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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요즘 농촌지역이야말로 가장 국제화된 선진사회의 실험지구가 아닐까 싶다.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이주여성들의 아이들이 시골학교에 다니고, 아들보다는 딸 덕을 본다는 옆집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는 아들보다 딸을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런 시골마을에 젊은 레즈비언 커플이 갑자기 나타나 자리를 잡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입담 좋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글에서도 뚝뚝 묻어나는 정지아 작가의 신간이다. 이번에도 역시 캐릭터들이 펄떡펄떡 살아 있다. 서울에서 반려닭을 키우다 시골로 내려온 여자, 음담패설을 입에 달고 살아 수시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면서도 누구보다 새 이웃의 사정을 살피는 찐득한 정 많은 시골 아줌마, 남의 일이라면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서도 할 말은 기어이 다 하고야 마는 사람들까지. 이들의 말과 행동은 때로 무례하고 촌스럽고 불편한데, 또 이상하게 밉지만은 않다. 사람 죽이는 잘못만 아니면 세상에 허용 못 할 것도 없고, ‘우리 동네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못 박을 일 또한 없다는 것이 여기 시골 사람들의 생각이다. 처음부터 이해하고 존중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낯선 것은 낯설다고 말하고,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수군거린다. 때로는 선을 넘고 상처도 준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밥때가 되면 밥을 챙겨주고, 일이 생기면 남의 집 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제 일처럼 나선다. 어쩌면 이 소설이 보여주는 포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련되고 예의 바른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함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다른 사람을 반드시 좋아해야만 이웃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는 너대로 좀 이상하고 나는 나대로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같이 살아보자.’ 이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은 그런 투박한 공존에 가깝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그렇게 부딪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뭉긋하게 맞춰지는 삶.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온 상처 많은 찌니들에게는 어쩌면 그렇게 경계 없이 훅 들어왔다가, 방심한 틈에 따뜻한 밥 한 공기 덜어주고 가는 시골 이웃들이 꼭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세련되게 이해해주는 사람보다 이해는 다 못 해도 끝내 곁에 남아주는 사람. 《찌니주의보》를 읽고 나니 어쩌면 이웃이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_______ 느그가 난 년들이다, 난 년들이여. 한 년이 아프먼 딴 년이 밥이라도 채릴 것 아니냐. 한씨댁은 그새 식은 커피를 후루룩 들이켰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찌니들은 난감하기만 했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이해받은 것인가, 아닌가. 받았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오묘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수평마을에서 이 사람들과 수평하게 오래도록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가슴 저 밑바닥부터 따스한 봄기운 같은 것이 스멀거리는 듯했다.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성진도 혜진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혜진이 벌떡 일어나 암막커튼을 휙 젖혔다. 유리창 너머 헐벗은 산 전체가 세찬 바람에 휘청이는 듯했다. 보기만 해도 시린 추위가 뼈에 스미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조만간 바람은 그칠 것이고 겨울도 끝날 것이고 생명의 빛깔이 산에 차오를 터였다. 염치도 없이 이른 아침 남의 집에 쳐들어온 한씨댁은 후루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믹스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찌니주의보 | 정지아 저 #찌니주의보 #정지아 #창비
전남여고 못들어간 간호조무사 수평마을을 내려다 보려던 하이힐 결국 벗어들고 흙탕물을 튀기며 걸었지 마을회관에서의 노년이 가시처럼 찌를지라도 그녀의 한평생에 찐한 응원을 보내며~~ 쑤언, 찌니들에게도 무지개빛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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