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패러다임의 전환 - 민족적 기원의 탐구가 왜 중요한가
김운회 교수의 역저인 이 책은 몽골 - 만주 - 한반도 - 일본에 이르는 어떤 민족적인 '집단 무의식'과 그들의 '민족적 기원'을 탐구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무릇 한민족이라 일컬어 왔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민족이라는 이름의 범위에는 '몽골인'과 '만주족', '일본민'은 들어 있지 않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만주 지역 일부에 국한된다. 그렇지만, 최근 인종 분포 분석에 있어서 DNA 검증 방식이 활발해지고 있고, 문화 인류사적 교류사 탐구가 활발해지는 지금, 민족사관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는 불문가지다.
김운회 교수가 이 책을 집필한 최우선 동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에서 나온다. 기존 사학계에서 용감히 시도하지 못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날선 비판의 칼을 빼든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위험한 시도인가. <1950년대 중국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지도>에는 화하 민족이 수복해야 할 중국의 영토를 순번까지 매겨 가며 그리고 있다. 동북공정이란, 단적으로 중국의 현재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소수 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민족 말살의 위기가 그러할진대 지금 우리의 대응은 무엇인가. 정부는 중국과의 통상 마찰을 염려하여 민간이나 학술 차원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동북공정에 대한 대안으로 ①기존의 사학계가 추진하는 '고구려 지키기', ②'요동사' 개념, ③'쥬신'의 관계사를 중심으로 보는 관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쥬신의 관계사 복원은 동북 공정에 대한 확실한 대응책
저자는 '고구려 지키기'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도임을 제시한다. 1400여 년 전에 없어진 나라에 대한 계승권을 주장한다거나, 조공-책봉에 대한 연구를 한다 한들 동북공정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설령 발해의 역사를 지킨다 해도 이미 1000년 전에 없어진 나라이니 그 또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1000년 전 국가의 토지대장이 있다 한들 지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할 무력이 있는가?
'요동사' 개념도 의미가 없는 시도이다. '요동사' 개념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민족사의 진원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조선ㆍ부여ㆍ고구려ㆍ백제 등은 모두 요동을 근거지로 하거나 요동을 주요 세력권으로 한 국가들이다. 특히 백제는 남부여라고 하기도 하여 충실한 부여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요동의 국가라고 한다면 상식적이지 못하다.
기존 학계의 (소)중화주의 사관에 맞선 흥미진진한 역사 여행
그러면 남은 것은 이제 쥬신의 관계사로 동북아시아 역사를 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쥬신의 관계사로 보는 동북아의 역사는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못하다. 이것이 저자가 현실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 것이다.
쥬신의 관계사로 동북아시아 역사를 보는 것은, 게르만 민족주의나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는 것과 다르다. 순혈-민족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숱한 미스터리를 해명하기 위한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쥬신의 "관계사"는 그동안 부분적으로 제기되었던 한국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방법론이자 관점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고대사의 부분, 파편적인 연구들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지만, 그것들의 의미를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엮어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인식이다. 저자는, 숙신=동호=예맥 등이 같은 의미를 가진, 같은 민족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을 밝혀 내고, 원나라를 건국한 몽골 쥬신과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 쥬신, 그리고 일본의 열도 쥬신이 같은 시원을 가진 쥬신족의 일파라고 파악한다.
쥬신의 관계사로서 동아시아의 고대사를 보면, 예를 들어, 말갈족이 다른 부족이 아니라 범고구려족(범쥬신족)의 한 일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중원을 지배하고 유럽에까지 영토를 확장한 몽골 제국이 왜 고려만은 직할령이 아니라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게 하고 심지어 부마국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청나라의 건륭제는 한족이 만주 땅에 자주 이민하자 아예 유조변(버드나무 경계선)을 설치해 버린다.
쥬신의 관계사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는 관점은, 역사 인식의 새 전환점(패러다임의 전환)을 제공할 것이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인종의 하마 중화주의에 대해 소중화를 자처하고 신하국임을 자임한 고려-조선 시대 이래로 내려온 천년 간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이다.
쥬신의 역사를 제대로 안는 것은 우리의 참모습을 제대로 아는 것이며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된다. '대쥬신을 찾아서'는 세계사의 무대에서 우리가 중화 민족의 들러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가 세계 역사의 주역이었음을 알려 스스로의 자긍심을 고양하는 운동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