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여행자, 라다크를 자전거로 리얼체험하다!
KBS 김재원 아나운서의 여행기 [라다크, 일처럼 여행처럼]이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여름 KBS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 라다크 편]의 프로그램 촬영차 2주간 히말라야 라다크를 체험하고 온 이야기이다. 낮에는 30도, 밤에는 영하의 날씨에 숙식을 직접 해결하며 산악자전거로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도로인 5,328미터의 타그랑 라를 오르는 숨가쁜 여정과 중년 인생을 반추하는 내밀한 자기 고백이 일품이다.
글 잘 쓰고 여행 좋아하기로 유명한 그는, 정기적으로 기내식을 먹고 이국 땅의 공기를 심장에 충전시켜주어야 한다. 때문에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대만 배낭여행을 필두로 틈틈이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2014년 봄이 그에게는 유난히 힘들었다. 방송인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갖고도 아픈 세상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 혹은 분노 때문에 여행자의 허기가 더욱 강했다. 자원해서 교양국 프로그램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 라다크 편]의 출연자가 되었다. 아나운서 입사 동기로 만나 20년 절친인 김홍성 아나운서와 함께였다.
자전거로 라다크의 히말라야 산자락을 누비는 여정. 우리는 3,500미터 고지 레에서 출발하여, 오르고 또 올라 5,328미터 고지 타그랑 라까지 오르고, 다시 서서히 내려오며 초카 호수와 초모리리 호수까지 갈 예정이다. 가는 길에 유목민과 만나 그들의 삶도 엿볼 것이다. 물론 현실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본문 중에서)
헬레나 호지 《오래된 미래》로 잘 알려진 라다크는 정식 국가가 아니다. 인도의 한 주州로 히말라야 산맥 3,500미터 이상의 고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자전거로 달리며 직접 숙식을 해결하는 2주간의 리얼체험 프로젝트였다. 그동안 수년을 걸어서 출퇴근을 해와 체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는 다분히 부담이 있었기에 한강을 자전거로 달리며 훈련도 했다. 그러나 고산증과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온 불면증은 해외 여행 25년 경력의 50여 나라 탐방꾼인 노련한 여행가에게도 너무나 큰 고행이었다.
자전거가 천근만근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큰 심호흡을 반복했다. 순간순간 터질 것 같은 심장 탓에 고산증세를 잊곤 했다. 다시 주저앉았다. 큰 돌이 엉덩이를 찌른다. H의 얼굴이 백짓장 같다. 순간 우리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가 벗어나려고 했던 일상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우리가 바라던 꿈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다. 이런 줄 모르고 왔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 했다. (본문 중에서)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했다. 멈추지 않으면 떠날 수 없기에 잠시 멈추고 선택한 곳이 라다크였다. 시간노동자였던 그로선 우선 시계를 보지 않았고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나는 이 떠남으로 멈추지 않으면 결코 잡을 수 없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내 안에 잠든 ‘그것’을 깨워서 일으켜 세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결코 깨어나지 않았을, 어쩌면 평생 잠들어 있었을 ‘그것’은 내 삶을 바꿀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현미경 역할은 해주리라. (본문 중에서)
히말라야에서 만난 삶의 민낯
라다크의 가장 큰 도시 레에서 고산 적응훈련 후 여정을 시작하던 첫날 같이 간 H가 고산증으로 넘어지기도 하고, 밤마다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생도 하고 한강변 같은 평지가 아닌 산악지대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가 죽을 것 같은 중노동이라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몹시도 정스러운 유목민 부부의 환대를 경험했고, 어린 아이 여덟 명을 가르치는 초등학교에서 함께 영어 책도 읽고 노래도 가르쳐주었다. 유목민 마을에서 사나흘을 보내면서 그들의 생활을 바로 가까이에서 보기도 했다. 두 달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그들이 야크털로 만든 천막에서 3대, 일곱 식구가 함께 살면서도 자신들의 일을 평화롭게 해나가는 걸 보며 ‘행복’의 의미를 반문하기도 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너무나 현실 같은 꿈들을 꾸며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과 청년 시절 쓰러지신 아버지의 간병, 살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일들로 인해 괴로운 밤시간도 보냈다.
라다크가 중국과 인도의 국경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역이라 촬영을 위한 조건이 여의치 않아 위성전화는 허가가 나지 않아 사용을 못했다. 가져간 배터리를 다 사용해 중간에 충전기와 발전기를 구해와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늘 먹고 자고 싸는 문제가 여의치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익었다. 해발 4,520미터에 위치한 초모리리의 호수 앞에선 비로소 상황에 순응하며 달려온 이번 여행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 여정에 복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텐진도, 니마도, 지그맷도, 밤바도 우리의 필요를 충분히 헤아렸고, 세 명의 운전기사도, 세 명의 피디도 우리를 잘 이끌어주었다. 어쩌면 그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고산증세가 심하다고,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화장실이 없다고 불평하다 보면 나를 도운 이들의 살뜰한 보살핌은 묻힌다. 어디 인생이라고 크게 다르랴.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도와준 나의 인생 스태프들의 얼굴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초모리리의 밤은 그렇게 밀려왔다.(본문 중에서)
시트콤을 보듯 웃기고 생생한 여정 속에서 리얼체험 프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매우 척박하고 황량한 풍경 사이로 어마어마한 풍광을 보여주는 라다크의 사진들은 저자가 직접 디카와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지만 DSLR 카메라 못지않게 훌륭하다. 세계 여행이 손쉬운 요즘, 아직도 라다크는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문명의 이면에 유목민으로서 사는 그들의 소박한 생활과 가치관을 엿보며 숨가쁜 우리 삶에 잠시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