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미래를 엿보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잠재우기 어렵습니다. 동양의 사주/명리학, 주역, 토정비결, 서양의 점성술, 찻잎점, 타로점 등, 일각에서 ‘미신’으로 치부하는 다양한 점술들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자취를 감추긴커녕, 오히려 어느 때보다 대유행을 타며 대중문화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한때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관련 앱까지 쏟아져나와 누구나 쉽게 ‘혼점(혼자서 점보기)’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점술 중에서도 특히 서양 오컬트 전통의 정수인 타로의 약진이 눈에 띕니다. 국내에서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번화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사주와 타로 가게들이 즐비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이국적인 복장을 차려입은 집시 여인이 주인공을 위해 타로점을 봐주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타로를 주제로 한 책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고, 텀블벅 같은 플랫폼을 통해 선보이는 국내 금손들의 자체 제작 타로도 후원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분야를 공부하는 저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타로란 무엇인가?
‘타로(Tarot)’라는 단어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오컬트 연구가, 마이클 트세리온(Michael Tsarion)은 타로를 주제로 한 어느 강의에서 이 단어가 고대 이집트에서 출산과 생식능력을 관장하는 하마 형상의 여신, ‘타와레트(Tawaret)’에서 유래되었고, ‘진리’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truth’도 타와레트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동양의 ‘다라보살(Tara)’이 타로의 기원일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카발라와 타로를 비롯한 오컬트 지식체계를 연구하는 B.O.T.A.의 설립자, 폴 포스터 케이스는 타로 메이저 아르카나의 10번 카드,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에 적힌 네 문자, T, A, R, O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Rota Taro Orat Tora Ator.”
다소 억지스럽고 어색하지만, “타로(Taro)의 수레바퀴(Rota)는 아토르(Ator)의 법(Tora)을 말한다(Orat).”는 뜻입니다. 여기서 ‘Tora’는 모세가 전한 유대교의 율법인 ‘토라(Torah),’ 그리고 ‘Ator’는 이집트판 비너스인 ‘하토르(Hathor)’ 여신을 각각 의미합니다. 하토르는 아이에게 사랑을 퍼붓고 영양분을 제공하는 이시스(Isis) 여신의 어머니로서의 측면을 상징합니다. 이시스와 하토르는 각각 타로 메이저 아르카나의 2번 카드(여사제)와 3번 카드(여황제)에 상응하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한편 글쓰기와 지식을 관장하는 신, 토트(Thoth)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오늘날 전설의 형태로 제목만 전해지는 『토트의 서(Book of Thoth)』가 다름 아닌 타로라는 설도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완전하게 발굴되지 않은 이집트 기자 지구의 스핑크스 아래에 고대의 신비주의 입문자들을 양성하던 사원이 있었는데, 당시의 입문 후보들이 사원 대회랑의 벽에 그려진 여러 그림(타로 이미지)으로 구성된 ‘책’을 보면서 명상하고 우주의 신비를 사색하며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두꺼운 베일에 싸인 타로의 기원을 고대, 특히 이집트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해진 지혜(Received wisdom)’라는 의미를 지닌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의 형이상학 체계, ‘카발라(Qabalah)’의 기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이자 시조로 알려진 고대 이스라엘의 족장, 아브라함이 우주의 창조 과정을 설명하는 카발라의 대표적 경전, 『세페르 예치라(Sepher Yetzirah; 형성의 서)』의 저자라는 설도 있고,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다가 신으로부터 십계명뿐 아니라 탈무드와 카발라의 가르침까지 받아서 내려왔고, 여러 시대에 걸쳐 세상에 출현한 선지자와 현자들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유대교의 랍비 중에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전, 천사들이 인류가 낙원으로 다시 복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최초의 인간에게 카발라를 전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타로든 카발라든, 전설상으로는 까마득히 먼 옛날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실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드와 관련 문헌은 기껏해야 몇백 년 전까지밖에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표적인 오컬트 타로 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토트 타로’의 제작자, 앨리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는 이런 역사와 전통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발라를 기반으로 하는 타로의 체계가 인간과 우주를 아주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타로와 카발라에 담긴 핵심 가르침의 내용을 배우고, 그 가르침을 일상에서 발견하고 실천함으로써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기를 계발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타로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앨리스터 크로울리는 토트 타로의 매뉴얼 격인 『토트의 서(Book of Thoth)』에서 “최대한 이른 나이 때부터 타로를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설로만 전해지는 고대 이집트의 『토트의 서』와는 다른 크로울리의 저서입니다) 그리고 타로를 “꾸준히, 날마다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설마 아이더러 자기 운명을 점치기 위해 매일 타로점을 보라고 조언하는 것은 아니겠죠? 크로울리는 『토트의 서』 출간에 앞서 출판사 측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참고로 ‘해리스 여사’는 크로울리의 지침에 따라 실제 카드를 그린 그의 제자이자 화가인 프리다 해리스(Lady Frieda Harris)를 지칭합니다.)
“카드는 반드시 책과 함께 판매되도록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를 삽입하지 않은 상태로 책을 인쇄하면 비용이 £300를 초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해리스 여사가 원한다면 책은 카드와 함께 무료로 배포해도 됩니다. 책으로 돈 벌 생각도 없고, 해리스 여사가 집필한 것으로 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카드가 도박 또는 신점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는 또한 “모든 형태의 신점은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시력을 갖기 위해 고주망태가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하며 타로를 점술의 용도로만 활용하는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로를 공부해야 하는, 날마다 타로를 대상으로 명상하고 공부한 내용을 실천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타로는 본래 점술의 도구가 아니라, 성경, 불경, 코란과 다를 바 없는 경전(經典)이기 때문입니다. 타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서양의 비의(秘儀; Esoteric) 지식을 총망라하여 그림의 형태로 표현한 일종의 그림책 또는 경전’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전 전통과 얼마 되지 않는 문헌의 형태로만 전해지는 카발라의 ‘일러스트 버전’인 셈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공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옛 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를 아는 것’이 모든 공부의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가 바로 이 공부에서 제시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이 공부를 ‘마음공부’라고도 부르는데, 타로야말로 마음공부에 최적화된 궁극의 경전입니다. 그림책인 타로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잠재의식을 자극하고, 언제나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글보다 더 정확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타로는 우리와 같은 인간(소우주)뿐 아니라, ‘거대한 인간’에 비유할 수 있는 우주(대우주)의 비밀도 제공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을 알면 우주와 신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했는데, 이 원리가 카발라와 타로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