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오색딱따구리와 함께한, 아주 특별한 50일
큰오색딱따구리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텃새이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새는 아니다. 주로 울창하고 오래된 숲에 둥지를 짓고 살며, 고목에 사는 딱정벌레 애벌레를 주먹이로 하기 때문에 큰오색딱따구리가 있다는 것은 숲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큰오색딱따구리를 숲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종으로 삼는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는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서 품고, 먹이를 물어다 새끼를 길러내고 떠나보내는 큰오색딱따구리의 번식 생태 과정을 50일에 걸쳐 온전히 관찰하고 분석한 책이다. 서남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지리산 기슭에서 우연히 큰오색딱따구리가 둥지를 짓는 모습을 발견한 후 사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큰오색딱따구리에만 매달려 50일간 밤낮없이 관찰한 결과물이다. 큰오색딱따구리의 날갯짓 하나, 고갯짓 하나까지 세세히 담은 기록노트를 바탕으로 하루의 특징적 행동을 시간 변화에 따라 정리하였다.
관찰을 시작하고 새끼를 키워 낼 둥지를 완성하는 데에 12일(처음 관찰을 시작했을 때 타원형의 둥지 입구는 이미 뚫어 놓은 상태였으므로, 둥지는 보름에서 20일 사이에 걸쳐 만드는 것으로 예상된다), 알을 낳아 품고 부화가 일어나기까지 13일, 부화가 일어나고 둥지 밖으로 어린 새의 모습이 보이기까지 20일, 얼굴을 보여준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기까지 5일이라는 시간을 지내면서, 그동안 알려져 있던 큰오색딱따구리의 생태를 확인하고 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둥지 만들기, 알 품기, 새끼에게 먹이 가져다주기 등 대부분의 활동은 암수가 교대로 진행한다.
―알을 품는 기간과 새끼를 기르는 기간 동안 밤에는 수컷이 둥지를 지킨다.
―암컷과 수컷은 각자 앉는 가지가 정해져 있다. 암수가 함께 있으면 그만큼 천적에게 노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껏 큰오색딱따구리는 둥지 바닥에 이끼나 자신의 깃털을 깐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관찰 결과 둥지를 만들 때 생기는 나무 부스러기를 침구를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책에는 큰오색딱따구리뿐 아니라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 까막딱따구리 같은 다양한 딱따구리 종류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실려 있어 새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간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큰오색딱따구리 둥지 주변에 서식하는 까치, 곤줄박이, 박새, 원앙 등 여러 새들의 생태와 주변의 자연 환경 변화까지 함께 지켜볼 수 있다.
■ 생명의 이야기가 있는 감동의 생태 다큐멘터리
50일의 관찰 기간 동안 큰오색딱따구리가 결코 평화롭게 새끼를 키운 것은 아니다. 무엇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야생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큰오색딱따구리의 모습은 치열한 생존의 과정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산란을 앞두고 암컷에게 먹이를 선물하여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수컷의 모습,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방향으로 둥지 구멍을 내는 놀라운 본능, 깃털을 뽑아 살을 맞대 더 따뜻하게 알을 품고자 하는 포란반(抱卵班)의 형성, 까치나 붉은배새매 같은 위협적인 동물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가지 뒤로 숨거나 몸을 낮추는 행동 등은 오직 인간만이 사고할 줄 안다는 오만함을 일순간에 버리도록 해준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자식 사랑은 본격적으로 새끼를 키우면서 나타난다. 특히 새끼 새가 맹금류인 붉은배새매와 맞닥뜨리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는 새끼가 위험에 처하자, 아빠 새는 몸을 사리지 않고 새끼를 지키기 위해 맹금류인 붉은배새매에게 맞서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안도현 시인은 독자들이 이 장면을 읽고 “이 세상에서 아비 된 자의 도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우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작고 힘없는 것들이 거친 세상을 이겨내는 방법을 더불어 배우게도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찮게 생각하던 작은 생명의 모습이 얼마나 큰 가르침을 주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독자들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새끼를 떠나보낸 관찰 마지막 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자신이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 둘째 큰오색딱따구리가 둥지를 떠난 것도 모르고, 부리에 먹이를 잔뜩 문 채 돌아온 아빠 새의 모습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네 시간 동안 일곱 번이나 나무 전체를 샅샅이 뒤진 아빠 새의 부리에는 여전히 먹이가 물려 있다. 부모 된 사람이라면, 혹은 부모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이처럼 큰오색딱따구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우리네 삶을 돌이켜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가치이다.
■ 생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빚어낸 아름다운 생태 에세이
저자가 큰오색딱따구리를 관찰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큰오색딱따구리의 번식 생태에 대하여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학자로서의 열정도 있었고, 생명과학 연구의 출발은 관찰이며 관찰은 대상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던져 바치는 과정이라고 했던 제자들과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인간의 욕심만으로는 그 험난한 여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 고백한다. 그러한 인간적 욕심이 애정으로 바뀌고,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동고동락한 가족의 일원이 된 후에야 비로소 새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 책이 단순한 관찰의 기록을 넘어 따스한 인간의 냄새가 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무릎을 더 크게 굽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들꽃을 바라보고, 날아가는 새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로 좇는” 마음, 즉 자연을 단순한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관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저자의 바람대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무언가에 몰입하고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며, 생명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애정과 지치지 않는 열정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