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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주의보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안개주의보

문학과지성 시인선 415
소장종이책 정가8,000
전자책 정가30%5,600
판매가5,600
안개주의보 표지 이미지

안개주의보작품 소개

<안개주의보> 어느 문을 열어도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기억의 집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당신이라는 안개


이용임의 첫 시집 『안개주의보』(문학과지성사, 2012)가 출간되었다.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상투성을 훌쩍 벗어난 독특함으로 미정형이긴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등단한 이용임은 소시민의 일상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등단작 「엘리펀트맨」 이후로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을 그로테스크하게 이미지화하며 건조하고 이지적인 묘사로 눈길을 끌어왔다. 시인의 이러한 특장점이 도드라진 시들이 모여 6년 만에 첫 시집으로 묶였다. 이 시집은 마치 하나하나 방문을 열 때마다 늘 똑같은 창문이 있는 비슷비슷한 방처럼 죽음과 이별의 기시감이 감도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 장이지는 이에 대해 “하나의 원풍경이 각기 다른 이상기후를 몰고 유령처럼 귀환한다”고 표현하였다.

당신이라는 안개 속에서의 삶
먼저 당신의 코가 사라진다
물렁한 벽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검은 방에서
채 스미지 못한 내 체취가 흘러나온다
당신의 입술이 사라지자
망설임은 맨발로 배회한다 허공을
눈 가리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당신의 귀가 하나씩 흘러내린다
나의 목소리가 차가운 물방울로 고인다
-「안개주의보」 부분

이별 후 당신의 형상은 이제 흐리마리해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지상을 가득 메운 안개처럼 당신이 편재하는 세계를 화자는 살아가게 된다. 깍지 낀 손(「일요일」)이 풀어지고 연리지(「일기예보」)가 끊어진 연인들은 ‘반쪽 무덤’이 된다. 이 시집의 표제작 「안개주의보」에서 묘사되는 안개 속에는 ‘죽은 당신’이 천천히 스러지고 있다. 손발이 뭉그러지고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숨결이 아득한 윤곽이 되는 당신의 안개 속에서 제대로 된 삶은 불가능하다. 화자가 숨 쉬는 세계의 모든 것이 녹고 묽어지고 흘러내리다 사라져버릴 뿐.

거듭 돌아오는 기억의 소용돌이
너는 입을 벌려 바람을 들이마셨어
온몸의 뼈마다 무늬를 그렸지
어리면서도 늙은, 늙으면서도 아이 같은
뼈마디마다 옹이가 박혔어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부는
바람의 속성 같은 것
-「일기예보」 부분

기시감의 근원은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 본성에서부터 온다. 기억은 주체를 사로잡아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되풀이되다가 결국은 주체를 집어삼켜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슬픈 기억일수록 기억은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날뛴다. 이는 마치 육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부는 바람의 소용돌이가 되어 “바람 무늬가 흉진” “옹이” 같은 자흔을 남긴다. 이 시집에서는 기억의 벽에 달라붙은 여자가 차가운 벽을 손바닥으로 다급하게 탕, 탕 두드리듯(「스모그」), 질식의 경험(「부활의 내력」)이라 할 만한 괴로움을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다.

죽은 연애를 애도하는 시간
모가지째 뚝뚝 당신이 순교한다
나는 가장 벙글지 않은 당신을 주워
탁자 위 꽃병에 꽂는다
이미 죽은 당신의 입술이 벌어지며
그윽한 향기가 흘러나온다
-「연애의 시간」 부분

연애는 끝났지만 화자는 “그대라는 병중(病中)”에 있다. “연애의 시간”이라는 시의 제목 자체가 연애의 죽음 이후에 도래하는 애도하고 애통해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당신은 부재하지만 기억은 시시각각 피어났다가 시든다. 이용임의 시 속에서 당신이라는 원풍경은 끊임없이 변주되며 유령처럼 되돌아와 새롭게 살아났다 다시 죽는다. 해결 불가능한 슬픔 속에서 연애를 지속시키려는 안타까운 ‘쓰기’는 계속된다.
시집 『안개주의보』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어떤 기시감과 반복 속에 섬뜩한 괴로움을 드러낸다. 얼음처럼 차가운 슬픔, 거울 조각의 바다에 올려놓은 맨발처럼. 당신이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안개’를 둘러치고 ‘맑은 뼈’의 창문을 세우고 애도의 시간 속에 깊이 웅숭그리고 있던 그녀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비행”을 예감하며 스스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이제는 기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기 본연의 표정을 드러내고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새로 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 시집 속으로
연기로 가득 찬 창문 안에서
발목에 매달려 그림자가 서성거린다
붉은 미등이 줄지어 사라진다
흔들리는 뒤통수들이 희미해진다
자박 자박 자박 엎디어 손톱으로 기어오는 발소리
벽에 부딪쳐 되돌아간다
얼굴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지붕이 누운 아래
입을 벌려 마른 혀끝을 보이는 창문들
도시 외곽 공장 지대의 굴뚝을 향해 난 길을 따라
여자 하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은빛 바퀴살이 치르륵거린다
누군가 다급한 손바닥으로 탕, 탕 두드린다
사라진 길 위에서
-「스모그」 전문

사내의 코는 회색이다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사내는 가만히 코를 들어 올린다
형광불빛에 달라붙어 벌름거리는
사내의 콧속이 붉은지는 알 수 없다
여자를 안을 때마다
사내는 수줍게 코를 말아 올리고 입술을 내민다
지리멸렬한 오후 두 시에
사내는 햇볕을 쬐며 서툴게 담배를 핀다
사내의 코가 능숙하게 따먹을
푸르고 싱싱한 나뭇잎들은 없다
계절은 바람과 구두 소리에 쓸려
태양의 서쪽으로 이동했다
구내식당에서 이천오백 원짜리 밥을 먹을 때마다
사내는 코끝이 벌개질 때까지 힘껏 코를 들어올린다
버스가 급정거할 때마다
손잡이에 걸린 코를 황급히 움켜쥐며 한숨을 내쉰다
담배연기와 밀어와 휘파람과 잠꼬대
사내의 긴 코 어딘가에서 아직도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있을
환절기가 되면 사내는 지독한 축농증을 앓는다
가을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 아래 서서
사내는 코로 낙엽을 주워 올린다
가지에 올려놓은 잎사귀가 떨어질 때마다,
다시
-「엘리펀트맨」 전문

■ 시집 소개글
시집을 짓는 데 벽돌 같은 것이 필요하다면, 이용임의 시집은 기시감이라는 벽돌로 쌓았다고 말하고 싶다. 방이 많은 복도 위를 걷는 꿈을 꾼 것처럼. 하나하나 방문을 열어보면 늘 똑같은 창문이 있는, 비슷비슷한 방이다. 단 하나의 원풍경이 각기 다른 이상기후를 몰고 유령처럼 귀환한다._시인 장이지

■ 뒤표지 글
내 발등에 엎지른 얼룩
내 머리카락에 떨어진 꽃잎
눈이 멀 것 같은 햇빛 속에 서 있거나
나무 그늘만 골라 디디고 다녔다
유리컵에 동전을 넣어 홀짝 놀이를 하다가
겨울에 잊고 온 콧잔등이 시려 찡그리곤 했다
항아리에 묵힌 이름은 모두
당신 당신 당신들
고마워요 내가 열렬히 사랑한
나를 모르는 그대들이여
백지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한참이 흐르자
밤과 춤과 선율이 시작되었다


저자 프로필

이용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76년
  • 데뷔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엘리펀트맨」

2021.12.1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이용임
1976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저녁 무렵의 창문
키스
햇빛증후군
해바라기 모텔
엘리펀트맨
악사들
지도 판매상
자정
주물
자개장롱
팩토리
만화경
스모그

제2부

나비
붓꽃

수국
평창민박
수족관
이웃에 사는 새
Cafe. 봄
대화의 방식
의자에 앉은 시계
휘파람
가투의 시대
수집벽
터널
장마

제3부
안개
여름의 수반
흡연 구역
폭설이라는 시간
보라
밤의 바다
부활의 내력
감기
결핵
연애의 시간
안개주의보
연인
죽은 벚나무 아래
여름
일기예보
정전
밤, 눈
내 뜰에 동백

일요일
이 저물녘

해설|에도의 안쪽, 무늬 중독자의 표정 · 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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