동에서 옷 잘 입는다는 누구에게서도 이런 자극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돈으로 산 스타일링은 지루할뿐더러 이제 보기도 싫다고. 그리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답게 “자신에게 어울리고 자신이 행복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으로 조화롭게 연출한다면 바로 그것이 진정한 스타일”이라고 정의해 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이 세계를 구원한다.”라고. 자기 신체가 아니라 이 세계와 관계 맺는 법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그런 힘이 있다. 우리 안에 오래되고 부패한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유행에 따라 변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첫 번째 기획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는 서은영처럼 말이다. 고비 사막을 건너며 새삼 붉은 낙타의 아름다움에 놀란 그녀는 타조나 고래 같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감자나 새싹, 심지어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소 같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작은 것들에서 매우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명체들의 미덕을 배운다.
여행이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메타포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여행이다
로드무비를 좋아하는, 그래서 [천국보다 낯선]이나 [미스테리 트레인] 같은 영화를 만든 짐 자무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이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메타포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여행이다.” 그래서 서은영의 여행기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살아온 인생도 보인다. 세상의 낡은 관습이나 편견, 혹은 불가능하다고 미리 낙담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안이함에 맞서 종횡무진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온 돈키호테 같은 인생 말이다. 그 남다른 도전 의식과 새로운 꿈을 향한 놀라운 열정,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그녀는 패션 디자이너에서 패션 에디터가 되었고, 다시 [하퍼스 바자] 패션 에디터를 그만두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스타일리스트로 홀로서기를 했다. 그리고 이른바 성공을 했다. 믿는 구석도 뒷배경도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어느새 스타일링은 물론 글쓰기, 방송,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성공에 쉽게 안주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안주하다보면 무뎌지고, 교만해지고, 어리석어진다는 생각에 또 다른 멋진 것을 찾아 두뇌와 마음과 세포를 미친 듯이 활짝 열어 놓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21세기 여자, 돈키호테의 아름답고 비범한 순례기를 만나게 된 거다.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이며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예전에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와 빛나는 재능, 그윽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사랑 앞에서는 유독 맥을 못 추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바보였다. 그러나 스스로 ‘인생의 제3막을 위한 돈키호테와 같은 여정’이었다고 고백하는 시간들을 통과하며 그 사랑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크고 숭고해졌다. 어느 날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마더 테레사의 말씀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멈추지 말고 눈꽃처럼 작은 사랑 하나라도 계속해서 실천해야만 내 삶이 진정한 행복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겪은 모든 시련과 고난조차 결국 축복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통감했다고. 그런데 그 신앙 고백이 하도 절실하면서도 참신해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으며 종교를 터부시하던 사람(편집자)조차도 마음을 열게 된다. 심지어 지금 고통 받고 있거나 분노하고 원망하고 슬픔에 찬 사람들이 있다면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이 책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당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별을 따라가는 돈키호테의 순례는 실패했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실패가 위대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 눈에 전혀 띄지 않는 낮별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 서은영처럼 말이다. 순례자가 자기 조국을 떠나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조국을 찾으러 가는 것이라더니 그녀 역시 그렇다. 세계를 돌아보고 난 후 뒤늦게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 그녀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무분별하게 파헤쳐지고 있는 산과 들과 바다와 강을 보며 우리가 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고 잠깐 여행 온 사람들이라는 걸 인식한다. 그리곤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여행자의 세계 인식이며 자아 확장일 것이다. 내 세계의 빗장을 엶으로써, 타인들의 세계를 여행함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보다 많이 깊이 알게 된다는 걸 [서은영의 세상견문록]을 통해 우리는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